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에 극장에서 본 <블루 자이언트> 극장판이 재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약간의 고민도 없이 바로 메가박스 앱을 열어 돌비 관으로 예매를 마쳤다.
<블루 자이언트>를 본 후, 유튜브로 감상했던 잔잔한 재즈는 과거의 것이 되고 온몸으로 연주하는 재즈의 세계를 알게 되었다. 재즈를 생각하면 따스한 갈색이 떠오르곤 했지만, <블루 자이언트>를 보고 난 후 내게 재즈는 파란색이었다. 뜨거운 재즈. 정열적이다 못해 푸르게 타오르는 음악. JASS의 정열과 음악을 향한 믿음은 꿈을 꾸는 데 지친 관객 한 명의 심장을 다시금 뛰게 했다.

색소폰을 3년밖에 불지 않았는데도 피나는 노력과 재능으로 훌륭한 소리를 내는 '다이'나 대학생답지 않은 노련한 스킬을 선보이는 피아니스트 '유키노리'의 삶은 언뜻 대중 전반의 삶과 무관해 보인다. 어느날 갑자기 재즈에 매력을 느끼고 우연히 천재들과 함께 무대에 서게 된 '슌지'의 삶 또한 마찬가지다.
사실 <블루 자이언트>를 보고 상대적 박탈감보다는 동경을 품게 된 사람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애시당초 이것은 재능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열정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잘하고 싶다는 욕심을 넘어, 자신의 감정을 타인과 나눌 때 열정은 가슴 속에만 머무르기를 거부하고 타인에게 옮겨간다. 나의 열정이 사람들의 가슴 속에 깃들 때 우리는 그것을 감동이라 부른다. 팀 JASS, 정확히는 유키노리의 자작곡 N.E.W. 공연 시퀀스가 깊은 감명을 주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재즈 선율과 리듬 위에서 타오르는 푸른 불꽃은 영화 속 관객 뿐만 아니라 스크린 앞에 앉은 우리까지 푸르게 물들였다.
<블루 자이언트>에서는 세 사람이 맨땅에 헤딩하듯 밴드를 결성한 세 사람이 진심으로 음악을 하고 그 진심이 사람들에게 통하는 과정에 집중한다. 재즈에 대한 열정을 잊고 있었던 재즈바 사장, 재즈를 모르지만 JASS의 팬이 된 직장인, 대중의 입맛에 맞추느라 매너리즘에 빠진 유명 재즈 피아니스트 모두가 이들의 음악으로 깊은 감명을 받는다. 나아가 JASS의 쏘 블루에서의 연주 시퀀스 속 서로 다른 인생이 재즈 공연장에서 모여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씬은 그리움을 자아낸다. 푸른 불꽃 같은 타인의 열정 속에서 식어버린 과거 자신의 열정을 발견하는 그들의 모습이 우리와 닮아있기 때문이다. 다이가, 유키노리가, 슌지가 연주하는 감정의 음악, 재즈는 뭇 사람들의 과거까지 소환하는 것이다. 그들의 음악과 하나되면서 잊었던 꿈을 다시 한번 꾸고 싶다는 감상에 빠졌다.

삶에 대한 열정과 의지를 잃은 사람에게 <블루 자이언트>는 작은 불씨를 건네준다. 이 불꽃은 우리를 계몽하거나 더 나은 삶을 선사해주는 프로메테우스의 횃불이 아니다. 그저 좋아하는 일에 대한 열정을 온몸으로 보여줄 뿐이다. 상영관을 나온 후의 삶은 오로지 자신의 것이며 그 불씨를 어떻게 활용할지도 각자의 몫이다.
다이가 유키노리의 음악에 대한 고민을 들었을 때 슌지에게 우리는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며 돌아가자는 말을 했던 장면도 이와 같은 맥락을 공유한다. 이미 유키노리 안에는 다이와 슌지가 대신해줄 수 없는 강력한 동기가 있었고 자신의 음악의 미래에 대한 것도 유키노리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자기 반성을 하는 유키노리가 눈물을 보이는 모습은 음악에 대한 그의 진심을 증명하고 있다. 그는 자신 안의 불씨를 키워 자신의 '내장을 내보일 정도'의 음악을 선보인다. 출중한 재능을 손에 휘감고 여유를 부리는 천재 재즈 피아니스트가 재즈를 진심으로 즐기는 열정으로 한 단계 성장하는 모습에서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우리가 보는 아름다운 세계 너머에는 지독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지만, 기껏해야 한 시간짜리 꿈을 위해 현실을 살아내는 그의 헌신이 아름다웠다.

재즈는 내 삶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사실 문화예술이라는 것은 그렇다. 문화생활을 향유하는 것은 나와는 상관 없는 세계에 잠시 들어가 꿈결같은 이야기를 즐기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재즈를 알게 되고 이제는 비싼 값을 지불하고 재즈바를 간다. 블루 자이언트가 재개봉한 후 반드시 돌비가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비싼 티켓값을 치렀다. 재즈도, 영화도, 위로의 말도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루 자이언트>에게는 경직된 사고를 풀어주고 피로해진 마음을 달래준다. 가사 없는 음악이 필요해 틀어두는 부드러운 재즈가 아니라 땀을 흠뻑 쏟아내는 재즈가 필요한 줄은 나 자신도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몰랐다.
어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니라 이토록 찬란하게 빛나는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