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 세계 공연계의 경향성을 하나 이야기할 때, 그중 하나로 공연과 기술 접목을 이야기할 수 있다. 뮤지컬 <백 투 더 퓨처 Back to the Future>(2020)는 영상기술을 극대화하여 ‘시간 여행’이라는 극의 이야기를 끌어나가며, 2막 마지막 장면에서 자동차를 공중으로 띠어, 360도 회전시켜 무대에서 객석으로 나왔다가 다시 무대로 들어가는 굉장히 무대 연출을 보여준다. 이 외에도 기술의 발전으로 AI와 로봇을 적극적으로 인용한 오페라
사진제공 = 라이브러리컴퍼니
뮤지컬 <부치하난>은 장용민 작가의 소설 『부치하난의 우물』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첨단 기술을 이용해 신비로운 부치하난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다만, 이 작품은 원작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닌, 각색을 통해 등장인물의 설정이나 전반적인 이야기의 흐름과 결말을 바꾸고 있다. 이러한 지점에서 가장 큰 변화는 전설이 현재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 전설은 전설일 뿐, 현재를 살아가는 이야기로 변화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으로 ‘전설’을 다룬 이야기와 차이점을 둔다.
누리는 영봉도사를 통해 자신의 전생이 아주 먼 옛날, 드넓은 사막의 마지막 우물을 지키던 전사 ‘부치하난’이었음을 알게 되고, 이후 부치하난의 삶과 부치하난이 사랑했던 올라라는 여성에 관해 지대한 관심을 갖는다. 그리고 ‘올라’라는 가명을 쓰는 태경이 자신의 올라라고 믿으며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이처럼 누리는 자신이 부치하난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부치하난과 자신은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부치하난이 아닌 ‘누리’로서의 자신으로 삶을 살고자 한다. 그렇기에 누리와 태경의 결말은 부치하난과 올라의 결말과 달라진다. 부치하난과 올라의 죽음으로 끝났던 전설 이야기와 다르게 누리와 태경은 죽지 않고, 살아남아 행복한 삶을 그려나가게 된다. 더불어 누리 또한 원작에서는 정신 지능이 5살인 어른이었지만, 뮤지컬에서는 이런 설정을 삭제했고, 순수한 모습은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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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 이야기와 현재의 이야기, 즉 두 개의 스토리 라인으로 진행되는 작품인 만큼 부치하난과 누리, 그리고 올라와 태경은 한 명의 배우가 두 가지 역할을 소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전설 이야기는 그들의 꿈이나, 영봉도사의 대사와 내레이션으로 극 중 현실 속에 끼어들게 된다. 그렇기에 영봉도사는 극 중 한 명의 인물이기도 하지만, 이 극을 밖에서 조망하는 한 명의 사회자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영봉도사의 캐릭터성이 정확하게 극 도입부에 정해지지 않음으로써, 영봉도사의 내레이션이 다소 어색하게 들리기도 했다. 더불어 1인 2역으로 극이 진행되다 보니 전설 이야기에서 현재의 이야기로 넘어올 때 배우들의 의상 퀵체인지가 이루어지는데, 퀵체인지가 몇 장면에서 의문스럽게 이루어졌다. 이에 음악을 통해 시간적 여유를 마련하거나, 아니면 회전무대를 적극적으로 사용해 시공간의 전개를 자연스럽게 바꾸는 연출을 했으면 조금 더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반적으로 노래는 부치하난과 누리, 올라와 태경의 멜로디 간에 차이를 두었다. 부치하난은 감정을 잃어버린 채 전사로 살아가는 인물인 만큼 멜로디가 무겁고 거친 반면, 누리의 노래는 누리의 순수함을 강조하기 위해 가벼우면서도 따뜻했다. 올라의 멜로디는 올라가 부치하난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주는 역할을 하는 만큼 서정적으로 구성됐다. 반면, 태경은 거리에서 살아가는 만큼, 굉장히 투박하고 공격적인 음악이 전개됐다. 이렇게 극은 전설 이야기와 현재의 이야기 간에 음악적 차이를 두려고 했다. 그러나 극의 1막 도입부의 장면과 음악의 경우, 첫 장면에서 이 작품의 방향성을 정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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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이 작품은 ‘물’의 이미지가 주 이미지로 사용되고 있다. 부치하난이 고래 부족의 일족이라는 점과, 그의 어머니가 물을 다루는 사람이었다는 점. 그리고 태경이 가고 싶은 곳이 바다 건너 환상의 섬 피지라는 점 등이 이를 보여준다. 그러나, 각색의 문제인지 정확하게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물과 그에 부차적으로 따라오는 고래의 이미지가 극 속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리고 개연성을 부여하는지가 다소 정확하지 않다. 그렇기에 극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첨단기술로 구현된) 고래는 눈을 사로잡기는 하지만, 고래의 의미가 서사 안에서 축적되지 못하여 큰 임팩트를 주기에는 다소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그럼에도, 한국 소설을 원작을 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뮤지컬 <부치하난>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근래 한국 뮤지컬계의 주된 흐름은 ‘원작 소설의 뮤지컬화’였다. 그렇지만, 한국 창작 뮤지컬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빅토리아 시대를 중심으로 서양의 원작 소설을 뮤지컬로 각색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서양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경우 사회, 문화, 역사와 같은 사고의 흐름이 근본적으로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아무리 보편적인 무언가를 가지고 오려고 해도 그 사이에는 간극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에 앞으로는 ‘소설의 뮤지컬화’ 작업에서 한국 소설을 소재로 한, 우리의 사고를 담은 작품들이 더 많이 제작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