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정취가 물씬 느껴지는 계절이 다가왔다. 길고 지난했던 여름은 말도 없이 가버리고, 빈 자리를 가을이 급하게 메꾸려고 애쓰는 것이 체감된다. 저번 주까지만 해도 반팔을 입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매서운 한기가 다가왔다. 심각해지는 지구온난화 문제와 더불어 크리스마스까지 100일도 채 남지 않았음에도 28도를 맴도는 날씨에 우려 섞인 목소리를 냈었는데 그것이 무색하리만치 급하게 추워졌다. 덕분에 시간이 날 때마다 급하게 티셔츠를 정리하고, 서랍장에서 묵혀두던 스웨터와 니트를 꺼내 놓았다. 이제는 정들었던 이불 여름과 잠시 아쉬운 이별해야 할 때가 찾아왔음을 실감한다.
습도 없는 버석한 공기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른 하늘은 짙어져 가는 나뭇잎들과 대조되며 경관을 자아낸다. 한 해의 끝을 실감할 수 있는 주변을 바라보며 산책하다 보면 저절로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싶어진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던가. 더위나 추위에 방해를 받지 않고 오로지 책에만 집중할 수 있는 지금, 다들 어떤 책을 읽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최근에 나는 책갈피를 모으는 것에 재미가 들렸다. 정확히는 책갈피 아이쇼핑을 즐겨한다. 책갈피를 모으고 싶은 구매 욕구는 사실 나의 실질적인 독서량과 비례하지 않는다. 책에 꽂히기만을 기다리는 책갈피가 눈에 띄면 얼른 새집을 찾아주고 싶은 급박한 마음이 들곤 한다. 그렇기에 눈길이 자주 가는 책갈피들을 몽땅 장바구니에 담아놓는 것을 좋아한다.
책갈피는 독서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그저 책을 어디까지 읽었는지 알려줄 뿐이기에 갈피끈이나 책장을 접는 것으로 대체될 수 있다. 그럼에도 20·30대의 젊은 독자들이 개성 있는 책갈피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 경험을 빌려 말하자면, 귀여운 책갈피를 끼우는 것 자체가 독서하고 싶은 마음을 자극한다.
나도 처음에는 책갈피에 거부감이 들었다. 책에 붙어있는 가름끈을 사용해도 되고, 겉표지를 이용하거나, 그것마저 불편하다면 그저 속지를 접어놓아도 충분한데, 굳이 부가적으로 액세서리를 사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다 책갈피를 하나 선물 받았다. 마음이 담긴 선물을 가만 두기 아쉬워 직접 사용해 보니 은근 귀여운 구석이 있다. 호감가는 책갈피를 넣어놓으면 자주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책갈피의 용도는 마지막으로 읽은 책장을 표기하는 것이 다이므로 책갈피를 보기 위해서는 책을 펴야만 한다. 그러다 보니 책을 자주 읽게 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책갈피를 사용하는 이라면 누구에게나 자주 사용하는, 그래서 애착이 가는 책갈피가 존재할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내가 자주 사용하고, 애정하며, 한편으로는 아직 쟁여두지 못하고 장바구니에만 담아놓은 책갈피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Mushroom Book CLUB
![[크기변환]choijinyoung_d_001.jpe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410/20241006012155_ufutyfyw.jpeg)
독립 서점 유어마인드에서 굿즈로 출시된 북마크로 작가는 최진영.
나는 집에서 버섯을 키운 적이 있을 만큼 버섯을 좋아한다. 음식에 사용되는 식자재로서의 버섯뿐만 아니라 엄청나게 거대한 균류라는 사실 자체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머시룸 북 클럽이라는 이름의 북마크에는 4종류의 버섯이 저마다 다른 표정으로 책을 들고 있다. 그림 위에 적힌 실제 학명과 버섯의 특징별로 표현된 컬러풀한 색감이 포인트이다.
*너무 오래 덮어두지 마시오! 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오는데, 실제로 버섯이 책장 안에서 그대로 잠들어 버릴 것만 같아 금방이라도 다시 읽어야만 할 것 같다. 재질이 종이라 조심히 다뤄야 한다는 점이 아쉽지만, 직접 코팅해서 써도 괜찮을 것 같은 디자인이다.
Spring and Dango Bookmark Set
마찬가지로 독립 서점 유어마인드에서 굿즈로 출시된 북마크로 작가는 시시킴.
3D 그래픽이 담긴 투명 패트 책갈피 2종 세트로 구성된다. 어린 아이가 크레파스로 그린 것같은 아기자기한 그래픽과 중간이 투명하게 처리된 입체적인 당고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투명한 액세서리를 좋아하는지라 그 귀여움에 빠져 구매했는데, 그림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책장 속의 낱말이 기분 좋게 보인다. 단단한 파일 재질이라 쉽게 상하지 않아 막 사용하기에 용이하다. 가끔 주변에서 요즘은 어떤 책을 읽어? 라는 물음을 받을 때가 있는데 그런 순간에 책에 끼워져 있던 이 책갈피를 꺼내면 귀엽다며 출처를 궁금해하는 질문이 많이 들려온다.
높은음자리표 클립
![[크기변환]3972e7fd6bbe7.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410/20241006012350_rqkcdcss.jpg)
음악 관련 서적을 출판하는 프란츠에서 출시된 높은 음자리표 클립이다. 프란츠는 지난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독립 출판사들을 둘러보던 중 마음이 자꾸 가던 부스 중 하나였다. 구경만 해볼까, 라는 마음은 음악 소설집과 클래식 음악 연표의 구매로 이어졌고, 발길을 옮기려던 참에, 눈앞에 아른거리던 음표 클립까지 손에 쥐게 되었다.
