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 모임] 밴붐온, 독붐온, 그러니 과시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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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좋아하는 것이 뭐냐 물으면 보통 밴드음악과 책이라 답한다. 마이너한 것까지는 아니지만 취향 확실하다는 소리는 종종 듣곤 한다. 하지만 머지않아 내 취향이 아주 대중적인 것이 되는 게 아닌가, 그런 즐거운 상상을 한다.
2024-6-15
돌연 고백하건대 이것은 독서 모임 후기를 표방하는 글. 2024년 6월 15일은 독서 모임 채팅방이 만들어진 날이다.
2024-7-23
7월 23일. 사전모임을 가진 날이다. 나를 포함해 세 사람이 모였다. 다들 출판과 덕질 분야에 한가락 하는 사람들이라(실은 나 빼고 다른 두 분이) 대화는 끊길 틈이 없었다. 각자의 전문 분야가 다르면서도 어느 정도 연결되어 있었다. 덕분에 줄줄이 이어지는 새로운 이야기를 기꺼이 수집하며, 다음 달부터 시작될 진짜 독서 모임의 방향을 정했다.
2024-8-27
우리나라 음악의 메인스트림은 밴드음악과 좀 다르다. 그렇게 된 지 조금 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대중적으로 인기를 끄는 국내 밴드와 그들의 곡이 몇 생겼고, 다시 활동을 시작하겠다는 전 세계적 명성의 해외 밴드도 몇몇 보이기 시작하며 ‘밴드 붐이 온다(게임 커뮤니티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작품의 위로 격으로 만들어진 유행어 ‘00 붐(boom)은 온다’를 밴드에 적용한 것)’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2024년 8월 27일, 오아시스의 재결합이 공식적으로 밝혀지며, 밴드 붐이 ‘왔다’.
아참, 오아시스가 뭐냐면… 짱 멋진 밴드다.
2024-8-31
나흘 후 우리의 첫 번째 독서 모임이 열렸다.
다들 꿈, 일, 장래 희망과 같은 영역에서 크고 작은 고민을 안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다룰 수 있는 책을 찾아보기로 했고, 첫 책은 그렇게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으로 선정되었다. 다만 이 책은 에세이나 산문이라기보다 자서전다운 내용이 많았다. 재밌고 인상적인 이야기가 있는 것과는 별개로 독서 모임에서 나눌 이야깃거리가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독서 모임의 묘미는 꼭 ‘책’ 본연에 집중하지 않더라도 공통으로 머릿속에 가진 텍스트가 있다는 공감대 하나만으로도 잘 굴러간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대충 ‘읽다가 생각났는데’로 시작하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나만 해도 대학 졸업을 앞둔 상태에서 본격적인 취업 준비 단계에 들어선 상태였는데,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싶다는 마음과, 취미라는 성역 안에 남겨두고 싶다는 마음이 충돌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후자로 마음이 기울던 차에 오아시스의 재결합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간직하고 직장인이 된다면 영국에서 열리는 오아시스의 재결합 콘서트에 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이 생각이 들자 갑자기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야겠다는 사명감에 가까운 마음이 생겼다. 셋 중에 오아시스의 팬은 나 혼자였지만 팬의 마음이라 함은 분야에 상관없이 비슷비슷하다. 내 고민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니 그들이 한 비슷한 고민도 들어볼 수 있었다. 그렇게 또 두어 시간이 즐거이 흘러간다. 이야기를 나누고 오니 무언가 해결될 것만 같은 막연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 좋아하는 일로 먹고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그러기나말기나 나는 그날 그 짱 멋진 밴드의 콘서트 티켓팅에 실패한다.
2024-10-5
원래라면 9월 말경에 모임을 가져야 했지만 각자 바쁘게 시간을 보내느라 모임을 미루기로 했다. 대신 10월에는 두 번의 만남을 가졌다. 8월 있었던 첫 독서 모임은 분명 즐거웠지만, 책 자체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 그래서 이번에는 토의할 만한 재료가 많은 책을 추천받았다. 만화책 <토마토, 나이프 그리고 입맞춤>은 그렇게 읽게 되었다.
