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2일~19일 오페라 투란도트가 올림픽체조경기장 KSPO돔에서 열렸다. 공연 예술에도 미약하게나마 관심이 있던터라 한번쯤 들어본 투란도트라는 타이틀에 방문하게 되었다. 게다가 세계적인 오페라 축제 ‘아레나 디 베로나 페스티벌’이 창단 이래 100년 만에 첫 해외 공연을 하며 그 시작점이 한국이라는 점은 이번 공연을 더욱 놓칠 수 없게 만들었다.
투란도트는 자코모 푸치니(Giacomo Puccini)의 유작이자 미완성작으로, 이번 공연에선 세계적인 연출가 프랑코 제피렐리(Franco Zeffirelli)와 역시 명지휘자 다니엘 오렌(Daniel Oren)의 합작으로 이뤄졌다. 더불어 투란도트 공주 역에 올가 마슬로바(Olga Maslova), 칼라프 왕자 역에 마틴 뭴레(Martin Muehle), 류 역에 마리안젤라 시실리아(Mariangela Sicilia), 그리고 티무르 역에 페루초 푸를라네토(Ferruccio Furlanetto) 등 세계 유수의 오페라 스타들이 출연하였다.
대규모 군중의 등장과 함께 공연이 시작되자, 공연장은 금세 베이징의 한 거리로 탈바꿈되었다. 많은 가수들이 무대위에서 만들어내는 각각의 움직임들은 생생한 현장감을 불러일으켰다. 주요 등장인물들을 비롯해 가수들의 노래는 타국의 언어임에도 그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듯했다. 투란도트의 수수께끼에 도전하지 않도록 설득하는 류의 노래부터 수수께끼를 맞춘 칼라프가 부르는, 우리에게 익숙한 “아무도 잠들지 말라Nessun dorma”까지 모든 아리아가 감동을 주었다.
각 서사에 따라 곡을 완벽하게 해석하며 지휘하는 다니엘 오렌과 오케스트라 연주는 압도적인 규모의 무대 장치 및 연출과 조화를 이루어 투란도트를 성공적으로 보여주었다. 특히, 투란도트에게 붙잡혀 갖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주인을 지키고자 투항한 류의 모습은 시실리아의 뛰어난 노래와 함께 보는 이로 하여금 숨죽이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란도트 이야기 자체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투란도트라는 이름 자체에도 알 수 있듯이 중국 베이징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이야기 곳곳에서 중국 외의 이국적 요소들이 혼재되어 나타나고 있으며, 배경 음악으로 중국 강소지방의 민요 ‘모리화’를 차용한 점을 제외하면 동양이라는 큼직한 환상의 대상만 있을 뿐이다. 게다가 이러한 오리엔탈리즘 속에서 식민주의가 조금씩 엿보이는 듯하기도 했다.
물론 오리엔탈리즘이 항상 정복적 욕구를 투사하기 위한 대상화라고 말할 순 없겠지만, 칼라프가 투란도트의 사랑을 쟁취하는 과정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드러난다. 그의 입으로부터 가장 많이 말해진 단어 중 하나는 ‘승리’다. 칼라프가 투란도트의 사랑을 얻는 양상은 로맨틱한 구애보다 죽음을 무릅쓰는 전투에 가깝다. 그도 그럴 것이 투란도트가 제시하는 수수께끼를 맞히지 못하면 말 그대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투란도트에게 수수께끼는 외부 세력으로부터 자신을 막는 일종의 방패로서 작동한다. 그녀가 수수께끼라는 장치를 만들게 된 이유인 선조의 설화를 들려주는 부분으로 말미암아 그 외부 세력은 남성중심의 가부장제와 세력을 확장해가는 서구 문명임이 나타난다. 하지만 끝내 투란도트의 방패는 부숴지고 마는데,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폭력의 정당성은 굉장히 휴머니즘적인 덕목으로부터 기인한다. 그것은 바로 사랑과 용기이며, 이로 인해 투란도트의 저항의식은 앞선 덕목들로 전치되면서 함묵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얼음과도 같은 공주 투란도트의 차가운 통치는 칼라프라는 외부의 힘이 개입되면서 막을 내리고 평화로운 시대가 열린다. 이와 같은 서사는 정치경제적으로 낙후된, 여성화된 동양을 정복하고자 하는 서구의 심리가 잠재되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류의 숭고한 죽음 이후, 아버지와 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욕심을 거두지 못했던 칼라프가 비탄하며 막을 내리는 비극이라면 어땠을까. 공교롭게도 이 부분은 푸치니가 고뇌어린 작업 중 임종을 맞이하여 작곡을 완성하지 못한 지점이기도 하다. 이처럼 생각해볼 점이 많은 이야기이지만, 그럼에도 오페라 투란도트의 아리아와 무대는 투란도트가 왜 그토록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전율을 선사하였는지 알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