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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본격적인 글을 시작하기 전, 오프라인 영화모임 참여 계기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필자는 공지를 보자마자 어떤 분야를 선택할지 고민했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당연히 전시회를 자주 다녀, 전시 관람을 택했을 거로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예상은 늘 빗겨나가는 법이다. 영화 향유 모임을 과감하게 선택했다. 전시를 향한 애정보다는 2퍼센트 부족할지언정, 나머지 퍼센트를 사람들과 향유하면서 채우고 싶었다. 누구나 그럴 때 있지 않을까. 영화 엔딩크레딧을 보자마자, 여운이 가시기 전에 빨리 감상을 토로해놓고 싶은 심정 말이다.

 

참고로 혼자 영화를 보고 나오면 이런 진귀한 기회는 드물다. 타인과의 향유 시간이 있어야, 영화를 향한 애정이 온전히 채워질 때가 종종 있다. 필자의 주변에는 영화를 사랑하는, 자칭 씨네필이라고 말하는 이가 소수다. 그래서 오프라인 만남을 택했다. 4달 동안 씨네 여정을 떠날 생각에 기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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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관람 영화는 <퍼펙트 데이즈>이다. 잠시 추가 설명을 하자면, 4달간의 모임 중 가장 좋았던 영화 1위로 뽑힌, 아주 값진 작품이다. 첫 만남에 어색한 분위기에 쭈뼛거리며, 서로 영화 감상을 논했던 때가 기억난다.


당시, 한 카페에 5시간 동안  앉아 있었다. 이 사실 하나만 봐도 꽤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눴다는 걸 알 수 있다. 웃기게도 이야기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이 명확히 구분된 대화였다. 마치 밀물과 썰물 같았다. 재밌는 주제가 나왔으면 대화를 불티나게 이어가다가, 조금 기가 빨린다 싶으면 잠시 쉬어가는 이 행위가 묘했다. 전혀 어색하고 불편하지 않았다. 편안한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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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모임은 에무시네마에서 <더 원더스>를 관람했다. 한여름의 햇살, 그리고 에무시네마의 녹음은 꽤 잘 어울렸다. 아쉽게도 그때 카페 실내 에어컨이 가동하지 않아, 완벽했다는 말은 넣어뒀다. 영화는 다소 난해했다. 임팩트 남는 장면이 없어 아쉬웠다. 아마 우리 셋 다 비슷하게 느꼈는지, 카페에서 영화 이야기는 점점 논외 되었다. 마음에 드는 영화를 보지 못해 아쉬웠다. 이것 또한 경험이라고 치부했다.

 

서촌에 가면 떠오르는 장소가 있다. 영화 <소공녀> 주인공 미소가 가던위스키 바가 종종 생각난다. 매번 가겠다며 다짐하곤 했는데, 갈 기회가 없어 미뤄두고만 있었다.

 

마침,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였으니, 촬영 장소에 가보자고 제안했다. 해가 지기 전이라 밝았지만, 위스키 바 내부는 꽤 어두웠다.

 

밖의 분위기와 상반되는 풍경을 지닌 이곳이 매력적이었다. 우리는 자리에 앉자마자, 미소가 앉았던 자리를 찾았다. 꿈을 포기했지만, 담배와 위스키로 지탱하는 미소의 인생을 논하기에 바빴다.

 

위스키 바는 굉장히 아늑하고 포근했다. 그리고 위스키 한 잔으로 고난을 씻겨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분위기를 지녔다. 줄글로만 설명하기에는 어렵다. 기회가 된다면 꼭 방문해 보길 바란다. 여럿이 아닌, 혼자여도 좋다. 고독을 위스키 한 잔에 비유해 입에 머금고 쓰디쓴 맛을 느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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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만남을 장식한 영화 <동경의 황혼>, 고전영화를 볼 기회가 없었던 나를 매료시킨 작품이다. 역시 클래식은 명불허전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영화 속 인물이 사케 마시는 장면을 인상 깊게 본 우리는 무작정 이자카야로 향한다. 아무런 계획 없이 갔던 터라, 기약 없는 웨이팅에 마음이 초조했다. 운 좋게도 우리가 앉을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가게 내부는 일본 현지를 연상케 했다. 일본 고전영화를 보고 온 탓일까, 가게 인테리어와 소품에 눈길이 갔다.

 

따뜻한 사케 한 잔을 처음 머금을 때, 우리의 눈동자는 갈피를 잃었다. 앞 맛은 굉장히 씁쓸했고 뒤로 갈수록 알코올 맛은 사라지는, 아주 독특한 맛이었다.

 

매력적인 맛을 지닌 사케 한 잔을 다 비웠다. 영화 속 인물을 따라, 곧장 사케를 마시는 우리는 꽤 진취적인 사람이었다. 인물의 행위를 묘사해보는 것도 하나의 향유 방식이다.

 

지난 4개월 동안 함께한 두 분께 감사하다. 나와 달리 이들은 영화를 향한 애정이 너무나도 컸다. 매일 영화와 함께하는 이들을 보며 배웠다. 단순히 관람 한 번만으로 그치지 않고, 감독 필모그래피를 줄줄이 읊는 모습을 보고 놀라웠다.

 

무언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증폭될수록,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몸소 느꼈다. 나 또한 영화를 향한 애정이 커졌다. 단순히 작품을 향유하는 것이 아닌, 캐릭터를 알아가고 감독의 필모를 하나씩 펼쳐가는 그 맛을 음미할 차례이다.

 

영화 감상은 참 매력적인 취미다. 시각적으로 사로잡는 장면을 뛰어넘어 인생의 가치를 깨닫는 장치이다. 4달 동안 영화를 보며, 삶의 방향성을 다시 확립해 나가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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