만화책으로 독서 모임을 해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연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정확한 대응은 불가하겠지만, 만화의 연출은 글로 따지자면 문장의 표현력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생각해 보면 문장의 표현력에 관한 의견을 제대로 나눠본 적도 없는 것 같다. 그냥 좋은 문장이 있으면 ‘이 부분 너무너무 좋았어요 휴’라고 밖에 말하지 못하던 나날들. 하지만 만화책의 연출을 보면서는 어떤 부분이 나에게 어떻게 보여서, 어떤 이유 때문에 좋았다고 더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었다.
이제껏 내가 경험한 문화생활 모임이 독서 모임에 한한 것은, 책은 이미 글로 만들어져 있으니 말로 재생산하기에도 쉬우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영화나 전시, 공연 등 다른 예술은 시청각적인 요소가 더 강한 편이라 그런 걸 향유하고 언어로 표현하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고 그 탓에 이들의 모임에는 선뜻 참여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 만화책을 읽고 모임을 하면서, 시각적이어서 오히려 더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2024-10-10
그리고 2024년 10월 10일,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강 작가가 뭐냐면…
몰라… 짱 멋있어…
2024-10-26
독서 모임의 마지막 도서는 <이 안에 당신의 수명이 들어 있습니다>이다. 내가 추천한 책인데, 개인적으로 재밌게 읽기도 했고 무엇보다 독서 모임을 하기에도 딱 좋은 소재를 가졌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수명을 알게 되고, ‘수명’이라는 유례없는 기준으로 유례 있게 차별하는 세상을 지극히 현실적으로 다루는 소설이다. 그렇기에 각자 스스로를 대입해 보는 소소한 상상부터, 사회적으로 야기되는 문제까지 다양하게 의견을 나눌 수 있었다.
모임 도서는 이것이었지만, 한강 작가의 수상이 우리의 모임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 리는 없다. 수상 당일에도 우리 독서 모임 채팅방에 불이 켜졌고, 모임 도서를 한강 작가의 책으로 하자는 의견도 있었다(다만 책을 당장 구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우려에 다른 책 선정). 본격적인 독서 모임 전후로 하는 일상적인 대화 자리에서도 노벨문학상 이야기와 관련한 여파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패션 독서’, ‘텍스트힙’. 독서 인구는 매년 역대 최저라지만 ‘독서 붐은 온다’. 아니, 여기에 아시아 여성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지며 독서 붐은 ‘왔다’. 독서 모임의 세 명은 마음껏 기뻐했다. 독서 붐이 기껍다.
밴드 붐도 오고 독서 붐도 왔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모두 대호황. 내 기분도 대호황. 하지만 대중의 이목이 쏠리는 곳에선 항상 부정적인 소리도 나온다. 그중 하나가 ‘과시용 독서’. 어떤 이들에게는 지금 이런 상황이 버블경제처럼 보이는지도 모른다.
앞서 말한 짱 멋진 밴드의 티켓팅에도 전 세계인이 몰렸다. 그들이 다 ‘찐’ 팬일까. 누군가의 엄격한 기준에 따르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콘서트를 보고 싶다는 마음은 진짜일 테다. 언젠가는 꺼질 거품이더라도. 지금이 중요한 것 아닌가.
나는 만화를 대부분 웹툰으로 접했지, 출판 만화와는 가깝지 않던 사람이다. 하지만 이번에 만화책 독서 모임을 경험했고, 누구 알까, 내가 다음 독서 모임에서 만화책을 제안할지.
갑작스러운 호황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무엇을 경계하는지 대략 알 것도 같다. 버블 붕괴는 무서운 것이니까… 일상이 되어야 할 독서가 이벤트로만 남는 것은 나도 싫다. 하지만 거품이건 아니건, 호황은 이미 왔다. 최소한 지금 오고 있다. 그러니 그걸 애써 덮지는 말고, 일단 즐기자. 그리고 거품은 꾹꾹 눌러 담아 진짜로 만들어버리자.
그러니 과시하자. 더 과시해라. 붐을 원한다면.
[김지수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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