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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 by Yang EJ (양이제)]

 

 

과거로 돌아와, 다시 아무개 씨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있습니다. 아무개 씨는 생각합니다. '아무도 없는 길목에서 혼자 넘어질 줄이야.' 몸이 점점 앞으로 기웁니다. 이는 아무개 씨가 의외성을 느낀 순간입니다. 어쩌면, 아무개 씨는 자신의 몸이 고꾸라지면서도 넘어지고 있단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만약 이런 경우, 이미 자신이 길에 뻗고 난 후가 아무개 씨가 의외성을 느낀 순간이겠지요. 그러나, 두 시기 모두 '돌에 걸려 넘어지다' 사건이 이미 종료된 이후라는 점은 변하지 않습니다. 두 경우 모두 아무개 씨가 사건을 중지할 통제력을 잃은 후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앞의 두 시기에 아직 사건이 종료되지 않았음을 주장하려면, 아무개 씨가 그 시점에 판도를 뒤바꿀 능력, 즉 사건에 대한 통제력이 있었음을 먼저 주장해야 합니다. 돌에 걸려 넘어지려는 찰나에 아무개 씨가 순간적으로 몸의 균형을 되찾을 능력이 있었고, 결국 왕년의 기계체조 선수 시절의 운동신경을 발휘해 아슬아슬하게 몸을 지탱했다고요. 그러나 이를 주장하고자 들면 우리는 곧 모순과 마주합니다. 그렇다면 '돌에 걸려 넘어지다' 사건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죠. 이야기의 가장 기본 전제가 사라지는 겁니다. 따라서 우리는 '돌에 걸려 넘어지다' 사건을 언급하려면, 아무개 씨가 의외성을 느낀 시점에 사건 또한 이미 종료되었다는 진실을 먼저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돌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란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는 게 아니니까요. '돌에 걸려 넘어지다' 사건은 현상이 이미 종료된 이후에 의외성이 판단되었습니다. 이전 글의 '허리케인이 빈집의 지붕을 날리다'와 마찬가지로요.

 

'허리케인이 빈집의 지붕을 날리다' 사건은 사건이 이미 종료된 시점에서 인간이 의외성을 판단하는 과정에 참여하였고, 의외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사건 종료 후 의외성이 판단된 '돌에 걸려 넘어지다'가 사건이라면, 역시 종료된 시점에서 뜻밖이라 판단된 '허리케인이 빈집의 지붕을 날리다' 또한 사건입니다.

 

지금까지의 글을 통해 사건을 두 종류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첫째, '돌에 걸려 넘어지다', '떨어지다'와 같이 인간이 직접 현상에 참여하여 우연한 결과를 만들어낸 경우. 둘째, 인간이 현상에 기여하거나 그로 인해 직접적인 타격을 받지 않았으나, 인간이 그 현상에 의외성이 있다고 해석한 경우. 첫 번째 경우에서 인간은 사건의 주체이자, 의외성을 판단한 이해자로서 작용했습니다. 두 번째 경우에선 인간이 이해자로서만 작용했고요. 그러나 두 경우 모두 어떤 형태로든 인간이 존재했습니다. 인간은 사건이 없어도 인간입니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우리는 여전히 인간입니다. 하지만, 사건은 인간이 없다면 사건일 수 없습니다. 인간은 사건을 선행합니다. 따라서 인간-사건의 순서는 적절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현장에 있지 않으며, 의외성을 판단하는 과정에서조차 존재하지 않는 현상들은 사건이 될 수 없을까요? 당연합니다. 인간은 현상을 인지하는 순간, 자연스레 의외성을 판단하게 됩니다. 인간이 의외성을 판단하는 과정에서조차 없었다는 것은 인간이 미처 현상을 인식하지 못했음을 뜻합니다. 보지도 듣지도 못한 일이 어떻게 사건이 될 수 있을까요?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바람일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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