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유럽 여행을 갔다. 출발 이틀 전 회사로부터 긴 휴가가 주어졌고, 사회생활을 하며 처음으로 길게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겨 그냥 멀리 가고 싶었다. 사실 일상에 너무나도 지쳐있었다. 그렇기에 감당할 수 있는 선 안에서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을 찾아보았다. 가장 저렴했지만 극악의 환승 스케줄을 가진 항공권, 호텔 예약 앱에서 ‘낮은 가격순’으로 정렬했을 때 가장 상단에 나오는 호텔, 이마저도 무이자 할부를 적절히 섞어가며 이틀 만에 갈 준비를 마쳤다.
평소 여행을 좋아하여 혼자서도 해외에 자주 가는 편이지만, 오랜 기간 혼자 타지를 돌아다닐 생각에 조금의 걱정도 있었다. 무엇보다 세계 어디를 가든 한국이 정말 살기 좋은 나라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조금만 걸어 다녀도 수십 개는 있는 편의점 하나 찾기 힘들고, 그 하나 있는 편의점을 찾기 위해 지도 앱을 키면 느린 인터넷 속도에 다시 한번 조국을 그리워한다. 밤 열시만 되면 수많은 식당과 가게들이 문을 닫아 배가 고파도 굶어야 한다.
반면, 해외에서 가장 편하다고 느껴질 때가 하나 있다. 바로 대중교통, 특히 해외에서 지하철을 이용할 때 항상 마음이 편안해진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지하철이 정말 잘 되어있다고 말한다. 물론 교통망을 비롯하여 시설과 인프라 면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 맞다.
하지만 일부 이용객들의 행동들이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승객이 내리기도 전에 탑승하는 사람들은 물론, 이어폰을 착용하고 휴대전화를 보며 걷다가 누군가의 이동 경로를 방해하는 사람들, 에스컬레이터 도착지에 서서 길을 막아 뒤이어오는 사람들을 위험하게 하는 사람들 등 온 사방이 전부 불편한 사람들이다.
서울교통공사와 헤이지니가 함께한 지하철 이용 에티켓 영상.
지하철을 이용할 때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유형들이 자세히 정리되어있다.
옆 나라 일본과 대만만 가도 그렇지 않은 모습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일본인, 친절과 배려로 무장한 대만인 특성상 공공장소에서의 질서가 굉장히 잘 지켜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번에 다녀온 유럽의 3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승객이 모두 내린 뒤에 탑승하는 모습은 물론, 다음 역에서의 승객이 원활히 타고내릴 수 있도록 승객들은 가급적 문 쪽보다는 안쪽으로 들어가 있고, 노인 혹은 장애인 분들에게 서로 자리를 양보해 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에겐 대학교에서, 또는 여행을 가서 친해진 외국인 친구들이 몇 명 있다. 이들과 만나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들은 의외로 한국에 대해 많은 불편함을 호소한다. 내가 생각하는 한국과 한국인들은 특유의 ‘정’ 문화로 외국인들도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들이 말하는 한국은 복잡하고 정신없으며, 급한 성격의 사람들은 무엇이든 서로가 먼저 하려는 모습이라고 했다. 심지어 사이비 종교의 포교 행위도 경험했다고 하는데, 내가 다 미안할 정도로 부끄러웠다. 이러한 이유로 외국 친구들은 한국보다는 옆 나라 일본과 중국을 더욱 선호한다고 한다. 심적으로도 불편한데 물가까지 비싼 한국보다 친절한 일본 혹은 저렴한 중국을 여행지로 더욱 찾는다는 것이다.
한국에 대한 외국인들의 인터뷰 영상.
한국이 가진 자랑스러운 점들도 분명하지만, 고쳐나가야 할 점도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오른 나라다. 경제적 지표로만 보아도, 세계 최상위권 순위에 자리매김하고 있다. 오히려 이번에 여행한 유럽의 세 나라들이 이러한 지표로 따졌을 때, 우리나라보다 낮은 순위에 있다. 하지만 지하철을 타며, 우리가 지구촌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는 선진 국가가 되려면 아직 갈 길이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 휴가를 마치고, 다시 한국에서 매일 아침 지하철을 이용하며 강남으로 출근하는 삶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양보와 배려, 질서를 잊은 일부의 불편한 이용객들이 눈에 띈다. 지하철은 시민의 발이자, 시민의 얼굴이다. 가장 우리의 삶과 밀접해 있고, 짧은 시간 동안 좁은 공간에서 목적지가 다른 수많은 사람과 함께하는 곳이다. 지하철에서라도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를 신경 쓴다면, 조금이나마 아름다운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