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Opinion] 달과 6펜스 중 무엇을 [도서/문학]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를 읽고

by 최서영 에디터
2024.10.15 12:37

 

 

정확한 강의명을 밝힐 수는 없지만, 학사에서 고전 문학을 바탕으로 하는 비평 이론에 대해 배웠다. 해당 강의를 수강하게 된 이유를 굳이 되살려 생각해 보자면, 문학 비평 방법에 대해 배워보고 싶어서라는 단순한 바람 때문이었다.

 

언제나 나에게 있어 '비평'이라는 단어는 어렵게 다가온다. 더욱이 문학을 비평하는 행위는 대단해 보인다. 비평가라는 사람들이 멋진 단어들로 가득한 엄청난 필력의 비평을 내놓아서일까. 나 역시 끊임없이 비평하며 살아왔을 텐데도 불구하고, 나는 '비평'이란 말 앞에 서면 자꾸만 움츠러든다.

 

한 학기짜리 강의만으로 비평 실력을 늘리고 싶은 요행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나는 교수님의 비평 방법을 그리고 다른 학우들의 비평을 들어보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시각으로 작품을 바라보는지 훔쳐 듣고 싶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직도 문학 비평 방법에 대한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얻은 무언가가 있다. 이렇게 말하니 거창한 걸 깨달은 것 같지만, 엄청난 것은 아니다. 앞으로 고전 문학 독서에도 시간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을 뿐.


격주로 조마다 도서 한 권을 정해 서로 의견을 나누고 발표한다. 우리 조는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를 정했다. 어릴 적 민음사 전집을 책장 2채 가득히 구매해 주신 부모님 덕분에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서 <달과 6펜스>를 찾아 읽을 수 있었다.

 

그렇다. 부끄럽게도 나는 그동안 <달과 6펜스>를 읽어본 적이 없었다. 읽은 민음사 전집보다 안 읽은 전집이 더 많다. 그동안 현대 소설 읽기에 바빠, 고전 소설을 소홀히 했다. 한없이 부끄러운 이 고백을 하는 이유는, 언젠가 고전 문학에 대한 나의 다짐이 시들해졌을 때 오늘 글이 다시 살려주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

 

<달과 6펜스>는 한 예술가의 일생을 그리고 있다. 내레이터인 '나'의 시선으로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의 인생이 펼쳐진다. 평범하고, 무뚝뚝한 남자로 여겨지던 스트릭랜드는 40이 넘어가는 나이에 그림을 그리겠다며 아내와 아이들을 내팽개치고 파리로 떠난다. 동시에 그는 모든 사람의 시선을 무시했으며, 세속과의 연까지 철저히 끊는다. 파리에 와서는 정말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간다. 그런 그를 보살펴 주고, 그의 예술적인 재능을 알아보고 응원해 준 스트로브의 가정을 망가트리기도 하며, 여러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죄책감 따위 느끼지 않는다. 이후 타히티로 넘어가 아타라는 어린 여성과 결혼하게 되고, 헌신적인 보살핌을 받는다. 그의 결말은 비극적이다.

 

작품명에 대한 언급은 책에 나오지 않는다. 작품 해설에 언급될 뿐이다. 달은 예술가가 추구하는 정신적 이상, 현실 너머의 영원히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영역을, 6펜스는 물질과 실용의 가치를 추구하는 세속의 현실 세계를 상징한다. 우리는 <달과 6펜스>의 독자들이 한 번쯤 생각해 본 주제를 놓고 토론을 진행했다. (토론이라기보단, 자기 생각을 공유했다가 더 맞는 표현이겠지만..)

 

달과 6펜스 중 나는 6펜스를 선택했다.

 

무언가를 지독하게 사랑하고 추구하기 위해서는 심리적 혹은 경제적 안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좋아하는 마음이 우릴 구할 거야"라는 말을 좋아하긴 하지만, 해당 말 속 우리는 어느 정도 안정된 우리이다. 지치고 힘들어 망가져 있지만, 어느 정도의 자극이 채워지면 언제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우리이다.

 

우리는 각박한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이 없다면 누릴 수 있는 것들은 한정되어 있다. 오직 "좋아하고,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만으로 현실을 외면하고 낭만만을 좇는다면, 결국 낭만뿐만 아니라 삶 자체를 잃어버릴 위험이 크다. 스트릭랜드는 단지 운이 좋았을 뿐, 자신을 보호해 줄 최소한의 자본이 없다면 현실적으로 살아남기란 힘들다. 현실에서 타인에게 조건 없는 보살핌과 무조건적인 지원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스트릭랜드는 지극히 개인적인 사람이다.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완전히 무관심하다. 하지만 대부분은 타인의 평가와 사회적 기준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경제적 불안정은 스스로에 대한 불신과 자존감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결국 좇고 있는 낭만에 의문을 품게 할 것이다. 안정이 뒷받침되지 않은 낭만은 그저 환상에 불과하다.

 

이렇게 냉소적으로 말했지만, 언제나 나의 마음 한구석에서도 달이 빛나고 있다.  용기가 없는 만큼 방어기제가 크게 작동해서 달의 부정적인 측면만 늘어놓았다. 현실에 치여 달을 포기하며 살지 않길 바란다.

 

*

 

현실적이고, 안정된 삶을 좋아하고, J로 나름 계획적인 사람으로서, 스트릭랜드는 극단적으로 낭만적이며 동시에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인물로 보인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는 그를 최대한 이해해 보고자 노력했다. 그 결과 그의 모습에서 퇴직 후 가장의 모습이 얼핏 투영되어 보였다.

 

스트릭랜드는 가족을 버렸지만, 그가 끝내 남편과 아버지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고는 볼 수 없다. 가정을 완전히 버리면서도 금전적으로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은 그의 행동이 새로운 인생을 찾으려는 일종의 은유적 '퇴직' 같았다. 평생을 6펜스를 좇으며 살아오다가, 퇴직 후에 달을 찾아 떠나는 은퇴자라는 생각을 하니 묘하게 응원을 해주고 싶었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 있다. 내레이터인 '나'가 스트릭랜드의 그림을 이해하고자 했던 순간에 느꼈던 생각들.

 

 

각자가 일종의 구리 탑에 갇혀 신호로써만 다른 이들과 교신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신호들이 공통된 의미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그 뜻은 모호하고 불확실하기만 하다. 우리는 마음속에 품은 소중한 생각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려고 안타까이 애쓰지만 다른 이들은 그것을 받아들일 힘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나란히 살고 있으면서도, 나는 남을 이해하지 못하고 남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 채로 함께 어울리지 못하고 외롭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달과 6펜스> 민음사. P 211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상대의 말 혹은 표현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경우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내가 표현한 진심이 다른 사람에게 온전히 전달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야만 한다. 그러므로 평상시 더 깊이 사유하고, 타인을 이해하려는 마음을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