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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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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하루아침에 용수가 사라지면서 시작된다.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서 선원으로 일하는 용수는 한 가지 강렬한 욕망을 품고 있다. “죽고 싶다.”

 

그는 자신이 일하는 배의 선장 영국에게 자신의 죽음을 위장해달라고 부탁한다. 사고사로 위장한 뒤 보험금을 수령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고작 한 달. 그러나 그의 계획은 가족들이 그의 죽음을 믿지 않으면서 꼬이기 시작한다.

 

용수의 거짓말은 어촌 공동체의 숨겨진 균열을 드러낸다. 어촌과 도시의 삶은 겉보기에 다르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인간 군상들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바다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이들의 모습은 빌딩숲 속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과 닮아 있다. 용수의 이야기는 깊은 바닷속에 숨겨져 있던 인간의 이기심과 질투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영화 <아침바다 갈매기는>은 어촌과 도시를 잇는 우리네 삶의 민낯을 조명한다.

 

 

 

보험금이 나를 대신할 수 있을까


 

공리주의는 행위의 옳고 그름을 그 결과로 판단하며, 더 큰 utility를 산출하는 행위를 옳다고 여긴다. 정의의 기준을 양적으로 수치화하는 공리주의는 당시 지성사에 큰 혁신을 가져왔다. 그러나 공리주의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더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테러리스트의 어린 자녀를 고문해도 되는가?”

 

인간에게는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본질적인 가치가 있다. 어떤 행위가 큰 공리를 산출한다 해도, 그 행위가 누군가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면 쉽게 옳다고 말할 수 없다. 인간은 일정 액수의 돈으로 대체할 수 없는 존재다.

 

하지만 용수는 인간으로서 지니는 최소한의 가치를 포기하면서까지 어촌 마을에서 탈출하고자 한다. 그는 어머니 판례와 아내 영란에게 남을 자신의 빈자리를 보험금으로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는 거짓말을 도와줄 선장 영국에게 300만 원을 건네며 자신의 죽음을 설계한다. "한 달이면 끝날 일"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그의 죽음은 가족들에 의해 한 달이 넘도록 확정되지 않는다.

 

가족들은 보험금을 원하지 않는다.

 

 

 

보험금으로 대신할 수 없는 어떤 자리


 

용수는 가족들에게 자신을 대신할 보험금을 남기려 했다. 거동이 불편한 판례와 얼마 전 아이를 유산한 영란은 그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다. 가장의 빈자리를 보험금으로 채우겠다는 용수의 기대와 달리, 가족들은 그를 "살아있다"고 믿으며 돌아오길 기다린다.

 

보험금을 받으려면 시체가 발견되거나 가족들이 사망신고를 해야 한다. 그러나 용수의 시체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고, 가족들은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공동체의 민낯: 애도와 경제 사이


 

용수의 죽음은 단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 그의 실종 소식은 어촌 공동체 전체를 흔든다. 마을 선원들은 생업을 멈추고 그의 수색에 나선다. 처음에는 순수한 염원에서 시작된 수색이 시간이 지날수록 보험금과 보상금을 노리는 행동으로 변질된다.

 

중단된 어업 활동은 공동체의 경제적 긴장을 가중시킨다. 오늘 경매장에 물고기를 내놓지 않으면 내일의 경쟁력이 떨어진다. 생계가 위협받으며 어촌 사람들 사이에서는 갈등이 심화된다. 어촌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의 주제는 다시 용수의 죽음, 더 구체적으로는 그의 보험금으로 돌아간다.

 

 

 

배타성과 제노포비아: 영란의 현실


 

보험금의 수령자는 베트남인 아내, 영란이다. 그녀를 향한 어촌 사람들의 시선은 우리의 제노포비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폐쇄적인 어촌 마을에서 영란은 완벽한 이방인이다. 한국어가 서툴고 외모가 다르며, "발전되지 않은 나라"에서 온 그녀는 마을 사람들에게 이질적인 존재다.

 

그녀를 향한 편견은 점점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용수의 죽음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공동체의 민낯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영화 상영 전, 박이웅 감독은 이 영화를 아무런 정보 없이 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글은 이미 영화에 대해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해버린 것이 아닌지 한 편으로는 걱정된다.

 

<아침바다 갈매기는>이라는 제목을 곱씹다 보면, 체홉의 <갈매기>가 떠오르기도 한다. 떠난 사람과 남겨진 사람, 이들의 이야기가 공통된 코드를 공유한다. 사실주의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 역시 큰 울림을 줄 것이다.

 

영화는 묻는다. “돈으로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결국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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