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툼의 면역
그러니까, 본론부터 말하면 나는 누군가와 싸워본 적이 많이 없다. 친구들과 다투거나 남동생과도, 심지어 글을 적으며 생각해 보니 부모님이랑도 심하게 다퉈본 적이 없다. 그런 데에는 대체로 잘 참고 넘어가는 내 성격인 덕도 있고, 다툴만한 상황도 상대가 유하게 넘어가 준 덕도 있다.
그런 어느 날 최근 내 피로도가 극에 달했을 때, 별거 아닌 일로 남자친구에게 짜증을 내게 되었다. 이유는 그저 새벽에 목소리를 듣고 싶다며 꾸벅꾸벅 졸면서까지 전화를 하려는 그의 모습 때문이었는데, 빨리 일을 마무리하고 자고 싶었던 나는 웃으며 귀엽게 넘길 수 있는 그 사랑스러운 모습이 왜그렇게 미웠는지 모른다.
자고 일어나니 싹 풀린 짜증에 자신이 진짜 유치하다 생각이 들며 온갖 부끄러움과 머쓱함과, 골머리가 엉키기 시작했다. 그냥 피곤함에서 나온 작은 투정이 만들어낸 이 어색한 분위기를 푸는 방법을 나는 몰랐다.
미안하다는 말을 바로 건네지 못해 그렇게 서먹한 3일이 지났다. 갈수록 화해하는 상황을 만들기는 더 어려워졌고, 아직 서툴고 너무 미숙한 내 모습이 미워졌다.
사실, 이렇게 사소한 다툼은 누구에게나 일어난다. 문제는 이 작은 다툼들이 쌓이면 서로에게 미세한 상처가 남는다는 거다. 한두 번은 넘길 수 있지만, 비슷한 일이 반복될 때 쌓인 감정은 어느새 큰 벽이 되어버린다.
그러다 보면 우리의 관계는 삐걱거리기 시작하고, 사소한 오해가 쌓여 신뢰를 갉아먹기도 한다.
사과도 화해도 연습이 필요하다
갈등 속에서도 신뢰를 회복하는 법은 결국 서로에 대한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 먼저 나의 감정을 솔직히 인정하고 상대에게 전하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가 생긴다.
"그땐 정말 피곤했어. 괜히 짜증 내서 미안해." 이런 말 한마디가 상처를 치유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말이 서툴다면 작은 행동으로 대신할 수도 있다. 글이 편하다면 상대방에게 진심을 담아 촌스러운 쪽지를 남기거나, 커피 한 잔을 건네는 사소한 배려도 충분히 효과적이다.
너그러운 남자친구는 나의 쭈글거리며 건네는 미안하다는 말에 오히려 자신이 더 미안하다며 다음엔 피곤해서 그렇다고 얘기해달라고 그냥 웃으며 넘겼다. 성숙한 내면을 가진 그 모습을 동경하며 나는 더 부끄러워졌다. 어색하고 서먹했던 그 3일이 눈 녹듯이 녹아들어 갔다.
매번 완벽하게 사과하고 화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론 사과를 시도하는 것조차 어색할 때가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누구나 처음엔 미숙하고 어색하다. 관계를 지키려는 시도 자체가 의미 있다. 서툴더라도 한 발 내디뎌보는 것, 그 작은 용기가 갈등을 해결하는 첫 단추가 될 수 있다.
사과와 화해도 연습이 필요하다. 처음엔 어설프게 느껴지겠지만, 매번 시도할수록 조금씩 익숙해진다.
실수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오히려 실수를 인정하고 다시 마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성숙해진다. 관계는 한 번에 완벽해지는 게 아니라, 매일의 작은 노력과 진심으로 다듬어지는 것이다.
조금 가볍게 다가가야겠다. 더 길어지면, 자꾸 미뤄지면 감정의 골만 더 깊어지고 갈수록 풀기 어려워지니까. 작은 사과라도 시도하는 순간, 이미 우리는 화해를 향해 한 걸음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미숙함을 받아들이고 서툰 한 마디라도 먼저 건네어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