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깨어난 고전 - 몰타의 유대인 [연극]

연극 [몰타의 유대인]이 현 시대에 가하는 일침
글 입력 2024.10.03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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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몰타의 유대인]은 영국의 극작가, 크리스토퍼 말로가 쓴 희곡이고 1590년도 즈음 쓰여 졌다고 알려졌다. 그로부터 무려 400여년이 지난 지금, 어떤 연유인지 [몰타의 유대인]은 현대인에게 선택되었고 세련된 방식으로 재해석되어 다시 우리에게 다가왔다.


내심 딱딱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원작이 고전인 것도 있지만 주제가 종교와 돈, 현대적인 시점에서 보기에는 진부한 주제라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걱정은 기우였다. 우선 [몰타의 유대인]은 재밌는 연극이었다. 주제가 어떻고 연출이나 전개를 논하기 이전에, 이 연극은 두 시간동안 관객을 몰입시키게 하는 힘이 있었다.


고전을 재해석한 구성원들의 노고가 연극 곳곳에서 느껴졌다. 고전이 원작이기에 지루할 수도 있다는 고민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한 인상을 받았다. 의상과 연기, 연출, 노래, 춤. 내용을 제외한 형식적인 모든 면에서 현대적 재미를 충실히 표현하려 한 점이 크게 주요했고 효과적이었다.


내용적인 면에서는, 아무래도 고전을 원작으로 하다 보니 약간의 배경지식은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리 알고가면 수월하겠고, 모르고 간다고 할지라도 괜찮다. 인물의 대사를 통해 충분히 관련 정보가 주어지기에 금세 눈치 챌 수는 있다.


그럼에도 간단히 설명하자면, 과거 유대인들은 고리대금업에 종사하며 부를 쌓아왔다. 반면, 기독교인들은 검소한 생활을 강조하기에 돈을 다루는 유대인들을 하찮게 여겨 그들을 핍박했다. 게다가 유대인들은 예수를 박해했다는 종교적 역사를 지니기에, 나라 없이 떠도는 그들은 가는 곳마다 멸시와 혐오를 받게 된 것이다.


극의 주인공 바라바스는 그러한 유대인의 전형이다. 대사에서 이자를 논하는 것으로 보아 고리대금업에 종사하는 유대인인 그는 얹혀 사는 몰타의 총독에게 자신의 재산 대부분을 몰수당한다. 복수를 다짐하는 바라바스. 이 욕망의 발현이 [몰타의 유대인]을 이끌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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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이 사라진 현재, 기독교인은 또 누구와 싸우는가


 

극을 보다보면 기독교인의 위선과 이중성을 비판하는 대목을 곳곳에서 살펴볼 수 있다. 바라바스야 당시 혐오의 대상이던 유대인이기에 당연히 악역으로 설정되었지만, 바라바스의 자본을 원하는 수사들의 노골적인 행태는 당시 사회 분위기에서 표현하기 힘든, 파격적인 연출이었을 것이었다.


400여년 전의 희곡에서도 살펴볼 수 있듯이 기독교인들의 스스로 자성이 필요하다는 의식이 있었던 것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그리고 긴 시간이 지난 현재, 유대인들의 나라가 생겼고 게다가 한국에서는 애초부터 유대인을 찾아볼 수 없었다. 혐오의 대상이 없어진 지금.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은 평화롭게 자신의 신앙에만 몰두하고 있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그들이 제시하는 문제가 전부 사라지고 그들의 신이 내려오는 세상이 온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얼마 못 버티고 온 몸을 긁으며 새로운 유대인을 찾아 나설 것이다. 다시 외부의 것들을 혐오하고 증오하고,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다시 기독교에 환멸을 느끼고. [몰타의 유대인]이 비판하고 있는 부분은 오랜 시간이 지난 현재에도 유효하다.


고전은 선택되는 순간부터 힘을 지닌다. 세상이 원하기에 오랫동안 잠자던 텍스트가 현대적으로 해석되어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잠자던 [몰타의 유대인]이 깨어나 세상에 무어라 외치는지 귀 기울여 들어보자. 세상에 소금이 되어주는, 중요한 가치가 함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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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악인, 바라바스


 

바라바스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몰타의 유대인]의 주된 사건은 바라바스의 악행으로 전개된다. 사람을 기만하는 것은 물론이고, 목숨을 빼앗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악인이다. 일말의 여지도 없는 악인이긴 한데, 그렇다고 바라바스가 싸이코패스 막장 살인마로 비춰지는 것도 아니다.


바라바스의 악행은 엄연히 복수의 일환으로 수행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복수의 대상은 자신의 재산을 위협한 외집단, 기독교인들을 향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바라바스가 내집단에 소속된, 자신의 딸까지 죽음의 수렁으로 밀어 넣었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바라바스가 자신의 딸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사건, 그리고 그 일이 벌어진 시점도 굉장히 재밌다. 바라바스는 본래 자신의 딸인 아비게일을 끔찍하게 아꼈다. 그러나 바라바스가 복수를 위해 아비게일의 약혼자를 사망케 하자 아비게일은 그에게 실망해 수도원으로 들어가 수녀가 된다.


이 부분에서 바라바스는 학습된 행동을 한다. 외집단을 경계하고 심지어 살해하지 않으면 자신이 위험해진다는 경험. 그것에 의해 이제는 외집단이 된 딸, 아비게일을 죽이기로 결심한다. 자신의 핏줄까지 살육하는 인간 말종, 바라바스. 그러나 그는 감정에 휘말려 살인을 저지르진 않았다. 그저 자신을 위협하는 외집단을 죽여야 한다는, 학습된 행동을 그대로 수행했을 뿐이다.


바라바스를 변호하는 것이 아니다. 이 극이 말하고자 하는 가치가 이러한 지점에 있다는 것이다. 어떤 형태와 내용이 담기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모든 혐오는 늘 그에 상응하는 결과값을 도출한다는 불변의 진리를 다시금 설파한 것이다.


예수가 등장하며 세계에 알렸던 그 진리. 그것을 망각한 채 그를 따른다며 떵떵거리던 이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극, [몰타의 유대인]. 현 세상에 따끔한 일침을 가하기 위해 그것은 다시 선택되어 깨어났고 우리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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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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