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다가온다. 첫눈 그리고 폭설이 내린단다. 괜스레 헛헛해진 마음에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하고, 캐롤을 크게 틀고, 평소보다 근사한 밥을 차린다. 다들 어떻게 살아가고 있으려나- 하는 애정 섞인 궁금증이 피어날 때면. 무작정 보이스톡을 걸어버리고 싶으나 다른 시간을 살고 있음을 되짚으며 간단히 카톡을 남긴다.
요즘 뭐에 빠져있냐- 라는 물음은. 일상을 가장 잘 들여다볼 수 있다. 잘 살고 있냐- 는 보편적이지만 진부하다. 돌아오는 대답 또한 그리 다양하기 어렵다. 대개 '응 잘 살지', '아니 요즘 뭐 때문에 바쁘다' 정도랄까. 그렇기에 일상의 세세한 부분을 공유받고 싶을 때는 요즘 주 관심사를 물어보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사람마다 그 시기에 유독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있을 테니. 그리고 질문을 받는 사람 또한 자신이 어떤 것에 빠져있는지 본인의 삶을 환기해 볼 수 있으니. 여러모로 보다 입체적인 물음일 것이다.
J는 목도리 코디에 빠졌다고 한다. 특별히 구매하고 싶은 목도리가 있는 것일까- 하는 예측이 무색하게. 목도리 매는 방법을 서치하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평소 추위를 많이 타서 히트텍은 필수에, 몇 겹씩 껴입고 외출하는 J이지만. 본인만의 패션에 대한 철학이 뚜렷한지라, 언제나 디테일을 챙겨가고자 노력한다. 그런 J에게 목도리 코디는 어쩌면 중대한 사항일 것이다. 나 또한 새까만 패딩이 벌써 지겨워지기 시작했으니.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코디하는 머플러는 생각보다 더 중요한 겨울 패션 아이템임을 느낀다. 목도리를 매는 방법은 참 다양하다. 당장 인터넷에 목도리 매는 법을 검색해도 수많은 결과가 나오지만. 재밌게도 통일된 명칭이 없다. 목도리 매는 방식은 같지만, 그 방식을 다르게 부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목도리 매는 방법을 많이 알아두면 멋있겠다. 목도리의 색상이나 질감에 따라, 그리고 그날 코디의 컨셉이나 이미지에 따라 방식을 달리해서 코디한다면. 디테일을 확실히 챙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Y는 주식에 빠졌다고 한다. 잘 되어가냐는 물음에 멋쩍은 웃음을 난발하던 Y는 이번 연도부터 수익에 대한 세금을 지불해야 한다며 뿌듯하게 대답한다. 특히, 요즘 주식 시장에 핫한 이슈가 있다며 국장이 더 이상 매력적인 투자처가 아니라는 정보도 던져준다. 주식의 지읒도, 경제의 기억 자도 모르는 나는 그저 들으며 Y의 기쁨에 기뻐한다. 주식이라. 하루하루 비슷한 일상에 활기를 확실히 불어넣어 줄 것만은 같다. 줄타기의 스릴을 즐기는 사람에겐 더할 나위 없겠다. 불안에 취약한 나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할테지만... 요즘은 조금씩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교환학생 생활로 돈이 궁해졌냐 묻는다면 아니라고 할 순 없겠다. 그러나 그보다 더 궁극적인 이유는 불안을 다루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 워낙 안정성을 추구해 오던 나는 스트레스와 불안에 취약하다. 쉽게 지치고 자극에 예민하다. 그런 내가 주식을 시도해 보는 것. 그 자체로 적당한 스트레스와 압박감을 견디는 연습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든다.
I는 찹쌀도너츠에 빠졌다고 한다. 항상 다니던 동네 찹쌀도너츠 가게 '줄을 서시오'에서 3개에 3,000원으로 가격을 인상한 뒤로, I는 몇 걸음 더 가는 수고를 감수하면서 뚜레쥬르에서 찹쌀도너츠를 구해온다고 한다. 그 찹쌀도너츠는 저렴해? 안에 팥도 들었어? 라고 묻는 나에게. 할 말이 많다는 듯 1분 가까이 되는 음성 녹음을 보내온다. 격양된 목소리와 함께 찹쌀도너츠에 대한 지식을 뿜어낸다. 뚜레쥬르는 1,600원에 팥이 들어있고, 파리바게트도 1,800원에 팥이 들어있는데 설탕이 너무 많이 뿌려져 있어서 하나만 먹어도 해비하다- 찹쌀이 거의 없고 팥앙금 자체도 달다- 그런데 뚜레쥬르는 설탕이 없고 아침 10시에 가면 갓 구워낸 찹쌀도너츠를 얻어낼 수 있다-고 말하는 I는 행복해 보였다. 하루에 단 7개만 구워내는 찹쌀도너츠를 오픈런해서 구해오고, 집에서 직접 내린 커피와 마시며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는 I를 떠올리면. 마음이 몽글몽글 좋아진다. 행복은 별게 아니다.
B는 딱히 빠져있는 것이 없다고 한다. 영화, 책, 음악, 가구, 커피, 패션... 평소 좋아하는 것들이 무궁무진한 B에게 '빠져있다'라는 기준 자체가 높은 듯하다. 그러다 무언가 생각난 듯 팀플 중에 친해진 팀원의 이야기를 꺼낸다. 용접 기술이 있는 그 팀원과 간단한 프로젝트 하나를 계획 중이라고 한다. 스테인리스 재료를 활용하여 제작할 수 있는 것들을 구상하고, 레퍼런스를 찾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반가운 소식이다. 적어도 내가 지켜본 B는 항상 생산을 갈망하기에. 자아를 전시할 수 있는 형태를 직접 만들어내는 시도는 B에게 큰 기쁨일 테니 말이다. 언제나 자기 삶의 방향과 모양을 살피고 경계하고 개입하는 B는 하고 싶은 것이 정말 많다. 하고 싶은 것이 없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던) 나에게는 언제나 큰 영감이 되어준다. 덕분에 나도 나를 들여다보게 된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서 어떤 것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내고 싶은지... 대학교 4학년을 앞둔 이 시점에서, B는 나에게 언제나 자극적이다.
사람은 무한하다. 사람은 가변적이고 연속적이기에. 누군가를 완전히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심지어는 나 자신조차도 말이다) 애초에 누군가를 서술하고 묘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 순간에도 그 사람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우리는 파악할 수 없는 것에 큰 불안감을 느끼고, 동시에 큰 매력을 느낀다. 정보화의 세상 속에서, 사람은 0과 1로 바뀔 수 없는 대상이다. 0과 1 세계의 시선으로 사람을 바라보기 시작한다면.. 망한다. 그러니 단단히 기억해야 한다. 감히 사람을 파악하고 정리하고 해석하려 들면 안 된다는 것을. 2024년 11월 29일 오전 10시 53분에 건넨 질문에 나의 측근들은 이렇게 대답했으나. 그게 전부이다. 나는 그저. 답변의 내용, 방식과 태도에서 뿜어져나오는 다름을 경험할 수 있음에 기쁘다. 주변 사람들의 순간순간을 자주 물어보고 기록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