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모든 것을 황금으로 만들지만 아무것도 만지지 못하는 두 엄지 손가락이여 - 도서 '21세기의 매체철학'

글 입력 2024.11.04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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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아트인사이트에 '20세기의 매체철학'을 리뷰를 한 적 있다. 그리고 4년 후 지금, 작가는 '21세기의 매체철학'를 출간했다.

 

4년만에 제목의 1세기가 바뀐 것도 놀랍지만, 1세기를 뛰어넘어 매체철학을 논하는 것이 충격적이지 않다는 것이 더 놀랍다. 사실 요즘 세상이 변화하는 속도를 보면 1세기가 아니라 5년 단위로 매체의 변화를 논의해도 된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한 소감을 먼저 밝혀보자면, 작가가 원고를 쓰는 시점보다 내가 책을 읽는 지금 시점이 훨씬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21세기의 매체철학'은 기본적으로 혼종화, 간헐적 사유, AI 예술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주제는 모바일에 근거한 인터넷 매체와 인간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둔다.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그려지는 '매체'의 모습은 거의 신체 일부처럼 기능하는 이동 매체(핸드폰, 워치 등)다.

 

하지만 현재 가장 최신 매체로 취급받는 인공지능은 혼종화된 공간을 매개하는 무언가 이상의 어떤 주체로까지 취급받는 것 같다. 노벨상의 주역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일상 속에서 많은 프로그램과 앱에서 유용한 조언을 하는 판단자로 등장하여 입력하는 프롬프트 이상의 결과를 출력하고 있다.


저자는 매체학의 개념이 혼종화되고 있음을 밝히고 있지만, 이 시점에서 인공지능을 정말 책에서 다루는 '매체'와 같은 위치에 둘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인간은 매체와 언어로 의사소통한 적 없었다. 하지만 충격적인 인공지능의 발전은 표면적인 수준으로나마 언어를 교환하고, 서로의 생각을 조절하고, 함께 판단할 수 있는 수준까지 왔다.


개인적으로는 숏폼, 알고리즘, 코로나 시대의 경험을 담은 원고가 작성되고 출간되는 시점보다 인공지능이 더 빠르게 발달한 것이 주된 이유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이제는 기술에 대한 성찰이 기술 개발 속도를 따라가기 어려울 것 같다. 조용한 곳에서 '사유하는 개인'을 양성하는 학문은 뒤처지고 있지만, 기술과 자본은 서로의 꼬리를 물어가며 일반적인 대중의 인식 범위를 훨씬 넘어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무의미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속도와 상관없이 저자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최신 기술'이 아니다. 그는 이 책에서 계속 매체가 야기한 인간의 사유, 정체성의 혼종화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저자의 환상적인 비유와 함께 확실히 각인되었다. 책의 뒷페이지를 장식하기도 한 아래의 글은, 현실과 구분되지 않는 환상적 공간의 출현과 그로 인해 발생한 '인간성'의 확장과 그로 인한 결손을 정확히 요약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미다스는 디오니소스에게 그가 만지는 모든 것이 황금이 될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했고, 실제로 그런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 후 미다스가 만지는 모든 것은 황금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황금을 얻는 대신 '촉각'을 잃었다. 사랑하는 사람도 만질 수 없다. [...] 모든 것들이 원격현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지금 우리는 혹시 경제적 효율과 편의만을 위해 자기 자신을 미다스로 변신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디지털 매체 공간에서의 삶이 또 다른 감각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개인적으로 책을 읽는 내내 뭐라 말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왜냐하면, 2020년에 처음 만난 '매체철학'은 당시 나의 세계관을 뒤흔들 정도로 매력적이고 최신을 다루는 학문이었기 때문이다. 2024년에 만난 '매체철학'의 저자는 아이러니하게도, 포스트 휴먼을 중심으로 인간이 잃어버린 감각은 무엇인지를 회고있었다.

  

두 책의 경험을 비교하면, 저자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좀 더 절절하게 와 닿는 것 같다. 20세기 매체철학은 아날로그 매체부터 디지털 매체에 이르는 각 학자의 입장을 하나하나 비교하여 서술하지만, 21세기 매체철학은 매체와 공간, 매체와 인간, 매체와 예술이라는 키워드 아래에 섞어 서술했다. 20세기 매체철학에서는 지금까지 쌓여온 철학의 베이스를 정리하기 때문에 저자의 개성이 드러나지 않고 선형적이었다. 하지만 21세기 매체철학은 용어 정의 단계부터 혼란스러울 뿐만 아니라, 새로 제시되는 이론들에 대해서도 가능성을 열어두는 방식으로 갈무리 된다.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저자가 글 전체에서 자신의 감상을 적극 표현한다는 점이었다. 고뇌하고 멈추면서 저자의 긴 생각을 따라가는 것이 마치 오래된 귀한 것들을 모으는 수집가와 같다는 연상을 소개하는 서론부터, 여러 이론을 갈무리하는 각 장의 마지막 부분까지, 때로는 흥미로운 상상력과 저자가 감상했던 작품까지 동원되면서 고루한 것이 되어버린 것들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두 책에서 모두 작가는 매체학자로서 기술의 발전을 긍정도 부정도 아닌 변화로 받아들이지만, 그러한 현실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미묘하게 다르다. '20세기의 매체철학'에서 느껴지는 저자가 최신 학문을 정리해가는 열정적인 학자의 모습이 두드러졌다면, '21세기의 매체철학'의 저자는 여전히 이사 갈 때 책을 버리지 못하는 인문학자의 모습이 두드러진다.

  

가장 빠른 철학을 다룬 저자가 이제는 가장 원초적인 부분을 다룬다는 아이러니가 독자인 나에게 한편으로는 불안감을 주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약간의 위안을 주었다. 더이상 온전한 타인과 몸을 섞지 못하고 부분대상으로만 자위행위를 하게 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는 프로이트의 종말론적 예언이 이루어져, '유사 촉각'이 아니라 '촉각'으로 경험해온 모든 좋은 것이 모조리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망상은 이미 일부 현실화된 것 같다. 작가가 느끼는 묘한 불안은, 깊은 사유를 통해 기쁨을 얻었던 모든 사람에게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당장 이 책만 하더라도, 인간은 매체철학자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개인의 아름다운 비유와 연상을 엮어내 '혼종화된 현실'이라는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작물을 엮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고루한 것이 될지언정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큰 위안을 준다. 그리스 시대의 철학처럼 가치 있고 아름다운 것이 영원히 잊히지 않고 연결되어 새로운 지적 자산으로 소중히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책 '인공지능은 나의 읽기-쓰기를 어떻게 바꿀까'에서 이야기했던 대로, AI와 달리 인간은 의식의 부스러기라고 할 수 있는 유년기의 무의식과, 명확한 한계를 가진 몸을 통해 사고하는 존재다. 육체를 가졌다는 사실이 우월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지만, 고유한 사고만이 기존의 사고를 부정하고 나아갈 수 있게 만든다. 최소한 이 책을 읽은 나만큼은 저자가 붙잡으려고 했던 어떤 느낌과 감각에 대한 인상을 소중히 보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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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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