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가을이구나 싶다.
필자는 가을이 오기를 꽤나 간절히 바랐다. 올해처럼 여름이 싫었던 적은 없다. 긴 여름 동안 매일같이 악기들을 들고 다녔던 탓이다. 습도에 민감한 장비들을 맨손으로 들고 다니려니 신경 쓰이는 게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제는, 기타와 페달보드를 들고도 걸을 수 있는 날씨다. 다만 추위도 일찍 찾아온다는 예보가 마음에 걸린다.
산책의 계절을 맞아, 가을이면 꺼내듣는 명곡들을 소개할까 한다.
The Cranberries - Dreams
‘Dreams’를 처음 들었던 건 20살 때였다. 밴드 동아리 시절 합주곡 정하기에 애를 먹고 있을 때, 한 선배가 추천했다. 크랜베리스의 노래들이 보통 그렇듯, 연주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돌로레스 오리어던 특유의 음색 덕분에, 커버를 피하게 되는 곡으로 유명하다.
크랜베리스(The Cranberries)는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밴드다. 국내에서는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주 활용되는 ‘Ode To My Family’가 잘 알려져 있다. 이들의 대표곡 ‘Dreams’는 제목처럼 꿈꾸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트레몰로 이펙트가 잔뜩 걸린, 도입부의 기타 스트로크 하나만으로, 이 곡을 들을 이유는 충분하다.
가을날 집을 나서기 전, 꼭 재생해 보길 추천한다.
Slowdive - When The Sun Hits
한동안 슬로다이브(Slowdive)는 내게 분석의 대상이었다. 슈게이징을 대표하는 밴드이자, 내 음악의 직접적인 레퍼런스이기 때문이다.
공부하듯, 또 질리듯 들었던 곡이 다시 당기는 이유는 아무래도 날씨 탓인 듯하다. 유독, 다른 계절들과는 다른 가을 햇살만의 느낌이 있다. 따가워 눈을 찌푸리면서도, 그늘에 가려지면 해가 있는 곳으로 가고 싶어지는. 오묘한 가을 날씨가 ‘When The Sun Hits’의 가사와 맞아떨어지는 면이 있어 흥미롭다.
사랑하는 이를 보며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을 표현한 듯, 코러스에서 증폭되는 노이즈는 장르 색깔을 더해준다. ‘When The Sun Hits’가 수록된 정규 2집 ‘Soulvaki’는 슈게이징을 대표하는 명반이다. 짧고 굵게, 90년대를 장식한 슈게이징은 누구나 한 번쯤 빠져볼 만한 장르라고 생각한다.
기타 노이즈에 잠식되는 기분을 느끼기에, 이처럼 좋은 입문곡 또한 없다.
Sweet thing, I watch you
달콤한, 널 보고 있어
Burn so fast it scares me
너무 빨리 타서 겁이 나
The Verve - Sonnet
개인적으로, 한국인의 감성에 가장 잘 맞는 로큰롤 장르를 꼽으라면 단연 ‘브릿팝’을 말하고 싶다. 그동안 확고한 팬층으로 꾸준히 사랑받았지만, 오아시스(Oasis)의 재결합 선언으로 브릿팝은 이제 ‘핫한’ 장르가 되었다고 본다.
오아시스와 동시대에 활동한 더 버브(The Verve) 역시 해외에서는 위상이 대단한 밴드다. 이들 최고의 명반으로 꼽히는 3집 ‘Urban Hymns’가 라디오헤드(Radiohead), 오아시스 등을 누르고 브릿 어워드를 휩쓸었을 정도니 말이다.
‘Sonnet’은 해당 앨범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대중적인 코드와 멜로디, 그렇지만 어딘가 다르게 들린다. 도파민을 끓게 하는 무언가가 있기 보다는, 조화롭게 섞여 하나의 ‘음악’만이 들리는 곡들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Sonnet’은 그 적절한 예시다. 튀지 않지만, 모든 악기 파트들이 고르게 묻어 흘러가는 프로듀싱이 마음에 든다. 물과 같은 곡이라 그런 것인지. 집 앞 홍제천을 걸을 때면 꼭 생각나는 노래다.
Smashing Pumpkins - Tonight Tonight
요즘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별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날씨가 더 추워지면,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는 것도 오래 지속할 수 없기에. 의식해서라도 시선을 위로 향하려고 한다. 그때마다 느끼는 것이, 어둠이 주는 따스함이라는 게 있다.
우주는 미지의 세계다. 고작 25년을 살았음에도, 인생이란 절대 예상대로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 멀리 우주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공간이다. 그럼에도 상상하고, 동경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 우리가 막연한 희망을 품고 사는 존재이기 때문은 아닐까.
‘Tonight Tonight’은 보컬 빌리 코건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학대를 받고 자라던 불우한 어린 시절, 언젠가 인생은 바뀔 거라고 외치던 시절을 회상하는 곡이다.
‘Tonight Tonight’을 들으며, 꿈이 이루어지는 날을 상상해 보라. 유독 정감 가는, 어두운 밤하늘 밝게 빛나는 별 하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Tonight, so bright …
오늘 밤, 너무나도 밝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