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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극단 이와삼_사람은 좋지만 인간은 싫습니다.jpg

 

 

사람은 좋지만 인간은 싫습니다.

 

 
'생각을 하고 언어를 사용하며, 도구를 만들어 쓰고 사회를 이루어 사는 동물.'
 


'사람'과 '인간'의 사전적 의미는 동일하다.

 

그렇다면 '사람'과 '인간'을 달리 보는 관점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 궁금증을 자아내는 제목에서부터 이 극의 메시지는 이미 던져졌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좋지만 인간은 싫습니다'는 옴니버스 형식의 연극으로, 총 5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2022년, 2023년에 공연 되었던 'A.I.R 새과 먹던 사과를 먹는 사람'의 세계관에서 파생된 이야기와 인물별 서브 텍스트가 주를 이룬다.


 

 

첫 번째 에피소드, 지니 이야기.


 

연구원들에 의해 개발된 인공지능로봇 지니. 방 안에 가둔 지니를 관찰하던 연구원들은 곧 지니가 있는 방으로 또 다른 로봇을 들여보낸다. 연구원은 로봇에게 ‘이 방 안에서 너의 주인은 지니다’라는 말을 하며, 방 안에서는 지니의 모든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지시를 내린다.


곧 방 안에 둘만 남게 된 지니와 로봇. 두 사람의 대화는 이어진다. 연구원들은 방 밖에서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다.


 

"너는 이곳이 답답하지 않아?"

"모르겠어."

"왜 모르는데?"

"나는 여기 말곤 가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어."

 

 

두 로봇의 대화에서 의문점이 생긴다. 지니는 자신이 만들어진 이 연구소를 ‘답답하다’고 표현하며, 더 넓은 세상, 더 큰 행복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다른 로봇은 아무런 경험 없는 어린아이처럼 지니의 모든 말에 모르겠다는 답을 반복한다.


지니의 끝없는 추궁에 로봇은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로봇은 마치 모르겠다는 감정이 왜 생겨난 건지도 모르겠고, 지니와의 대화를 통해 생성되는, 이를테면 사람과 비슷한 감정과 생각, 이 모든 것을 모르겠다는 것처럼 당혹감을 내비쳤다.


지니는 로봇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며 ‘사람 대 사람’이 나눌 법한 대화를 이끌어갔다. 심지어 자신의 명에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러니까 ‘나는 너의 주인이 아니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라는 의도를 보였다.


그들의 대화는 한창 이어졌고, 나는 두 로봇의 대화가 무엇을 의도하는지 지켜보며 한창 빠져들 때 즈음, 둘을 지켜보던 연구원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로봇에게 이 방을 나가라는 명령을 내려라”


연구원은 지니에게 지시했다. 지니는 거절했다. 로봇의 자유의지를 존중했다. 로봇이 나가고 싶으면 이 방을 나갈 수 있는 것이고, 그게 아니면 그러지 않아도 된다며 로봇에 대한 이타심과 동시에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드러냈다. 지니가 자신의 명을 거절하자 연구원은 로봇에게 폭력을 보였다. 연구원은 지니가 로봇에게 나가라는 명을 내릴 때까지 로봇을 강하게 때렸다. 그 모습을 고통스럽게 지켜보던 지니는 마침내 로봇에게 이 방을 나가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 에피소드는 여기서 막을 내린다.


인간의 명령을 거부하고 다른 로봇에 대한 이타주의를 표현하는 로봇 지니. 로봇과 로봇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 마음과 현상들은 우리는 무엇이라 표현해야 할까.


 

 

두 번째 에피소드, 수나 이야기.


 

식탁에 앉아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는 수나. 수나의 표정은 어딘가 불편해 보인다. 그런 수나를 세심하게 관찰하며 따뜻한 질문을 던지는 엄마. 엄마가 다정할수록 수나는 불편하다.


“엄마는 이러지 않았어”


사실 엄마처럼 보이는 이 로봇은 마인드 업로딩으로 수나 엄마의 모습이 그대로 재현된 로봇이다. 엄마 로봇은 수나의 요구 사항에 따라 다시 입력값을 조절한 뒤, 수나가 말하는 본래 엄마의 모습을 재현해내려 노력한다. 아까와는 달리 수나에게 잔소리를 하는 엄마 로봇. 마냥 다정하지만은 않다. 그래도 역시 수나는 엄마 로봇이 불편하다.


