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토마토 신은 그녀의 망상일까, 신일까 – 토마토, 나이프 그리고 입맞춤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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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토마토, 나이프 그리고 입맞춤>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도 시험에 던져진 말랑하고 연약한 존재들에게
나이프, 그리고 입맞춤을.
어느 날 음대생 서마리 앞에 ‘말하는 토마토’가 강림한다. 토마토는 마리에게 ‘제자가 돼라’는 명령과 함께 그리하면 ‘악몽’으로부터 지켜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데이트폭력의 피해자로 종교와 보호제도에 의지하고 있던 마리는 토마토의 말이 신경 쓰이지만 애써 무시한다. 그러던 중 가해자였던 전 연인이 한밤중 마리의 집에 침입해 보복을 가한다.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마리는 토마토가 내민 기회를 쥐기로 결심하는데...
- 책소개 中
내가 이 책을 처음 접한 곳은 한 SNS 게시글이었다. 그저 흑백 만화라는 점에 끌려 구매했는데, 내용이 정말 충격적이었으며, 몇 시간 동안 북토크를 하고 싶은 책이라는 글이었다. 개인적으로 내용에 관해 여러 관점과 생각을 나누는 것을 정말 좋아하던 나에게 ‘북토크 하기 좋은 책’은 강렬히 끌릴 수밖에 없었고, 만화라는 점에서 더욱 강한 흥미를 느끼게 되어 읽게 되었다.
실제로 <토마토, 나이프 그리고 입맞춤>은 아트인사이트에서 진행하는 독서 모임에서 주제 책으로 선정되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왜 ‘북토크 하기 좋은 책’이라고 말했는지 명확히 이해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대사 하나하나가 의미를 담고 있었기에 다양한 해석을 들을 수 있어서 이와 같은 모임에 추천하기 정말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토마토, 나이프 그리고 입맞춤>은 ‘100 Brix’, ‘진지하고 싶지 않은 혜지씨’, ‘공룡의 아이’, ‘녹슨 금과 늙은 용’, ‘토마토, 나이프 그리고 입맞춤’ 총 다섯 개의 단편 만화로 구성된 만화책인데, 전체적으로 연약한 영혼들이 겪는 성숙에 다루고 있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책의 제목이자 가장 메인인 ‘토마토, 나이프 그리고 입맞춤’을 제외하였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100 Brix’와 ‘녹슨 금과 늙은 용’이라 답할 수 있다.
‘100 Brix’는 한 소녀와 외계인의 사랑을 다룬 가장 짧은 단편인데, 외계인이 지구에 난민으로 정착한 시대에 자신의 애인이 외계인인지 확인하고 싶던 소녀가 그 의문으로 결국 연인을 잃게 된다는 내용이다. 소녀는 집에서 부모님에게 외계인 정착에 대한 불만을 듣는 환경에 놓여있다. 그렇기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신비로운 연인이 외계인이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에 인터넷에서 본 외계인 테스트를 연인에게 실행해본다. 하지만, 그 문항에 ‘외계인이 물에 들어가면 녹는다.’라는 말이 있었고, 소녀가 연인에게 물에 들어가달라고 하자 그는 그녀에게 “도망치기만 해서는 진정으로 원하는 건 영영 알 수 없게 돼.”라는 말을 남기고 녹아내린다.
사실, 소녀는 외계인을 싫어하는 집에서 자랐지만, 정말로 자신이 외계인을 싫어하는지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나온다. 그렇기에, 자신의 애인이 과연 사람인 게 좋은지 알 수 없었기에 질문 대신 ‘테스트’라는 다른 방법으로 그를 알아내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질문은 아직은 어린 소녀에게 가혹할 정도로 ‘이별’이라는 결과로 답이 돌아온 것이다.
<녹슨 금과 늙은 용>은 신입 회계사인 한주영이 늙은 용의 ‘자신의 전 재산인 금을 처분해달라.’라는 의뢰를 받고 진행되는 이야기이다. 처음에 한주영은 높은 자산 가치인 금을 처분하기만 하면 막대한 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흔쾌히 의뢰를 수락하지만, 이곳의 이세계의 통화가치가 바뀌어 금이 돌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큰 위기를 맞닥뜨리게 된다.
그러다, 과거 자신의 의뢰인이 사랑하는 이를 위해 동족을 버리고 세상에 맞섰지만, 결국에는 연인과 헤어지게 되었고 ‘너만은 변치 말아달라’는 연인의 말에 따라 정말 오랜 세월 변하지 않는 금을 악착같이 모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용은 자신이 연인에게 방해가 되어 헤어져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연인에게 바쳤다. 과연, 그는 마침내 수명이 다해가 미련이었던 금을 처분하면서, 그의 사랑에도 마침표를 찍었을까.
<토마토, 나이프 그리고 입맞춤>은 다섯 개의 단편 중 가장 충격적인 작품이었다. 자신의 악몽을 이겨내기 위해 토마토 신의 손을 잡은 마리는 정신병원에서 의사인 최연주와 만난다. 그녀는 상담 도중 최연주의 ‘악몽’도 자신이 해결해주겠다고 이야기하는데, 둘의 대치가 마치 병원이라는 ‘세상’ 안에 세상을 정복하려는 ‘마리’와 최후의 벽인 ‘최연주’의 대립은 연상하게 한다.
만화를 읽다 보면 마리의 대사에서 심상치 않은 단어를 종종 볼 수 있는데, 이 때문에 정말로 토마토 신이 가해자를 죽여준 것인지, 아니면 마리가 스스로 죽이고 토마토 신이 죽였다고 거짓말을 하는지 알 수 없게 만든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토마토 신의 영향력은 점점 커져가고, 결국 모든 병원 사람들이 마리에게 넘어간 상태에서 최연주는 자신의 악몽과 마주하게 된다. 그녀는 악몽의 말을 듣고 결국 어떠한 ‘선택’을 해버리고 마리에게 넘어가 버리는데, 결과적으로 세상이 토마토 신의 것이 되어버린다.
이 에피소드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잠깐 등장하는 엑스트라도 나중에 다시 등장해 숨겨진 스토리를 직접 적어놓지 않더라고 눈치챌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들의 행동과 대사를 통해 마리가 언제부터 병원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고, 이들 또한 마리처럼 ‘악몽’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선택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야기 외에도 흥미로웠던 부분은 책의 구성에 있었다. 작가님이 의도하신 건지 아닌건지 모르겠지만, <토마토, 나이프 그리고 입맞춤> 전에 판타지 단편과 일상의 단편을 번갈아 두며 전개하여, 마지막에 와서는 ‘토마토 신’이 정말로 존재하는 판타지 세계관인지, 그저 마리의 망상일 뿐인 현실적인 스토리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기에, 이에 대한 의견이 책을 읽은 사람마다 다를 정도였는데, 결국 모두의 이야기가 정답이란 생각이 들어 더욱 흥미로웠다.
책은 그저 혼자 음미하는 것도 좋지만, 여러 사람과 생각을 나눠볼수록 글에 대한 해석과 사고가 넓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은 당신의 생각이 궁금하다.
[정소형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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