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llust by LUST
무거움은 늘 심리적 탈진을 동반한다.
본디 무거움을 끌어안고 태어난 사람에게 가벼워져야 한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해결할 수 없는 상실, 지독한 사랑, 모호함 뭐 그렇고 그런 것들이 뒤섞여 뒤틀린 건지, 본래 근본적인 문제를 품고 태어난 건지. 내가 감각하는 세계는 왜 이리도 무거울까. 나에게 오는 것들을 감당하지 못할 무거움으로 만들어버리고 도망치는 습성은 날 항상 초라하게 만들었다.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쌓였다 없어지는 일이 반복되며 그것들은 아무도 모르게 몸집을 점점 키웠다. 꽤 오랜 시간이 그것들을 방치한 채 흘렀고, 엉키고 엉킨 덩어리는 아주 단단하게 속에 자리 잡았다. 뭉쳐있는 게 꽤나 더러운 색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난 그것들을 하나씩 도려내기로 마음먹었다.
한다. 안 한다. 맞다. 틀리다. 옳다. 옳지 않다. 진짜다. 가짜다. 아프다. 아프지 않다. 믿는다. 불신한다. 정상이다. 비정상이다. 약하다. 강하다. 사랑한다. 미워한다. 진실이다. 거짓이다.
이것도 아닌데 저것도 아니다.

결심이 무색하게 울컥이며 올라오는 마음들은 여전히 날 아득하고 괴롭게 만들었다. 눈을 감으면 틈도 없이 끊어 오르는 꿈을 꾸었다. 근본도 없이 자주 분해되고 결합되는 생각들은 일상을 놓아버리고 놓치게 만들었다. 길 잃은 나날들이 지속되었다.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고 속에서 머물고 머물다가 결국 일상을 마비시키는 체기로 변하고 마는 마음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끊임없이 반추하다가 굳어지지 않기 위해, 굳어진 몸은 손쉽게 부서져 무능해지고 말 거라는 전제로부터 나를 보호해야 했다.
알량한 자존심 때문일까.
유약함을 드러내지 않고 스스로 만든 좁고 견고한 땅에 우뚝 기립해 있는 것이 내가 불완전성으로부터 도망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눈앞에 보이는 것들에 몰두했다. 볼 수 없는 것들을 잠재울 만큼 애썼다. 일정하고 고요하고 아득하고 건조했다. 조금 앓고 나면 또 금세 괜찮아졌다. 아프다고 말하지 않으면 아프지 않은 사람이었다. 손에 쥐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놓을 수 있는 게 나 말고는 없었다. 열심히 살아남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중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권태와 그리움의 중간지점에서 방황하며 서 있었다.

겨울을 통과하는 중이다. 바람은 날카롭다. 울렁거리는 햇빛이 따갑다. 한 해의 끝을 달리는 사람들은 부산스럽다. 모든 것은 말미가 있다. 그러니 봄 또한 돌아올 것이다. 나를 들쑤셨던 마음들, 도망쳤던 관계들, 소름 끼치도록 애썼던 순간을 반추하는 마음 또한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 이윽고 잠잠해질 것이다. 여전히 들 수도 없는 무게를 가진 추한 모습을 직면하는 것이 익숙지 않다. 그럼에도 씩씩하게 나아갈 것이다. 그럼에도 틈틈이 행복할 것이다. 볼 수 없는 것들을 찾으려 할 것이다. 쓰지 않고는, 그리지 않고는, 당장 발설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으니까. 연약한 마음을 붙잡아두고 싶은 이 마음만큼은 영속될 것이다. 요란한 꿈을 지겹게 꿀 것이다. 모호함을 견디며 무사해질 거라는 희미한 희망을 가진다.
다만 확실한 건, 열망은 위태로움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