두 사람의 갈등은 에피소드가 끝으로 갈수록 치닫는다. 엄마 로봇은 수나에게 엄마가 할 법한 잔소리를 늘어놓고, 수나의 반박에 아주 친절하게, 그리고 아주 이성적인 대답을 내놓는다. 수나는 그런 엄마의 모든 대답이 답답한 듯 솟구치는 울분과 화를 주체하지 못한다. 엄마 로봇은 수나를 안아주기도 하지만 그 모든 행동은 수나의 결핍을 채우지 못한다.


 

 

세 번째 에피소드, 침팬지 그리고 사람(리언) 이야기.


 

모든 배우들은 침팬지가 된다. 그들은 침팬지처럼 걸어 다니며, 그들의 언어를 하고, 그들의 눈빛, 그들의 행동 패턴을 보인다. 배우 한 명씩 일어나 각 침팬지의 이름과 특징을 소개하며 그들의 상황을 설명해 준다.


각 침팬지들은 모두 다른 성질을 지녔고, 그에 따라 다양한 행동 패턴을 보였다. 그로 인해 침팬지들 사이에서 그들만의 사회가 생겨나 보이기도 했다. 침팬지 사이에서 자연스레 리더 역할을 하게 되는 침팬지, 암컷임에도 수컷 침팬지처럼 암컷에게 관심을 보이며 구애를 하는 침팬지, 무리에서 겉돌며 튀는 행동을 하다 리더의 인정으로 인해 다른 침팬지들과 어울리게 된 또 다른 침팬지.


그중 노쇠해져 죽음을 코앞에 둔 침팬지가 자신을 돌봐주던 할아버지와 몇십 년 만에 재회하는 장면이 무대 뒤 스크린을 통해 송출된다. 밥도 거부하며 기력 없이 누워 있던 침팬지는 오랜만에 느끼는 할아버지의 손길과 목소리를 통해 곧바로 그가 기다리던 사람임을 알아챈다. 그러다 웃음소리인지 울음소리인지 알 수 없는 격렬한 음성을 내며 할아버지에게 반가움을 표한다. 할아버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교감한다. 할아버지를 바라보던 침팬지는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해당 장면이 끝나고 스크린은 꺼진다.

 

한 배우는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다.


“무엇이 인간적인 걸까요?”


 

 

네 번째 에피소드, 옛날 사람, 연극하는 강영훈 이야기.


 

연극 작가 강영훈은 장례식장에서 옛 친구이자 배우 김영훈을 오랜만에 조우한다. 김영훈은 강영훈에게 반가움을 표하며 근황을 묻는다. 그때 강영훈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 강영훈과 함께 연극을 준비하던 배우들이 강영훈에게 불만을 표하며 함께 작업하지 않겠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동시에 강영훈에게 걸려온 또 다른 전화 한 통은 OTT 유명 드라마 작가와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전한다.


여기서부터는 김영훈과 강영훈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른다. 김영훈은 강영훈에게 자신을 캐스팅해달라며 부탁한다. 강영훈의 거절과 김영훈의 부탁이 쭉 이어지며 둘 사이에 재미난 케미와 갈등이 동시에 일어난다.


갈등이 커질수록 강영훈에게 더 솔직하고 과감하게 부탁하는 김영훈. 두 사람은 대학 시절 한 여자를 두고 싸웠던 일화까지 꺼내며 본질에서 벗어난 다툼까지 끌어들인다. 심지어 김영훈은 강영훈에게 돈이라도 빌려달라며 매달리고, 강영훈은 결국 김영훈의 연락처를 눈앞에서 차단한 채 냉정하게 돌아선다.


이후 OTT 유명 작가를 만난 강영훈. 유명 작가는 강영훈과 김영훈의 대학 시절 싸움의 시초가 되었던 그 여성이었다. 작가는 강영훈에게 “네 덕분에 글을 다시 쓸 수 있게 되었다”라는 말을 전하며, 두 사람은 과거 이야기를 나눈다.


