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독의 심폐소생술 - 팬텀 스레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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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불 같은 시작
사랑은 불같다고들 한다. 블에는 연기가 피어오르며 서서히 붙기 시작하는 불도 있겠지만, 한순간의 강력한 마찰로 시작되는 불, 그리하여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불도 있다. ‘레이놀즈’와 ‘알마’의 사랑이 바로 그런 불같다. 알마는 일하던 식당에서 실수를 한 순간 손님인 레이놀즈와 눈이 마주친다. 그러나 민망해하거나 모른 척 하지 않고 둘 다 웃어버린다. 그 찰나의 눈빛 교환과 웃음이 이들에게 사랑이 시작되고 있음을 단숨에 보여주고 설득한다. 그만큼이나 순식간이고 또 강렬하다. 불을 바라보는 얼굴처럼 그들의 얼굴에도 어느새 온기가 번져 있다. 불은 말하지 않는다. 대신 보인다. 확연히 보인다. 사랑이 그들의 얼굴에 옮겨붙은 것만 같다.
영화 <팬텀 스레드>는 1950년대, 런던 왕실과 사교계의 웨딩드레스를 제작하는 의상실 ‘우드콕’을 운영하는 디자이너 레이놀즈가 ‘알마’라는 젊은 여성을 뮤즈로 삼게 되면서 그들의 일터-집터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긴장과 불안, 기이한 ‘사랑’을 담아내고 있다.
알마는 웨이트리스 일을 그만두고 레이놀즈의 집에 살게 된다. 서로가 정확히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들의 시선을 대담하게 하나의 직선으로 그은 그 불꽃 같은 만남이 그 이후에 생각해야 할, 대처하고 협의해야 할 현실들을 미리 설득한 것인지 그들은 한집에 산다.
그들의 사랑이 단순한 충동으로 시작된 게 아님을 보여주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알마를 집에 초대해 그녀의 신체 치수를 측정한 레이놀즈는 알마가 자신이 찾던 체형의 여성인 걸 알게 되고 놀란다. 자신의 체형을 싫어하던 알마는 그의 말을 듣고 자신감을 얻는다. 레이놀즈는 알마에게 갖가지 옷을 만들어 입히며 그녀를 아름답게 치장하고, 알마는 거기에 만족하며 그를 더더욱 사랑하게 된다.
그녀가, 정확히는 그녀의 몸이 ‘사이즈’라는 정밀한 숫자를 거쳐 그에게는 완벽하게, 그녀에게는 새롭게 인식된 것이다. 사람을 새롭게 만들어주는 사랑의 마법이 불꽃 같은 충동뿐만 아니라 이렇듯 그들 각자의 이해에 기반하여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의 사랑이 갑자기 시작된 듯 보여도 실은 그 기반이 꽤 단단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이 사랑이 다분히 권력적이라는 예감 또한 하게 되면서.
일과 사생활의 경계
그들이 사는 곳은 정확히 ‘집’이 아니다. 그곳은 레이놀즈의 누나 ‘시릴’이 같이 살고 있으며, 직원들이 출근하여 바느질이나 재봉을 하고 손님들이 와서 주문을 의뢰하고 옷을 입어보는 ‘의상실’이다(때로는 패션쇼도 열린다). 일하는 장면을 비출 때 흐르는 우아한 음악과 바느질 하나하나, 신체를 가로지르는 줄자의 센치미터까지 세세하게 보여주는 미장센이 그곳이 끊임없이 일이 벌어지는 공간임을 보여주고 있다.
한정된 공간을 다양하게 활용하기 위해서인지 의상실의 복도는 좁은 반면 방은 많으며, 레이놀즈와 알마가 거주하는 방은 위층에 있어 중앙의 원형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집이면서도 은근히 차갑고, 일하는 곳이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사랑이 펼쳐지는 ‘의상실’에서 알마는 일과 사생활에 걸쳐있게 된다.
일을 할 때 레이놀즈는 칼 같은 사람이 된다. 알마가 차를 가져와도 거절하고 그의 방에 들어가려는 것도 거절한다. 그 어떤 호의도 자신을 방해한다며 물리친다. 그는 일할 때는 최상위 권력자가 되어, 마치 그래도 되는 것처럼 아주 매몰차게 거절한다. 알마를 애인이 아니라 직원처럼 대하는 것 같다. 알마의 성의를 무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알마는 실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하는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본다. 알마는 그곳에서 착실히 일을 배우고 시릴에게도 차차 인정받으며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게 된다.
어느 밤, 알마는 시릴과 모든 직원들을 잠시 밖으로 내보내고 레이놀즈와 단둘이 저녁을 먹기로 깜짝 계획을 세운다. 시릴은 아닌 것 같다고 하면서도 알마의 진심을 알았는지, 혹은 레이놀즈가 알마에게는 다르게 반응할 거라 생각했는지 자리를 비켜준다. 의상실에 들어온 레이놀즈. 그는 알마 혼자 있는 걸 보고 얼굴이 굳는다. 그녀가 만든 음식을 맛보며 얼굴을 구기기까지 한다. 알마도 그의 반응에 놀라긴 매한가지다. 이윽고 서로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축복과 사랑이 들어차야 하는 자리를 알게 모르게 쌓인 냉대와 무례, 섭섭함, 상해버린 감정이 가득 채운다.
