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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평화를 위하며, 사랑으로

 

이는 나의 블로그에 작성한 한 일기의 마지막 문장이다. 그 일기는 어떠한 상실을 통해 작성하였으며 그 상실은 나에게 평화를 위해 사랑으로 살아갈 수 있는 초능력을 주었다. 차도하 작가의 첫 시집이자 유고 시집인 <미래의 손>을 작성하기 전에 한 가지 일러둘 것은, 상실은 나에게서 ‘빼기’를 하는 수학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여러분이 마주하게 된 상실을 마주하여 그 속에서 부유하는 것이 아닌 헤엄칠 수 있기를 바라며.

 

 

 

열여섯 획


 

시인은 2020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2020년 1월 22일 진행된 시상식 소감은 2020년 1월 20일의 일기를 읽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중 기억에 남는 부분을 인용하였다.

 

“나는 문인들을 보면서 나보다 먼저 태어나 먼저 싸우고 계속 시 쓰는 사람들을 보면서 시를 썼다. 나를 때리고 만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고 말했던 어른들을. 책임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렸던 어른들을. 내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먼저 부정하고 먼저 긍정하던 어른들을 생각하며, 한 방 먹이기 위해 썼다. 그러니까 나는 글을 쓸 것이다.”


“문장을 열심히 갈아서 창으로 만들어서 어딘가로 꾸준히 던질 것이다. 그리고 글을 열심히 써서 부자가 될 것이다. 농담이고 부자는 못 되더라도 문단에 한 획을 긋는 사람이. 아니 열여섯 획 정도는 긋는 사람이 될 것이다. 차도하가 딱 열여섯 획이다.”

 

그에 대해서 감히 말하건대, 당돌한 소녀라고 하겠다. 문학세계사에서 발간되는 <신춘문예 당선시집>을 ‘문단 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문학세계사 기획이사 사건에 대하여 X(당시 트위터)에 이유를 언급하며 당선 작품 수록을 거절하였다. 신인이라는 이름으로 첫 작품을 공개할 수 있는 경로임에도 불구하고 소신껏 행동한 차도하 시인은 당돌함을 넘어서 용감하다는 말이 불쑥 튀어나온다.


이 세상을 살아가며 느낄 수 있는 것은, 용감, 씩씩, 평화, 사랑. 이런 것들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를 어릴 적 이루었던 느낌과 감정, 그런 것들은 어른이 되며 ‘이상’이라는 단어 한 글자에 갇히고 만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 갇히지 않고자 했다. 말로 한다. 글로 쓴다. 행동으로 보여준다. 이 세상에 작은 주먹을, 그러나 묵직한 주먹 한 방을. 퍽! 하고.

 

 

 

미래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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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도하 작가의 첫 시집인 <미래의 손>은 산문집 <일기에도 거짓말을 쓰는 사람> 후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뒤 출간되었다. 책 표지는 이은새 작가의 발화여자(2014)를 전용완 디자이너가 다듬은 것으로, 독서 유예 중 ‘나를 펼쳐주세요 나는 줄줄 흐르고 싶어요 강이 될래요 바다가 될래요 마그마가 될래요 마그마를 피하기 위해서는 마그마를 등지지 말고 마그마를 보고 도망쳐야 한다고 한다’가 떠오른다. 시의 한 문단 또는 한 문장만을 기억하고 매칭하는 것은 좋은 시 읽기는 아니지만, 표지 작품을 볼 때마다 마그마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을 멈추기 쉽지 않다.


<미래의 손> 낭독회 및 윤독회를 다니며 알게 된 사실로, 원래 표제작은 <미래의 손>이 아니었다. 물론 시인과 표제작을 논의할 수 없었으나, 출판사 봄날의 책으로 투고했던 당시 메일 제목의 표제작은 <언덕을 뛰놀던 아이들이 그것이 무덤이었음을 눈치챌 때>이다. 해당 작품은 <미래의 손> 145장에 수록되어있다. 이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는 참 차도하 시인 같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국은 외국이다. 어쨌든 모국은 아니다. 모국은 우리나라도 한국도 아니다. 천국에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입국할 때 모든 엄마를 버려야 한다. 모국을. 모국어를. 모음과 자음을 발음하는 법을. 맘-마음-맘마를. 먹으면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밥그릇을. 태어나고 길러진 모든 습관을.

 

<입국심사 中>

 

 

해당 시집은 <입국심사>라는 시 한 편을 첫 장으로 시작한다. 입국심사를 받으며 차도하 시인의 미래의 손을 잡고 그 안으로 끌려들어가는 것이다. 심사를 받고, 그 안에 들어가 시를 읽으며 활자를 분리하며 먹으며. 낱말을 맞추며 시를 음독한다.

 

 

그러나 우선은 공터에 빠져나와 담배 냄새를 빼기 위해 산책을 하기로 하고, 중학생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다가

 

주머니 속에서 어떤 손을 잡았다.

 

그것은 가족도 친구도 애인도 선생도 신도 아닌

시를 쓰게 될 중학생의, 미래의 손.

 

하지만 지금 이 시에는 시인이 등장하지 않고

 

주머니 속에 깊게 손을 찔러 넣은 중학생이 당신을 지나치고 있을 뿐이다.

 

<미래의 손 中>

 

 

표제작 <미래의 손>에서는 첫 연의 첫 행부터 메타시가 등장한다. 시인 본인을 언급하고, 그러나 시인 본인은 등장하지 않는다는 문장. 알쏭달쏭한 메타시가 시집에 가득 들어차있다. <일기에도 거짓말을 쓰는 사람>이 자의식 과잉 에세이라더니, 그는 자신을 노출하고 싶었나 보다. 그래서 그런 시를 통해 고함을 친다.


나는 대구 ‘아무의 방’에서 진행했던 윤독회에 참여해 <미래의 손>을 낭독했었다. 그러다가 울었다. ‘중학생’이라는 단어에 상실감을 느끼고 먹어들어가는 목소리를 억지로 쥐어짜 낭독을 마무리 했다. 해당 윤독회의 사회를 맡은 고명재 시인이 이 시를 선택한 이유에 대하여 물었을 때, 중학생 시절 은근슬쩍 손을 잡으며 ‘우리 같이 축구하자’고 새 친구를 사귀게 되었던 과거의 나를 떠올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부들부들한 중학생의 두 손. 처음 보는 친구가 마음에 들어 그 친구의 손을 거리낌 없이 잡으며 했던 말. 그 친구의 대답 ‘그래.’ 그렇게 친구의 시작이었던 추억.


차도하 시인의 <미래의 손>을 선택한 이유는 수없이 다양하다. 나의 감정을 쏟아낼 수 있는 유일한 시집이기 때문에. 차도하 시인이기 때문에. 그 속에 부유하는 것이 나의 감정이기 때문에. 말을 하고 싶기 때문에. 글을 쓰고 싶기 때문에.


나도 그처럼 활자를 창문으로 만들어 고함치고 싶기 때문에 글을 쓴다. 이것을 당신들에게 읽혀 본다.

 

*

 

차도하 시인의 <일기에도 거짓말을 쓰는 사람> 중 한 문장을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내가 죽어도, 내가 살아 있는 것처럼 사람들이 내 글을 대충 읽어주면 좋겠다. 다음 작업을 기대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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