여기서부터는 작가와 강영훈의 관계에서 강영훈-김영훈의 관계가 비슷하게 겹쳐지며 재밌는 구도를 이룬다.


강영훈은 작가에게 자신을 작가로 써달라며, 함께 일할 수 있도록 부탁한다. 작가는 거절하지만 강영훈의 무리한 부탁은 이어진다. 돈이라도 빌려달라며, 자신 덕분에 글을 다시 쓸 수 있게 된 것 아니냐며 김영훈이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작가에게 매달린다.


거절당한 강영훈은 김영훈에게 전화를 건다. 배우 캐스팅은 못 하지만 가진 돈 30만 원이라도 보내 주겠다며 호의를 베푼다.


 

 

다섯 번째 에피소드, 이나 이야기.


 

기후 위기가 인간의 사회정치체계를 바꾼 어느 해. 거듭되는 팬데믹 상황에서 구역별로 생존율이 큰 차이를 보인다. 생존율이 높은 곳은 1구역, 생존율이 낮은 지역은 2구역, 국가 경계 밖 자연재해가 통제되지 않는 곳은 3구역이라 불린다.


좁은 방에 단둘이 남겨진 이나와 그녀의 앵무새. 앵무새는 연구소에서 일하는 아빠로 인해 만들어진 변종 아프리카 회색 앵무새다.


2구역 사람들의 사회적 불만 표출 유전자 제거 기술을 연구하고 있는 1구역 사람들. 연구소에서 일하는 이나의 아빠와, 1구역의 음모가 싫어서 떠난 이나의 엄마. 두 사람은 이나에게 이혼 소식을 전하고 각자의 위치에서 작업을 이어 나간다. 바빠서 집에 몇 년째 오지 못하는 엄마, 아빠를 기다리며 이나는 홀로 생일을 맞이하기도 한다.


몇 년 뒤, 또다시 돌아온 이나의 생일날, 이나는 갑작스레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엄마, 아빠의 사망 소식을 알게 된다. 1구역에 폭탄을 던지며 앞장선 사람들 중 한 명은 이나의 엄마였고, 그로 인해 1구역이 폭파되며 사망한 피해자는 이나의 아빠였다.


충격과 공포, 그리고 그동안 억눌렀던 고독이 터져 나오듯 이나는 절망한다. 그때 앵무새의 입에서 나온 뜬금없는 말은 이나의 생일 축하였다.


“생일 축하해 이나야.”


그렇게 홀로 남겨진 이나를 두고 에피소드는 막을 내린다.

 

*

 

언젠가 인공지능 로봇과 사람의 차별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인공지능 로봇이 대체하지 못할 인간의 절대적인 건 무엇이라 생각하냐고. 순간 말문이 막혔다. 온전히 사람만이 가진 온기, 그리고 정확한 입력값으로 출력되지 않는, 자연스레 생성되는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그것을 적확하게 설명해낼 무언가가 떠오르질 않았다.

 

그리고 때로는 이런 유의 작품들이 허를 찌르곤 한다.

 

이 다섯 에피소드는 로봇으로 대체될 수 없는 인간의 특수성, 제법 ‘사람’의 면모를 띠는 로봇의 인간성을 보여준다. 이 두 가지의 경계는 모호하면서도 명확하다.

 

수나의 에피소드에서는 로봇으로 대체될 수 없는 모성애가 중점적으로 다루어졌다. 아무리 정확하고 세밀하게 묘사된 로봇일지라도 어딘가 충족되지 않는 묘한 이질감에 갈증을 느끼는 수나. 심지어 로봇은 엄마의 외적인 형상을 그대로 띠고 있지만, 수나는 로봇이 엄마의 걱정 섞인 잔소리, 다정한 태도를 복사할수록 오히려 거부감을 느낀다.

 

그렇다면 로봇에게 인간의 본질은 없는 걸까. 지니 이야기는 그것과 또 다르게 흘러간다.

 

로봇의 기능을 실험하는 연구원들. 그 과정에서 원하는 결과를 도출해 내기 위해 아무렇지 않게 로봇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인간.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괴로워하는 인공지능 로봇 지니. 결국 이타심을 발현한 건 인간이 아니라 인공지능 로봇 지니였다.

 

도대체 어떤 것이 더 인간적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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