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햄릿이 들려주는 '감각적인' 햄릿 - 1인창극 햄릿

글 입력 2024.11.08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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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햄릿』은 1601년 발표된 이후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전 세계에서 여러 버전으로 공연되었다. 국내에서는 1951년 이해랑이 국내 초연을 연출한 뒤, 대중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여러 버전으로 계속 공연되고 있다. 그리고 2024년 올해에는 이를 방증하듯, 신시컴퍼니 <햄릿>, 국립극단 <햄릿>, 예술의전당 <햄릿>이 줄지어 상연되었다. 신시컴퍼니 <햄릿>와 예술의전당 <햄릿>이 비교적 원 텍스트에 집중했다면, 국립극단 <햄릿>은 햄릿 역에 이봉련을 캐스팅하는 젠더프리를 시도했고, 텍스트 또한 변화한 시대상에 맞춰 여성 혐오적인 대사를 지우고 다시 썼다. 그리고 국립창극단 수석 이연주 소리꾼을 주축으로 한 1인 창극 <햄릿>(각색·연출·작곡 김성수, 작창·판소리 이연주)은 이전까지와는 또 다른 시도를 했다.


이 공연은 ‘1인 판소리’가 아니라 ‘1인 창극’이다. 1인의 창자로 이루어진 판소리는 소리꾼이 전반적으로 내레이터 역할을 수행하면서 중간중간 등장인물로 분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소리꾼 이연주는 ‘1인 창극’이라는 말에 맞게 한 명의 창자로 무대 위에 서서 『햄릿』을 판소리로 각색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햄릿이 되어 햄릿의 입장에서 『햄릿』을 다시 쓴다. 이에 막과 장 모두 원작과 다르게 재구성되었는데, 원작에서는 장소에 따라 장이 구성된 것과 달리 본 공연에서는 햄릿과 관계 맺는 인물인 클로디어스, 거트루드, 오필리아, 폴로니어스, 호레이쇼, 로즌크랜츠와 길든스턴으로 장이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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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사 제공

 

 

공연이 시작하기 전부터 무대 위에 매달린 5개의 천에는 동양의 제사와 관련된 이미지들이 전개되며, 음악 또한 망자를 보내는 굿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는 망자를 인도하는 씻김굿을 연상시키며, 5개의 천은 종이 무구인 기메를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신의 무구인 오방기를 상징하는 듯하다.

 

죽음의 시각적, 청각적 이미지 속에서 햄릿 이연주가 등장한다. 원작에서 처음으로 햄릿이 자신의 감정을 진솔하게 드러내는 부분이 ─ “아아, 이 더러운 육체여! 차라리 녹아버려 이슬이 되거라. 전능하신 신은 왜 자살을 금하는 율법을 정해서 자살을 못 하도록 하시는가! 아, 지루하고 멋없고 살 가치도 없는 세상이여! … (1막 2장) ─ 극에서 햄릿이 가장 처음으로 내뱉는 대사이다. 이 대사를 시작으로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여러 등장인물이 차례대로 전개되며, 이때 햄릿이 그들에게 느끼는 감정에 집중해 텍스트가 진행된다. 즉, 부가적인 것들은 모두 삭제되어 원작에 가깝기보다는, 아버지를 잃은 햄릿이 황량한 마음으로, 아버지를 추모하며 자신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며 겪었던 이야기를 비교적 담담하게 풀어나간다.

 

햄릿은 크게 동요하지도, 분노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햄릿과 관계 맺었던 인물들은 차례대로 5개의 천(스크린)에 등장하는데, 이때 그들의 얼굴(국립창극단 일부 단원 출연)은 5개의 측면에서 촬영된 것으로 오방색이 각기 다른 의미가 있는 것처럼 우리가 일반적으로 누군가를 볼 때 그 얼굴은 하나이지만, 공연에서는 5개의 각기 다른 얼굴을 보여주며, 각기 다른 감정을 보여준다. 얼굴에 온전히 초점이 맞춰진 영상은 그들에게 느끼는 햄릿의 감정을, 역으로 그들이 햄릿에게 느끼는 감정까지 보여줌으로써 감각을 더욱 극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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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사 제공

 

 

햄릿에서 가장 유명한, 대표적인 대사 “To be, or not to be”는 통상적으로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로 해석되었지만, 이 작품은 “존재할 것이냐, 존재하지 않을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로 번역한다. 이때, 존재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본 공연은 햄릿이 느끼는 것, 즉 그의 감각(또는 감정)에 집중한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은 ‘성격’ 비극이다. 그리스 비극이 인물의 행동으로 비극이 촉발되는 ‘행동 비극’이었다면,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는 인물의 성격적 결함이 비극을 불러온다. 햄릿의 성격적 결함은 아버지를 죽인 사실이 명백함에도, 숙부를 죽이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우유부단함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작품에서 햄릿의 행동은 강조되지 않고 그가 느끼는 감정만이 진솔하게 표현될 뿐이다. 자아의 실질적인 존재 여부는 데카르트가 말했던 것처럼 사유에 의한 것이 아니라(cogito ergo sum), 그가 의심했던 ‘감각’에 기반하게 되는 것이다. 감정에 초점이 맞춰진 극의 진행은 햄릿을 덴마크의 왕자가 아닌, 한 명의 인간으로 존재하게 한다. 감각하기에 햄릿은 존재하고 있으며, 감정이 해소되지 않았기에 그는 존재하고자 한다.


그런데, 이 감정은 누군가를 향해 치닫지 않는다. 햄릿 자신이 지금 느끼는 감정을 서술하며 존재할 뿐이다. 이에 작품은 햄릿의 광증, 오필리아에 대한 그의 사랑, 복수를 크게 다루지 않는다. 대개의 공연에서 강조되는 마지막 장면인 햄릿과 레어티즈의 대결 또한 강조되지 않고 간단하게 끝난다. 죽음으로 향하는 햄릿의 여정에서 무고하게 희생된 오필리아의 죽음과 모든 것이 끝난 뒤 죽음을 맞이하는 햄릿의 모습만이 강조된다. 햄릿은 물에 빠져 죽은 오필리아를 위해 물에 빠져 죽은 자의 넋을 위로하는 넋 건지기 굿을 상당히 오랜 시간 진행한다. 그리고 햄릿은 자신이 죽는 순간 비탄에 섞인 목소리가 아닌, 담담하게 “호레이쇼, 나는 이제 죽네. 자네는 살게”라고 말하며 유유히 걸어 나간다. 이때, 햄릿의 넋을 위로하듯 무당의 방울 소리가 유유히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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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사 제공

 

 

전반적으로 햄릿은 자신의 감정을 말하지만, 감정에 푹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관조하는 태도를 보이고, 이와 대비되는 것이 음악과 영상이다. 모듈러 신스, 타악기, 피아노로 구성된 음악은 장이 끝날 때, 그리고 누군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고조되며 ‘쿵’ 하는 사운드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분노하지도, 울지도 않는 햄릿을 대신해 영상 속 인물들은 화를 내며, 눈물을 흘리는 등, 언어로 감정을 표현하는 햄릿과 달리 감각적으로 드러내며 공연의 여백을 채운다.

 

 

[김소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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