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한 세기 전으로 보내는 질문 [영화]
-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적으로 만드는 시도’
표현주의라는 예술사조를 비유하자면 위의 한 줄로 요약된다. 표현주의는 단일 소실점, 원근법 등의 자연규칙을 충실히 따라 존재하는 현실 그대로를 재현하기를 추구하던 기존의 예술에 반기를 들며 세상에 등장했다. 그들은 바깥세상을 향한 시선을 인간 내면, 특히 화가 자신의 내면세계로 고쳐 향할 것을 추구했다. 바깥에 존재하는 형상, 혹은 그것이 찰나의 순간 눈에 인식되는 모양새에 따라가는 그림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감정과 심리상태를 표현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것은 외부 세계의 존재를 의도적으로 왜곡한 모양새를 통하여 캔버스 위에 구현되었다.
한편, 이러한 예술 사조는 다만 회화에 그치지 않고 여러 분야로 뻗어나갔다. 특히 내면세계를 풍부하고 아름답게 그려내었다 평가받는 독일 표현주의 영화가 대표적으로 거론되곤 한다. 눈부신 산업 발전과 경제 성장, 그러나 한편으로는 1차 세계대전의 상처와 그로 인한 가치관의 붕괴, 사회적 · 정치적 혼란이 각자의 궤도를 이루고 회전하며 산산이 충돌하던 무렵에 독일 표현주의 영화는 떠올랐다. 부(富)와 빈(貧), 기대와 슬픔, 미련과 사랑과 분노가 공존하며 몸집을 키우고 폭발적인 감정을 이끌어내던 시기, 끓어오르던 감정을 어찌하지 못한 독일인들은 영화 속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끔찍한 인간적 고통의 산물로서 독일 표현주의 영화가 세상에 태어났다. 천지를 찢을 듯 울어대는 목소리는 예술이 되었고, 끔찍한 아름다움으로 구현되었다. 앞으로 소개할 이 영화도 다르지 않다. 이 영화는 인간 보편이 지닌 고통과 슬픔과 좌절의 노랫소리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1920)
감독 로베르트 비네보다 제작자 에리히 포머와 세트 디자이너 헤르만 바름을 주목시킨 이 영화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1년 뒤에 제작되어 이듬해에 개봉되었다. 당시는 매년 600편 이상의 영화가 제작되던 때, 보통의 영화가 3-4일 걸리고 나면 사라지던 때에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은 무려 4주나 내리 걸리며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이 영화는 괜찮은 영화다. 무성영화인 탓에 대사가 없는 대신, 으스스한 자막 컷을 중간중간 삽입하여 이해를 도왔고, 음악도 분위기를 한 층 살리며, 내용은 지금의 시각으로 보아도 적당히 재미있다. 인물들의 연기는 다소 과장스럽지만 그러한 액션이 영화의 기이함을 돋보이게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영화를 두고두고 떠올리게 만드는 것은 세트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2차원의 어그러진 세트는 영화의 비상식성을 단번에 지적한다. 기울어진 건물 외벽, 사다리꼴 모양의 창과 문, 사방으로 삐죽 뻗은 선의 부조화, 노골적으로 평면적인 느낌을 주는 배경. 이 모든 것은 세트 디자이너 헤르만 바름에게서 나왔다.
응용미술을 전공하고 무대 디자이너로 활약한 그는 이 영화의 세트 제작자로 참여했다. 당시 새로이 등장한 예술사조에 해박했던 그는 영화를 보고 받은 인상을 기반으로 표현주의를 시각화한 세트를 건설하였으며, 이로 하여금 이 영화만의 독특하고 기이하며 비상식적인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구현하였다는 찬사를 받는다. 사실상 이 영화에 대해 감독의 역량보다 제작자, 특히 세트 디자이너 바름의 역량을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영화 속의 배경은 죄다 이런 모습이다. 현실에는 없는 건물과 길의 모양, 기울어지고 어그러진 사물들, 이러한 것은 아무리 보아도 정상적이라 말할 수 없다.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이런 건물을 짓지 않을 것이고, 멀쩡한 이성을 지닌 사람이라면 현실에는 불가능한 것이라 일침을 놓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바름이 의도한 것이다. 제정신이 아닌, 불안과 광기로 가득 찬 인물의 세계를 그는 구현하려 했다.
영화는 외부 이야기와 내부 이야기로 구성된다. 외부 이야기에서 프랜시스라는 인물이 한 노인에게 자신과 약혼녀 제인이 고향에서 만난 미치광이 박사 이야기를 들려주며 영화는 내부 이야기로 연결된다. 고향에 박람회가 열리고 여러 볼거리들이 차려지던,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 분위기로 관객은 이끌려간다. 여러 사람이 등장해 온갖 쇼를 벌이던 가운데, 칼리가리 박사라는 이방인이 등장해 23년간 잠들어있던 23살의 몽유병자 세자레를 소개한다며 사람들을 현혹한다. 흥미로운 이야기에 수많은 사람들은 박사의 천막 아래로 향해들고, 마침내 쇼가 개막한다. 박사는 무대 위에 올라 화려한 제스쳐와 흥미진진한 대사로 관객들의 기대감을 고조시킨다. 그리고 마침내 캐비닛이 열린다.
