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투란도트, 고해상도 프로젝트 - 편향된 미감을 먹고 자란다는 것

글 입력 2024.10.31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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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포츠라는 팝페라 가수가 있다. 우수에 젖은 눈이라는 말을 그 사람을 보고 처음 실감했다. 유명 예능에 출연해서 노래를 부르는데 몸 전체를 울림통으로 썼다. 그때부터 한국에서 '네순 도르마'는 가장 유명한 오페라 곡이 됐다. 투란도트는 몰라도 네순 도르마와 폴 포츠는 알았다. 제 2의 폴 포츠, OO한 폴 포츠가 전국에서 쏟아졌다. 그만큼 네순 도르마를 불렀다. 부정하지 못할 인기곡이었다.

 

나는 폴 포츠의 네순 도르마를 들으면서 자란 세대다. 오페라는커녕 뮤지컬과도 거리가 멀었던 삶이다. 흔히 말하는 고상한 취미는 모르는 게 당연했다. 그래도 책은 좋아해서, 초등학생 때 잠깐 다닌 피아노 학원의 모든 음악 역사책을 읽었다. 위인전 형태의 전집이었는데 푸치니를 거기서 처음 알았다. 투란도트의 내용도 당연히 처음이었다. 미완결 유작이라는 타이틀은 언제나 호기심 많고 아는 척 하기 좋아하는 아이를 이끄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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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탈리즘과 인종차별, 페미니즘이라는 개념을 갖기 어려웠던 시절의 나는 그걸 꽤 재미있게 읽었다. 우스꽝스럽게 묘사된 신하들의 이름이 핑, 팡, 퐁이라든가, 서남아시아의 아무 이름들을 따서 베이징에 넣어 두었다든가, 상으로 헐벗은 100명의 시녀가 주어진다든가 어쨌든 여성은 얻어내고 쟁취하는 대상이라든가 하는 것을 아무 생각 없이 읽으며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사랑에 감명받기보다는 그 복식과 서사에 매료됐던 기억이다. 나의 미감은 혐오를 기반으로 자랐다. 누구나 그랬을 것이다. 지금의 아이들조차도.

 

그리고 어른이 되어 첫 오페라를 보게 되었을 때, 그러니까 난 그것이 이번의 투란도트 공연이었는데, 얼마나 아름답고 끔찍한 광경을 보고 있는지 그제야 실감했다. 혀를 내두를 정도로 화려한 무대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말 그대로 인파人波가 여기저기를 휩쓸며 철썩였다. 때로는 죽음의 소리로, 가끔은 천사의 소리로 현현하며 한 겹씩 비단을 쌓듯 노래했다. 그 모든 소리의 위에서 주연은 마음껏 헤엄쳤다. 폭풍을 일으키고 번개를 내렸다.

 

백 년 전, 이백 년 전의 사람들에게 오페라가 어떤 의미였을지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한평생 동양에 대한 환상을 가지다 뼈까지 바스라졌을 이국의 사람들과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이상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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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내한한 오페라단은 거의 전부가 업계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사람으로 이루어졌다고 했다. 오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는 이름일 정도라고 들었다. 그러나 초심자가 실력의 고하를 판단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전문가라는 건 켜켜이 쌓아 온 시간을 아무렇지 않게 내비쳐야 하는 법이니까. 잘한다, 좋다는 얄팍한 말로는 그 시간을 전부 담아낼 수 없지만 그래서 더 아득하다.

 

그것을 알아주는 사람은 다름아닌 함께한 동료들이다. 오페라를 잘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함께 앉아 있는 객석을 향해 거장이라 손꼽히는 지휘자가 거듭 손을 흔든다. 관객은 지휘자의 손끝을 보며 계속, 계속, 계속 박수를 친다. 박수는 경외에서 격려로, 그리고 웃음으로 바뀐다.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는 흐릿한 등 아래 웃고 있다. 오랜 박수 끝에 노래는 다시 시작된다. 관객은 그 모든 것을 하나의 막처럼 바라본다.

 

마음 한구석에는 지워지지 않을 불편함과 분노가 남아 있지만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다. 황홀한 순간이다. 그리고 이것을 오래 부끄러워할지도 모른다.

 

공연이 끝나고는 아름답지만 불편한 마음으로 지하철을 기다렸다. 오와 열을 지켜 서 있는 사람들은 각자의 감상을 말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어폰을 꺼내려는데 앞의 두 사람이 말하는 것을 우연히 들었다. 중년의 여성들 중 하나가 말했다. "나는 오페라 가수가 되고 싶었어." 살면서 한번도 그게 누군가의 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어서 약간 놀란 채였는데, 그 앞의 친구가 대답했다. "하면 되지." 오페라 가수가 꿈이었다는 여성은 나이가 몇인데, 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좋은 공연은 누군가의 오랜 꿈을 떠올리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여전히 그렇게 꿈을 꾸는 나의 친구들, 오래된 오페라를 현대의 신념에 맞게 풀어내는 뮤지컬들, 현실과 타협해 꿈을 취미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도 생각했다. 시대가 변하고 나도 변해서 무언가를 좋다고 느끼기만 해도 종종 마음에 앙금이 남는다. 주로 죄책감이나 부끄러움으로 빚어진 것들이라 끝맛까지 씁쓸하다. 답습하지 않으면 된다고 하지만 창작자가 아니라면 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니까.

 

향유자로서는 계속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무엇이 좋고 무엇이 좋지 않은가. 그리고 그것은 왜인가.



 

[김지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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