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를 시험해 보고 싶었다 [여행]

베를린에서의 2박 3일
글 입력 2024.11.03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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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가을이다. 11월에 태어난, 가을할 서(稰)영인 나는 가을을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겨울을 좋아한다. 유독 추위를 잘 타는 체질이라 남들에게 가을인 시기를 겨울로 착각해서일까. 나의 겨울은 유독 길다.


지난해 겨울은 길다 못해 컸다. 내 인생에서 그해 겨울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대부분의 학과 사람이 유학을 희망하는 것처럼, 나도 폴란드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2023년 10월이었다. 강경 한 학기 파였기에, 남들이 혹시 몰라 일 년 받는 비자도 고집스럽게 딱 연수 기간대로만 받아 떠났다. 내가 한 학기 연장하게 될 줄도 모르고.


크라쿠프로 들어가기 전 엄마 아빠와 2주 동안 이탈리아를 만끽했다. 너무 투박하고, 어리고, 여린 나의 모습이지만, 고백해 보자면, 나는 여행 내내 몇 번이고 가슴이 뜨거워졌고, 목이 메어왔다. 엄마 아빠와 헤어지는 순간을 상상하기만 해도 눈물이 나왔다.


나도 노력을 해봤다. 마지막까지 참아본다고 애를 써봤다. 하지만, 포옹의 힘은 강력했다. 게이트 앞에서 엄마 아빠의 온기에 순간 펑-하고 눈물이 터졌다. 누가 보면 강제로, 갑작스럽게 떠나는 것처럼.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의 눈물은 두려움의 눈물이었다. 난생처음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그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타지에서 잘 살아남아야 한다는 두려움과 긴장감으로 뭉쳐진 눈물.


크라쿠프로 향하던 비행기에서 하현상의 하이웨이를 들으며 다짐했다. 단단한 사람이 되어 돌아오겠다고. “어리광은 마음속으로/ 멀리 달리다 보면 어딘가 여긴 그래도 전보다 나을 테니까”라는 가사는 어학연수 시절 내게 정말 큰 힘이 되었다. 이유 없이 눈물이 쉴 새 없이 쏟아졌던 날들과 공허함에 잠깐씩 무서워졌던 순간들, 몸이 아파 서러웠던 날들, 다가올 현실의 두려움에 잡아먹힌 날들이 예상보다 많았다. 유튜브 속 교환학생은 희망 편이었다. 하지만 나는 하이웨이 가사처럼 어리광 부리지 않았고, 나날을 서투르지만 그럼에도, 꿋꿋하게 나아갔다. 그리고 다시 계절이 돌아온 지금, 그때의 모든 순간은 지금 나의 자신감이 되었다.

 

누군가는 1년이 채 되지 않는 9개월이 짧다고 평할 수 있겠지만, 내겐 충분했다. 새로운 자극과 경험을 품기에 부족하지 않았던 9개월이었다. 후회 없이 여행 했고, 후회 없이 공부했고, 후회 없이 놀았다. 분명 1학기 종강 후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는 아쉬워했던 것 같은데, 2학기 종강 후에는 후련하기만 했다. 비교군이 있어서일까, 두 번째 학기는 배로 더 뿌듯했다.


오랫동안 혼자 해외여행 하는 날을 꿈꿔왔다. 나는 2024년 폴란드의 봄 연휴 기간이 버킷리스트 목록을 지우기에 가장 적합한 순간이라고 직감했다. 2학기 동안 해외살이를 하며 스스로가 얼마나 용감해졌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나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 홀로 베를린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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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내내 혼자 보내다보니, 생각에 꼬리를 물어 결국 우울함에 사로잡혀버린 순간들이 있었다. 하필이면, 하루 전날 한국에 있는 친구와 나눴던 전화 통화 속 주제들이 ‘인턴, 취업, 진로’이었기 때문에 타격감이 평소보다 배로 컸다. 또한, 평소 혼자 있는 시간을 소중해하고 좋아하는 편임에도, 낯선 호텔 방의 밤이 잠시 동안 공허했다. 이처럼 온전히 나와 함께한 3일 동안, 매순간을 행복에 갇혀 보내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행복했다.


나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주로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을 눈에 담는 것을 좋아한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을 통해 같은 시간임에도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각기 다른 이야기들이 떠다닌다고 설명한다. 3일 동안, 나는 사람들의 눈빛을 관찰했다. 유명 관광지를 눈에 담으려고 열심히 반짝이던 눈을, 공원에서 강가를 바라보며 사색에 잠겼던 눈을, 서로의 손을 꼭 잡으며 산책하는 노부부의 눈을 보았다.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베를린을 거닐고 있었을까.


2024년 4월 마지막 날, 베를린을 떠나는 공항에서 나는 이전보다 나 자신이 용감해졌다고 생각했다. 후련했다. 한국에 돌아가더라도,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여행을 자주 떠나겠다고 다짐했다.


결국은 또 해냈다. 인생 처음으로 혼자 떠난 베를린 여행은 좋은 기억으로, 멋졌던 날로 기억될 것 같다. 용감 인증을 받은 것 같다. 살아가면서 가끔 힘에 부칠 때마다, 독일 여행을 꺼내 봐야지. 앞으로 “무엇이든 잘 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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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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