[Review] 인생의 골짜기에서 거장의 삶을 만나다 - 치유의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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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전시회를 자주 다니는 편이었다. 미대를 나온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렸을 적부터 그림을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했고 초등학생 때는 '피카소 전시회 감상문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 신문사에서 상을 받기도 했다. 물론 미술을 업으로 삼지는 않았으나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전시 기획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미디어아트 전시 회사의 서포터즈로 1년 간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미술 작품을 관람하는 것은 나에겐 시간적 사치를 부리는 행위에 불과했고 학년이 높아지며 신경쓸 것들이 많아지자 자연스레 전시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번 치유의 미술관을 향유한 이유는 이런 상황에서 때문이었다. 굳이 본인의 주 장르를 뽑자면 음악이나 문학이겠지만 미술도 내 나름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자리를 계속 채워두고 싶었다. 또한 시간과 돈이 없어서 그런 사치를 부릴 수 없다는 나에게 어떠한 변명도 대지 못하도록 선택한 것이기도 했다.
이 책의 전체 제목은 "마흔을 위한 치유의 미술관"으로 주 독자층인 40대의 삶을 위로하고자 쓴 책이었다. 이 책을 통해 소개되는 화가들도 대부분 40대에 명작을 쏟아냈다는 것으로 보아 40대라는 삶의 골짜기에서 어떤 방식으로 생을 구축해나가야 하는지 알려주고자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여전히 20대로 40대의 삶에 대해 알지 못하며 책을 통해 느끼는 깨달음의 깊이는 매우 얕았을 것이며 평소 자기계발서나 에세이 종류를 읽지 않아 받아들인 배움도 적었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삶으로 작가들의 이야기를 나만의 방식으로 이해하며 읽어나갔다.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이 이루어져있다.
1부: 아무도 나를 이해해줄 수 없을 것 같은 날에 - 빈센트 반 고흐, 에드바르 뭉크, 페더 세베린 크뢰위에르, 에곤 실레
2부: 내 마음이 나를 괴롭게 하는 날에 - 파블로 피카소, 피에트 몬드리안, 베르트 모리조, 수잔 발라동
3부: 버티고 견디는 삶에 나를 잃어버린 것 같은 날에 - 폴 세잔, 에두아르 마네, 바실리 칸딘스키, 디에고 벨라스케스
4부: 막연한 내일이 두려워 잠 못 이루는 밤에 - 그랜마 모지스, 헤르만 헤세, 앙리 루소, 그스타프 클림트
이 책이 재밌는 것은 저자가 미술 전공이 아닌 심리학 전공이라는 것이다. 작가의 화풍과 작품의 비하인드를 심리학적 분석으로 풀어내는데 그 덕분에 어떤 큐레이터의 해설보다도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바에 공감할 수 있었다. 특히 작가들의 각기 다른 사랑과 고통의 경험으로 탄생한 그림들을 내 삶에 투영함으로써 작가의 생애를 마치 내 삶처럼 느끼기에도 충분했다.
나는 많은 작가의 이야기들 중에서 반고흐의 이야기에 가장 몰입했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단지 내가 반고흐를 가장 좋아하기 때문이다. 중학생 때 처음으로 직접 전시 티켓을 끊은 것이 바로 그의 전시였고 당시 받았던 충격으로 고등학생 때는 '예술서 읽기 대회'에서 반고흐의 생애를 담은 "영혼의 편지" 도서를 주제로 글을 써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그후로도 인상주의 작가들의 작품을 사랑하였고 특히 그의 작품중 사이프러스 나무가 너무나도 좋아 그 그림을 핸드폰의 배경화면으로 꽤 오랫동안 두었다.
저자는 그의 그림 앞에 서면 가슴이 뛰거나 눈물이 차오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깊은 감정의 울림을 느끼는데 그 감정의 이름은 애틋함일 수도 있고, 슬픔일 수도 있고, 그저 이유 모를 감격일 수도 있다고 전했다. 그렇게 말하며 저자는 이 이유를 신경학적 기제로 설명했는데 나는 그러한 뒤의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를 단순히 내 개인적 경험으로 해석했다.
나는 그의 그림이 죽음과 사랑을 넘나든다고 생각했다. 정신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죽음에 더 가까운 이야기를 그렸을 것이고 그 전의 해바라기나 카페테라스처럼 노란빛이 드러나는 그림은 사랑에 더욱 가까웠을 것이다. 특히 사람들이 고흐의 그림 중 죽음의 모티프로 그려진다는 사이프러스 나무는 고흐가 정신병원에 수감된 이후인 1889년부터 주로 그려지기 시작했는데 그 바로 직전에 그려졌던 아몬드나무(1888)와 상반되는 분위기를 갖는다. 아몬드나무는 그의 온 사랑의 집합체였던 테오의 아들에게 선물한 작품으로 사이프러스 나무와는 같은 나무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의미를 의미한다. 사이프러스는 어떻게든 생존하고자 손을 뻗는 고흐의 고통과 절망을 뜻하며 아몬드나무는 자그마한 흰 꽃을 피운 모습에 아름답고 새로운 탄생에 대한 희망과 기쁨을 투영했다고 보았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를 옭아매는 상황에서조차 끝까지 자신의 영혼을 썩게 두지 않았던 그의 세상에 대한 애정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헤세의 수채화를 따라 그려보았다는 이야기를 하며 누구에게나 '예술적 자유'가 있다고 말했다. 이것은 장르를 넘나들며 자신의 꿈과 열정을 실체화했던 헤세를 비롯해 다양한 작가들의 삶을 관통한다. 또한 아트인사이트의 구성원과 다양한 문화 예술을 향유하는 많은 사람들의 창의성과도 맞닿아있다. 나는 우리 주변의 모두가 예술이라는 명칭에 겁먹지 않고 그것을 치유의 손과 인생의 길잡이로서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란다.
[김유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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