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한 투표소
‘다양한 면모를 지닌 개인이 모여 양립된 세상을 이룬다.’ 요즘 세태를 조망하며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다.
지난 수요일, 2024 하반기 재보궐선거가 치러졌다. 필자는 서울에 거주하기에 새로운 서울시 교육감에 대한 선거권을 행사했다. 이전까지 교육감 선거는 지방선거와 같이 진행되었기에 공약을 꼼꼼히 챙겨보지는 못했다. -자랑은 아니지만, 지선 때 도장 찍어야할 수많은 투표용지를 들이밀며 변명하고자 한다-
다행히(?) 이번 교육감 선거는 보궐선거로 치러졌기에 교육감에만 투표권을 행사하면 되었다. 제대로 투표에 임하고자 후보자들의 성향과 공약을 어느 정도는 훑어본 뒤 투표소로 향했다. 일정을 시작하기 전에 찾은 투표소. 이른 아침까지는 아니었고, 하루를 시작하기에 적절한 시간대였지만 그곳은 한산했다. 유권자보다 관리인과 참관인이 훨씬 많았고 그나마 투표하러온 사람도 어르신 두 분이 끝이었다. 청년 유권자는 나뿐이었다.
썩 유쾌한 풍경은 아니었다. 23.5%의 투표율. 4명 중 3명이 하지 않은 투표는 어떤 형식으로든 논의할 부분이 많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조한 관심과는 별개로 몇몇 공약은 주목받지 못한 게 이상할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왜 어른이 원하는 학교가 되어야 하는가
‘역사 팩트체크 교실 운영’, ‘극단적 페미니즘, 동성애 교육 금지’, ‘인성교육 차원에서 종교교육 허용’. 한 후보의 공약을 나열한 것이 아니다. 가장 득표율이 높았던 두 후보의 공약 중 일부를 발췌한 내용이다.
이러한 내용들은 교육감 투표는 정당과 관계가 없다는 문구가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정치이념이 깊게 벤 공약들이다. 이 부분을 제외한 다른 공약들은 어느 정도 상식적이라고 생각했다. 후보 개인의 신념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존재했지만 저마다 나름의 근거를 갖춘 내용들로 구성되었다.
결국 첫 문단에서 소개한 공약들은 교육의 본질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보다 유권자의 표심을 잡는 것과 정당의 정치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공약집에 담겼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위 문구가 개인 신분으로 작성한 칼럼이나 오피니언에 쓰여 졌다면 전혀 문제 될 것 없다. 개인의 생각을 마음껏 표현하라고 세워지고 투쟁한 나라 아닌가.
교육감, 국가의 교육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의 수장. 유권자에 의해 후보 중 한 명이 교육감으로 임명될 것이다. 그렇게 선출된, 국민의 뜻을 대리하는 누군가는 자신의 생각을 교육이라는 통로를 거쳐 학생들에게 주입하리라 천명했다.
궤변을 펼치는 것도 아닐 뿐더러 후보들을 비난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충분하게 예고했다. 그들이 파렴치한이라면 공약집에도 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하게 적시해 놓았다. 어떤 기준과 시선으로 검증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팩트에 기반한 역사 교육을 한다고 했고 어디까지가 극단적이라고 정의하진 않았지만 아무튼 페미니즘과 동성애 교육을 막는다고 했다.
아이들보다는 양 진영의 어른들이 원하는 학교를 실현하기 위해 후보들은 접전을 벌였고 결국 후보 중 한명이 당선되어 공석인 교육감 자리가 채워지게 되었다. 아이들이 벌이는 사건사고에는 지대한 관심을 가지면서 아이들의 교육을 책임지는 투표에는 무관심한, 모순적인 국민들. 간단한 예시를 들어 이번 선거의 이슈가 예술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알아보도록 하자.
순한 아이였을 뿐
출처: 박상영 소설가 X계정, @novelistpark
드라마 [대도시의 사랑법]의 원작자이자 각본을 맡은 박상영 소설가는 지난 10월 12일. 자신의 X계정에 민원을 이용한 특정 집단의 공격으로 예고편을 내리게 되었다는 글을 올리며 고통을 호소했다.
그 특정 집단은 실체가 있는 단체였다. 보도에 따르면 학부모 연합 119개의 단체가 문체부, CJ본사, 티빙 사옥 앞에서 드라마 방영 중지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고 한다. 필자는 이러한 행동들이 실제로 방영금지까지 이어질 가능성은 적다고 본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지극히 위헌적인 내용들이니까.
그러나 집단행동을 벌이는 개인들은 아마 결과에 크게 개의치 않을 것이다. 변하는 세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신념이 여전히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생각은 어디에서부터 그들의 뇌리에 뿌리박히게 되었는가. 태어나면서부터 낯선 것에 대한 혐오를 느끼게 설계되었기에 그들이 집단행동을 벌인 것일까.
우리는 안다. 학습된 것이라는 걸. 그리고 전통사회와 달리 전근대와 현대 사회는 학교와 가정이 교육을 분담하는 형태로 이루어져있다. 사회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현상들과 범죄들.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기이한 형태여도 원인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가정 아니면 학교. 보통 그 두 가지 공간 중 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사람들이 댓글로 발산하는 분노의 일부만이라도 교육에 관심을 주었으면 한다. 욕을 할꺼면 떳떳하게라도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