그곳에 서 있던 것은 바로 그 몽유병자 세자레였다. 인형처럼 얌전히 눈을 감고 있던 그는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마침내 부릅뜬다. 그리고 비장하게 한 발씩 디뎌 앞으로 걸어 나온다. 자신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듯, 박사는 이것 보라며 자신만만한 태도로 세자레의 능력에 관해 긴말을 늘어놓는다. 놀랍게도 그가 미래를 예견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곤 관객을 향해 궁금한 것을 물어보라며 부추긴다.
가운데 프랜시스의 친구 알란이 나서 묻는다. “Wie lange werde ich leben? (내가 얼마나 오래 살까요?)” 그리고 세자레는 무덤덤한 말투로 답한다. “Bis zum Morgengrauen.. (내일 새벽까지..)” 그리고 알란과 프랜시스는 두려움에 자리를 뜬다.
그리고 미치광이 박사의 진짜 역할이 드러난다. 세자레의 예언이 사실이 되도록, 그는 알란을 죽인다. 다음 날 아침, 세자레의 예언이 사실로 드러나며 마을 전체가 뒤숭숭해진다. 이날로 시작된 박사의 기행은 다음 순서로 프랜시스의 약혼녀 제인을 향하며 세상을 혼란으로 휘어잡는다. 그러나 그의 계략은, 프랜시스와 마을 사람들의 합세로 성공하지 못하고 거두어진다. 광기로 가득 찬 박사는 그렇게 힘을 잃었다.
다음 순간, 다시 푸른 빛의 외부 이야기로 되돌아온다. 프랜시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 정신병원으로 향한다. 그러나 무슨 영문인지 그곳에는 세자레와 제인이 있었다. 세자레를 향해 의문스러운 시선을 보낸 프랜시스는 제인에게 다가가 청혼하지만, 그녀는 여왕이라면 마음 가는 대로 선택할 수 없다는 알 수 없는 대답을 내어놓는다. 그리고, 계단을 타고 칼리가리 박사가 내려온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다. 그 장면을 본 프랜시스는 박사에게 달려들지만, 어째서인지 주변 사람들은 프랜시스를 제지하며 그를 포박한다. 사람들에 의해 박사의 집무실로 옮겨지고, 그를 눕힌 채로 병원장 칼리가리는 진찰을 시작한다. 그리곤 프랜시스가 미스테리한 칼리가리 박사라는 인물로 자신을 혼돈하고 있다며, 이제야 그를 어떻게 진찰해야 하는지 알겠다며 믿음직한 말을 늘어놓는다. 그리고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칼리가리를 끝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 뒤 사람 보기
영화를 학교에서 배웠다. 사실 다음 진도를 따라가기에 바빠 금세 잊어버린 참이었다. 헌데 때때로 떠올라 마음이 동했다. 솔직히는 현대의 영화만큼 재미있는 것도, 아주 신박한 내용도 아니었다. 영화의 내용도 혼란스러워 아주 마음에 든 영화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어떠한 의미를 주길래 자꾸만 떠오를까? 이따금 고민했고 나름의 결론을 지었다. 영화 자체는 내게 큰 의미를 주지 못한다. 다만, 이렇게 혼란스럽고 무서운 영화를 만들지 않을 수 없었던 그 시대 독일인들의 상처가 거듭 나를 아프게 한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남았던 것은 내용 자체보다도 광기, 혼란, 불안과 같은 감정이었다. 이 불편한 감정은 영화를 만든 사람들, 그리고 당시 독일인들의 내면세계를 설명한다. 그들은 세계대전을 겪으며 발전된 기술문명과 합리적 · 이성적 인간관이 사람을 죽이는 것을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쓰임을 목격했다. 더 열심히 살고, 더 많이 발전하면 좋은 세계가 올 것이라는 기존의 가치관은 참혹하게 파괴되었다.
그것이 그들에게 이러한 감정들을 심어주었다. 감정이 부글대며 차올라 터져 나온 것이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이다. 이것은 굉장히 비현실적인 환상으로 보이나, 동시에 당대 독일인들의 내면세계를 충실히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고 나서 떠올리는 것은 영화 내용이 아니라, 영화를 만든 시점의 독일인들이다. 자기 내면의 끓어오르는 감정을 어찌하지 못해 겨우 영화로 토해낸 그들, 바깥세상의 상처가 일깨운 광기와 불안과 트라우마에 고통스러워하던 그들은, 이 영화를 만들고 나서 조금은 평안을 되찾았을까. 이 영화가 그들에게는 위로가 되어주었을까. 그렇다면 그들은 이 영화 이후로 어떤 삶으로 나아갔을까. 미련 없이, 까지는 몰라도 툭툭 털고 가득 힘을 머금은 채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었을까. 그들이 여기서 보여준 연약함이 그 무엇보다 강렬하게 나를 괴롭힌다.
고백하건대 나도 그들과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외부에서, 또 내면에서 들끓는 인간적인 고통에 괴로워하는 것은 우리가 비슷해지는 지점일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만 아주 별난 사람이 아닌 것 같다. 괜한 것에 분노하고 유난을 부리는 별난 존재가 아닐 것이다. 지금 이 시대에도, 과거의 먼 독일에도 이러한 고통을 겪는 사람이 있었음을 알고 있으니. 가끔은 영화보다 영화 너머의 사람들이 더욱 큰 의미가 된다.
[서지원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