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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보다 더한 불행이 있다면, 그것을 오이디푸스가 만났도다.”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 민음사, 2009, 106쪽.

 

 

작 중 ‘오이디푸스’는 태어날 때부터 비극을 가지고 태어난 이였다. 신탁은 그의 편이 아니었으며 태어날 때부터 부모에게 버림받은 채 자라왔다. 비극은 언제나 그의 곁에 있었다. 그는 그 스스로 비극을 향해 걸어갔다.

 

그를 말렸던 ‘이오카스테’의 말을 듣지 않은 채 그녀를 무시하며 자신의 비극이 결코 비극이 아님을 증명하고 싶어 했다. 다만 ‘오이디푸스’는 결국 비극에 깨닫게 되고 자신의 인생이 곧 비극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1. 비극


 

『오이디푸스 왕』은 기원전 5세기에 나온 작품이지만 작품이 창작된 시기와 상관없이 현재에 이르러서도 많은 사람에게 끊임없는 고찰을 남겨주고 있다. 이 작품을 읽은 나 또한 그러했는데 나는 그 이유가 이 작품 속에 담긴 메시지에 있다고 보았다. 이 작품은 한 인물의 비극을 보여준다.

 

나는 ‘오이디푸스’가 철저하게 설계된 듯한 비극을 맞이하기까지, 또 그 비극을 깨닫고 절망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보며 그 과정에서 인간의 삶에 관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고 읽었다.

 

『오이디푸스 왕』을 처음 읽었을 때는 모든 게 ‘오이디푸스’의 선택이 아닌 정해진 운명으로 인해 ‘오이디푸스’가 어쩔 수 없이 안타깝게 비극을 맞이해야만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작품을 계속해 읽고 ‘오이디푸스’의 비극에 대해 생각해보니 비극을 향해 스스로 걸어간 인물은 ‘오이디푸스’ 본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비극을 향해 걸어간 모든 선택이 ‘오이디푸스’의 선택이라고는 할 수 없다. 다만 그는 자기 의지로 그의 아버지인 ‘라이오스’를 죽였고, 어머니이자 아내인 ‘이오카스테’가 그를 말렸음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출생을 밝히려 들었다. 나는 그의 비극은 갑작스레 일어난 것이 아닌 그의 선택으로 인해 천천히 시작된 것이라고 보았다. 작 중 이러한 대사가 나온다.

 

 
“한데 사람들은 재난 중에서 스스로 택한 걸로 보이는 것을 가장 괴로워하는 법입니다.”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 민음사, 2009, 99쪽.
 

 

이 대사를 읽은 후 나는 ‘오이디푸스’의 재난은 신의 장난이 아닌 그 스스로 선택한 것들의 결과라고 생각했다.

 

 

 

2. 선택의 결과


 

‘오이디푸스’ 스스로 택한 것이 곧 비극인 셈이다. ‘오이디푸스’가 비극에 괴로워했던 가장 큰 이유는 그가 내린 선택이 자기 의지에서 나온 선택임을 그 누구보다 자기 자신이 제일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가 만난 그의 비극은 그가 결정한 선택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신탁이 인간의 선택을 인도해주는 역할이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선택한 것들의 결과를 알려주는 역할이라고 보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오이디푸스’에게 내려진 신탁의 내용을 ‘오이디푸스’가 스스로 선택했던 행동들의 결과를 알려주는 것으로 읽었다.

 

‘오이디푸스’뿐만 아니라 우리 또한 삶을 살아가며 수많은 선택을 만나게 되고 그 선택 앞에서 고뇌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선택의 결과를 토대로 우리는 ‘운명’이라 불리는 삶의 흐름을 따라 살아간다.

 

우리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것들의 결과가 아닌 우리가 정할 것들의 결과이다. 한 인물의 비극은 그 인물의 선택에 달려있다.

 

 

 

3. 고통



 

“그러나 필멸의 인간은 저 마지막 날을 보려고 기다리는 동안에는 누구도 행복하다 할 수 없도다. 아무 고통도 겪지 않고서 삶의 경계를 넘어서기 전에는.”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 민음사, 2009, 116쪽.

 

 

작품 마지막에 이러한 대사가 나온다. 인간은 ‘오이디푸스’가 결국 자기 죽음을 기다렸던 것처럼 주어진 선택의 흐름 속에서 죽음을 기다리며 살아갈 것이다.

 

『오이디푸스 왕』은 ‘오이디푸스’의 비극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그 비극을 향해 스스로 걸어가는 인물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 비극을 삶으로 가져와 망가진 채로 죽음을 기다리는 ‘오이디푸스’의 모습 또한 보여준다.

 

우리도 언젠가는 ‘오이디푸스’의 비극처럼 각기 다른 비극에 시달릴 것이다. 다만 그 과정은 ‘오이디푸스’처럼 고통일 수도 있고 그보다 덜한 고통일 수도 있다. 고통의 크기는 각자의 선택에 달려있다.

 

저마다의 고통을 견디며, 인간은 삶의 경계를 넘어설 것이다.

 

 

 

김예은 아트인사이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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