위기가 기회로
냉기가 돌게 된 의상실에서, 단골에게 의뢰받은 드레스의 최종 상태를 확인하던 레이놀즈가 돌연 쓰러지게 되면서(그가 드레스을 기대며 쓰러지면서 드레스가 상하고 만다) 레이놀즈 인생에는 위기가 찾아온다. 바로 그 순간, 좀 전의 장면, 그날 아침 알마가 식용버섯과 독이 든 버섯을 구분하는 책을 살피면서 차를 우렸던 장면을 돌이키게 된다. 알마는 알고 그랬을까, 모르고 그랬을까. 그가 느닷없이 쓰러진 이유를 그녀는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 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레이놀즈는 회복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알마에게 의지하게 되고, 알마는 아픈 그를 최선을 다해 보살피면서 이들의 관계는 전보다 더 돈독해진다. 레이놀즈는 알마만 자신에게 접근하게 해서 집안의 모든 규칙을 바꿔버리고, 그걸 바라왔던 알마는 그 바뀐 규칙을 열렬히 수호한다. 결국 회복된 레이놀즈는 그녀에게 결혼을 제안한다. 이들의 사랑은 그렇게 계약이라는 보다 확실한 관계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어떤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불안한 분위기 속에서 뿌리를 내리는 사랑은 그 의상실이 넓지만 왠지 모르게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좀체 성격을 알 수 없는 사랑으로 보인다. 이 결혼도 그들의 사랑의 결실이 맞을까 싶게 한다. 관객은 그들의 표정, 행동 등으로 그들의 사랑이 어떤 상태인지 추리해야만 한다. 그들의 사랑은 얼굴에서부터 훤히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둘만이 암기하고 있는 은밀한 암호 같기 때문이다. 영화는 관객에게 이들의 사랑을 추리하게 하며 촘촘히 전개를 이어간다.
단번에 끝날 것 같으면서도 계속 이어지는 이들의 사랑은 어떻게 될까? 그 불은 결국 사그라들까, 아니면 더 활활 타오르게 될까. 그 사랑은 재를 남기고 꺼져버릴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나, 혹은 자신들에 옮겨붙어 더 오래 불타오를까. 그런 기로에서 치명적이고 충격적인 결론이 드러난다.
독의 심폐소생술
알마가 결혼 후 그를 편하게 대하면서 그가 싫어하는 행동을 저지르고 레이놀즈 또한 알마가 싫어할 법한 행동을 해서 서로 불편한 감정이 또다시 쌓여간다. 결국 레이놀즈는 시릴에게 가서 알마가 마음에 안 든다고, 내보내고 싶다고 역정을 내기도 한다. 그리고 그 광경을 알마가 똑똑히 목격한다.
신년 맞이 무도회에 가자는 제안을 거절한 레이놀즈를 두고 알마 혼자 무도회를 가는 장면에서 이들의 갈등이 절정에 달한 걸 알 수가 있다. 레이놀즈는 마지못해 그녀를 찾아 나서는데, 신나게 무도회를 즐기고 있는 알마를 보게 된다. 나는 여기서 이들의 관계가 아예 끝이 났구나 싶었다. 불타는 사랑이 결국 이렇게 끝나는구나 싶었다.
그녀가 대놓고 독버섯으로 오믈렛을 만드는 장면은 정말로 그 종말을 알리는 듯하다. 그녀는 결국 그를 죽이려는 걸까? 사랑이 이렇게 끝나버리는 걸까? 자신의 운명을 모르는 건지 레이놀즈는 그녀가 만든 버섯 오믈렛을 한입 먹는다. 그때 알마가 말한다.
“당신이 쓰러지길 원해요. 힘없이, 나약하게, 무방비 상태로. 내 도움만 기다리며... 그러곤 다시 회복하길 원해요.”
그리고 더 놀라운 레이놀즈의 대답.
“키스해 줘, 내 사랑. 내가 쓰러지기 전에.”
레이놀즈는 다 알고 있었다. 알마가 나약해진 자신을 보살핌으로써 시들고 있던 그들의 사랑이 다시 회복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독 같은 치명적인 사랑이 그들을 갈라놓지 않고 더 단단히 뭉치게 하는 광기로 발현되는 순간이다. 말하자면 독의 심폐소생술이다.
이 충격적인 장면은 영화 곳곳에 삽입된 알마의 인터뷰 장면들을 돌이켜 보게 한다. 그 장면들에서 알마는 레이놀즈를 죽였거나 그와 헤어진 사람처럼 그를 회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랑이 끝났구나 짐작하며 보게 된 거였다. 그러나 모두 오해였다. 인터뷰이는 실은 독버섯 오믈렛을 먹고 쓰러진 레이놀즈를 치료하기 위해 온 주치의였고, 알마의 기나긴 진술은 우리의 사랑은 당신의 진료가 필요 없다는, 명확한 거절 의사였던 것이다.
그들의 사랑은 그렇게 모두를 내보내고 문을 닫으면서 완성된다. 서로가 해줄 수 있는 일을 하며 그들은 이 사랑을 이어나갈 것이다. 불을 보고 있던 그들은 결국 불에 뛰어들었지만 타버리지 않았다. 그들은 타오르는 불이 되었다.
[안태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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