페이퍼 클립, 책갈피, 봉투 포장 등 다용도로 사용 가능하며 철로 만들어져 모양의 가공성이 적어 형상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 작은 해마와 같은 모습이 줄지어 모여있는 것이 귀여워 구입했다. 이름에 적힌 것처럼 본래의 목적은 클립인지라 북마크에 사용하면 종이에 자국이 남는다. 따라서 두꺼운 종이나 파일철, 혹은 코팅된 종이에 꽂는 것을 추천한다.
색이름 모양책갈피 _ 고엽색
![[크기변환]colorShapeBookmark_driedLeaf_0.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410/20241006012405_tmfokilt.jpg)
이번에는 장바구니에 잠자코 담겨있는 책갈피를 소개하고자 한다.
오이뮤에서 출시된 고엽 모양 책갈피로, 한복의 안감으로 쓰이는 노방천에 자수해 만든 것이 특징이다. 고동색의 고엽과 그 구멍 속에 들어있는 연두색 애벌레가 한 쌍으로, 애벌레는 고엽에 바느질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대로 배치가 가능하다. 가을 낙엽 하면 흔히 떠오르는 빨간색, 노란색의 생기로운 색감에서 벗어나 시들시들한 고동색으로 잎을 표현한 것이 인상 깊다. 필름이나 금속으로 만들어진 다른 책갈피들과 달리 천을 덧대어 반투명하게 보이는 것이 독특하다 보니 구매 욕구를 자극한다.
mame bookmark set
![[크기변환]2-02.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410/20241006012417_mumbsryx.jpg)
장바구니에 담겨있는 북마크를 하나 더 소개한다.
타바코북스에서 출시된 마메 북마크 세트는 3가지 디자인으로 이루어진 양면 책갈피로 구성된다. 한 소품샵에서 스티커 세트를 구매하며 타바코북스를 알게 되었는데, 힘을 쭉 빼고 그린 듯한 파스텔 톤의 일러스트가 마음에 든 것이 시발점이 되었다. 이번 북마크는 레트로 일본풍의 디자인과 새침해 보이는 턱시도 고양이가 눈에 들어왔다. 초록색 패턴과 고양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조합이다. 각기 다른 크기로 다양한 책에 쓸 수 있다는 점이 유용해 보인다.
무제
가끔은 직접 만든 것들이 더 애틋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때는 작년 5월쯤. 스승의 날을 맞아 예약해 둔 꽃다발의 픽업 시간을 맞추기 위해 급하게 택시를 탔을 때였다. 아무런 말도 나누지 않은 채 조용하게 운전만 하시던 택시 기사님은 도착지가 가까워져 오자 파일철을 꺼내 뒷좌석에 탄 나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오늘 하루 기분 좋은 일들이 있길 바라요." 예상치 못한 말과 함께 뻗어진 손에는 곱게 건조된 네잎클로버가 있었다. 순식간에 굳어져 있던 분위기가 풀리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활짝 지어졌다. 마치 동화에 들어간 기분을 느끼며 네잎클로버를 받았던 그날은 놀랍게도 하루 종일 기분 좋은 일만 일어났었다.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네잎클로버를 선물 받았던 그날이 신기하고도 기묘해서 그날을 기억하고자 클로버를 코팅했다. 혹여나 클로버가 부서져 버릴까 봐 자주 사용하지는 못하지만, 항상 다이어리에 끼워놓고 그날을 추억하곤 한다. 내 삶에서 대가 없는 행복을 빌어줄 사람이 찾아올 날은 앞으로 얼마나 남아있을까? 하면서.
선물 받은 것들
자주 사용하는 책갈피 중에는 내가 책을 자주 읽는 것을 알게 된 지인이 선물해 준 것들도 있다. 타인이 바라보는 나의 이미지로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다. 취향이 아니었던 것들이 개인적인 일상 속으로 녹아들면서 나의 일부가 되어가는 과정을 즐겨보는 것도 좋다.
Bravo, My Life라고 적힌 베지터블 가죽 책갈피는 마니또 게임을 통해 선물 받았다. 친한 동기들끼리 간 여행에서 클라이맥스는 마니또 게임이었다. 한 달 동안 선물을 고를 시간을 준 다음, 상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물품을 선물해 주는 것이 이 게임에서 지정한 유일한 규칙이었다. 그때 이 책갈피를 선물 받았다. 책을 꾸미는 용도에 비중을 둔 여타 디자인 브랜드의 책갈피와는 다르게 책장을 끼우기에 가장 용이했다. 간단한 것이 최고라는 말도 있듯이, 가장 많이 사용한 것을 꼽자면 아마 이 가죽 책갈피일 것이다.
애정이라는 마음 하나로 선물 받은 금속 재질의 네잎클로버 책갈피도 있다. 엄지손톱보다 조금 더 큰 크기의 자그마한 북마크는 필통에 넣어 다니기에 알맞았다. 언제 어디서 어떤 책을 읽게 될지 모른다는 마음으로 필통에 넣어 들고 다니다 보면 언젠가 필요한 순간이 등장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제자리를 비로소 찾아주었다는 희열이 느껴졌다.
소개한 책갈피 중에는 어디에 꽂혀 있는지 도통 기억나지 않는 것들도 있고, 책상 위에서 꽂히기만을 기다리는 것들도 있다. 새로운 책을 만나 새로운 자리를 찾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더 많은 글들을 읽어나가고자 한다. 독서의 계절인 가을을 맞이하며, 나만의 책갈피를 탐색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