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끝내 부모를 용서하고야 마는 자식의 마음이란 - 뮤지컬 마틸다 [공연]
-
교환학생으로 영국에 왔다. 교환 학교를 선택할 당시에는, 지금 생각해 보면 희한하리만치 영국에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가 영국을 선택한 것은 영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뮤지컬 강국이라는 이유도 있지 않을까 싶다. 매일 같이 런던 웨스트엔드에 들락거리는 행복한 뮤덕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인생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법. 나는 뮤지컬을 비롯한 수많은 무대 예술의 중심지인 런던 웨스트엔드까지, 기차로 3시간은 달려가야 하는 잉글랜드 북부의 한 소도시에 교환학생으로 오게 됐다. 시간 날 때마다 뮤지컬을 보러 달려갈 수 있는 환경은 아니라 아쉽지만, 그래도 이번 달 초에 처음으로 기차를 타고 런던에 갔다. 바로 뮤지컬 <마틸다>를 위해서.
뮤지컬 <마틸다>는 런던 웨스트엔드 원작이자, 내가 가장 애정하는 뮤지컬이다. 런던에서의 첫 뮤지컬로 <마틸다>를 고른 건, 나에게 당연한 선택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이미 <마틸다>를 두 번이나 봤고, 마틸다에 대한 오피니언을 이미 기고한 적이 있다. 그래서 뮤지컬 <마틸다>에 대한 이야기를 또 한 번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러나 이 감동적인 뮤지컬은 나에게 볼 때마다 새로운 깨달음을 안겨주고 말아서, 이렇게 또 글을 쓴다.
뮤지컬 <마틸다>의 첫 번째 넘버는 Miracle이다. 어린아이들과 그들의 부모가 등장해 ‘모든 생명은 기적’이라며 함께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아이들은 모두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 이 세상에서 유일한 ‘기적’ 같은 존재라는 걸 몸소 느낀다. 다양한 인종의, 제각각 다른 생김새를 지닌 아이들이 무대에서 노래 부르고, 춤을 추며 무대 위에서 있는 힘껏 자신들의 에너지를 발산한다. 모든 생명은 기적이며 환영받아야 마땅하다는 이 넘버의 메시지가 겹치며, 이 모든 어린이 배우가 ‘기적’처럼 느껴진다. 대견하면서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이 뮤지컬에서 부모로부터 환영받지 못한 유일한 아이가 등장하는데, 그게 바로 주인공 마틸다다. 마틸다의 부모에게 마틸다는 그저 거슬리는 오점일 뿐이다. 그들은 마틸다에게 폭력적으로 굴고, 폭언하며, 그를 방치한다. 그러나 이 기적 같은 아이, 마틸다는 책을 읽고, 이야기를 만들며 자신만의 단단한 세계를 구축하며 살아간다.
뮤지컬 <마틸다>는 마틸다가 아이들을 억압하는 부조리한 어른 트런치볼 교장에 대항하고, 자신과 비슷한 학대의 상처를 지닌 허니 선생님과 마음을 나누며 성장하는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세상에는 부조리한 어른들이 많다는 것, 아이들은 생각보다 단단하고 강한 존재라는 것, 그리고 어른과 아이는 서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 마틸다는 아이들에게, 그리고 아이였던 어른들에게도 위로가 되는 수많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내가 뮤지컬 <마틸다>를 보러 간 날은 낮 시간대 공연이었기 때문인지 초등학교 등 교육기관에서 단체 관람을 왔었고, 아이를 데려온 가족들이 많았다. 이 모든 아이가 마틸다를 만날 수 있음에 감사했다.
뮤지컬 <마틸다>에 집중하며 웃고 울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장면이었다. 마틸다의 아빠, 미스터 웜우드가 마틸다에게 짜증을 내며 그의 손을 폭력적으로 잡아끈다. 오로지 이윤을 위해 구매자들을 속이는 중고차 판매상인 웜우드가 차를 팔아넘긴 상대가 운 나쁘게도 범죄 조직 마피아들이었기에 그와 그의 가족들은 신변(?)을 위해 이사를 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마틸다는 떠나고 싶지 않았고, 자신을 처음으로 있는 그대로 봐주고 존중해주었던 허니 선생님과 함께 머물고 싶었다. 허니 선생님 역시 자신의 소중한 친구 마틸다를 잃고 싶지 않았다. 허니 선생님은 웜우드에게 제안한다. 자신이 마틸다의 보호자가 되겠노라고. 마틸다 역시 허니 선생님과 함께 살고 싶다고 웜우드에게 말한다.
극 내내 마틸다에게 못되게 굴었던, 입에 담지 못할 폭언을 일삼았던 아빠였지만 마지막 순간 웜우드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마틸다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한다. 그리고 그때, 마틸다가 웜우드에게 손을 건넨다. 다시 얼떨떨한 표정으로, 웜우드는 마틸다와 마지막 악수를 한다. 그리고 그렇게 그들은 이별한다.
나는 이번에 뮤지컬 <마틸다>를 보면서 총 세 번 눈물을 흘리고 말았는데, 마지막으로 눈물을 흘린 장면은 바로 이 마지막 장면이었다. 평생 부모에게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한, 학대받았던 그 어린아이가 부모를 먼저 용서하고 만다. 스스로 부모와의 이별을 선택하고, 그 부모를 떠나보내면서 결국은 부모를 증오하는 게 아니라, 용서키로 한 것이다. 자기 잘못을 뉘우치지도, 사과하지도 않는 이 못난 부모에게 담담히 먼저 손을 내밀기까지, 얼마나 많은 슬픔과 증오를 혼자 참아냈을까. 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 부모를 용서한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일까.
그래서 나는 이 장면이 대견하기보다는 슬프게 다가왔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부모를 용서하고 먼저 화해를 건네는 이 행위가 자식에게 어쩔 수 없는, 필연적인 무언가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용서할 수도, 혹은 안 할 수도 있는, 온전히 나에게 선택권이 주어진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원하든 원하지 않든, 부모를 용서해야만 부모에게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는 자식의 마음이 느껴졌다. 부모를 미워할 수 없는, 끝내 부모를 이해하고 용서해야만 하는 그 마음이 쓰라렸다.
흔히들 부모의 사랑이 헌신적이라고 하지만, 수없이 많은 경우에 부모의 사랑은 폭력적이고, 이기적이며, 일방적인 것 같다. 마틸다를 보며 부모를 향한 자식의 사랑을 본다. 아무리 부모가 미성숙한 어른이더라도, 자신을 학대했을지라도, 끝내 부모를 용서하고야 만다. 마틸다의 사랑, 어떻게든 부모를 이해하려 하고, 용서하려 하는 이 자식의 사랑이야말로 온전하고, 순수하며 헌신적으로 느껴진다.
모든 아이는 어느 시점까지 부모를 무조건 이해하고 용서한다는 글을 언젠가 본 적이 있다. 한때 아이였던 사람으로서, 맞는 것 같다. 부모가 어떤 사람이어도 자식은 그걸 판단하지 않는다. 부모가 제아무리 나에게 이해할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었다 할지라도, 자식은 언제나 그런 부모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다시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다. 나를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해준 사람을 향한 무조건적이고 순수한 사랑이 있다. 그래서 결국 부모를 용서하고야 만다.
마틸다는 고작 8살이다. 세상을 많이 경험해 보지도 못한 이 작고 어린아이가 어떻게 그렇게 큰 사랑을 지닌 채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결국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뮤지컬 마틸다의 첫 넘버가 말해줬듯이, 모든 생명, 모든 아이는 기적(Miracle)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수민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 목록
댓글1-
kyul
- 2024.11.29 17:28:14
- 답글
- 신고
-
- 읽다가 울어버렸습니다.
-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