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분초 단위로 쏟아져나오는 기사들 중 이따금씩 함께 손잡고 나온 친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기자수첩], [취재수첩] 등의 말머리와 함께 등장하는 이 친구들은 기사의 본편에는 실리지 않은 취재 과정과 기획 의도, 미처 싣지 못한 뒷이야기를 담고 있는데요.
대중에게 판단의 몫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사실 위주로 채워지는 본편과 달리, 기자의 해석이 보다 날것으로 드러나 있는 점이 이 친구들의 매력입니다. 기사 내용을 직접 취재해 온 기자들이 사실과 함께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장인 셈이죠.
돌이켜보면 가장 고민을 많이 하고, 공을 들인 글일수록 더 많은 내용을 정제하고 수정해 왔던 것 같습니다. 취재수첩에 담긴 이면의 이야기처럼, 아트인사이트에 글을 쓰면서 제멋대로 떠올렸던 서랍 속 내용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글에 담긴 솔직함이 하나의 커다란 매력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을 실감한 글입니다. 이 글을 쓴 이후로 새 원고를 작성할 때 글의 본질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나'를 담아보고자 했는데, 고백하자면 그렇게까지 잘 이뤄진 것 같진 않습니다. 그래도 제 경험과 생각이 오롯이 담겨 있는 제 글들을 무척 아낍니다.
<너에게 나에 대해 물었습니다>는 나를 소개하는 자리이지만 정작 제 자기소개를 처음 접하는 독자보다도 더 스스로를 새롭게 마주할 수 있던 계기입니다. 주변의 소중한 이들에게 나에 관해 묻고, 비슷한 듯 다른 답변들을 보면서 상대와 나를 동시에 알아갈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질문지를 구성할 때가 제일 골치 아팠습니다. 누군가를 더 알아가기 위해 인터뷰 질문지를 구성한 적은 많은 반면, 저에 관한 질문들을 누군가에게 늘어놓은 경험은 많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처음엔 역으로 누군가에게 나에 대한 인터뷰를 요청해볼까 생각도 해봤는데, 평소 자기소개서를 쓸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글의 방향을 정할 때 가장 주요하게 생각했던 점이 '어떻게 하면 나에 대해 새롭게 접근해 볼 수 있을까'였기 때문입니다.
글이 올라간 이후에도 답변을 읽어보고 또 읽어보았습니다. 스스로 생각했던 나의 모습과 타인이 보는 내가 어떻게 비슷하고 다른지 생각해 보고, 나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진심으로 답을 내어준 상대에게 큰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글의 말미에도 언급해 놓았지만, 한 번쯤 질문을 만들어 인터뷰해 보시는 것도 서로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 같습니다. 여담을 덧붙이자면 소중한 친구들 A,B는 올해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 중 하나로 이 인터뷰를 꼽았어요.
[Opinion] 변화에 올바르게 대처하는 법 [문화/전반]
주제와 방향성을 정할 때 가장 많이 고민한 글입니다.
파리올림픽에 대해 더욱 솔직해지자면 실제로 아쉬운 점이 지천에 깔려있었습니다. 주로 행사를 이끌어가는 환경이 비판의 주를 이루었죠. 가동되지 않는 에어컨이 선수의 기량 발휘에 영향을 줄 수 있었고, 충분히 정화되지 않은 센강은 자칫하면 선수 인생을 망쳐버릴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한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파리올림픽이 시도한 변화들이 묻히는 것은 원하지 않았습니다. 개폐막식은 원형 경기장 안에서 이뤄지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는 동시에 프랑스의 상징인 문화유산들을 자랑스레 주인공으로 등장시켰어요. 오랜 기간 올림픽의 대미를 장식해 온 남성 마라톤의 자리에 여성 마라톤을 제안하고, 선수들의 성비를 맞추었으며 이러한 메시지를 로고에 고스란히 담아냈습니다. 하나같이 올림픽의 전통성을 해칠 수 있기에 섣불리 행할 수 없는 시도들이었습니다.
이번 올림픽에서 지켜지지 못한 일련의 질서들은 반성하고 고쳐 이 다음 기회에 보완할 수 있는 요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파리올림픽이었지만, 새로운 것들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어 행복했어요.
[Opinion] 일본과 아프리카, 시대를 넘어선 합주 [전시]
이 글에는 일본 여행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 중 하나를 담았습니다. 올해 접했던 전시 중에 손꼽히게 탄탄하고, 계속해서 궁금증을 자아냈던 전시입니다. 머나먼 동아시아 타지에 흑인 예술가의 개인전이 열리는 점도 신기했고, 그 전시가 일본에서 열려야 하는 이유를 멋지게 설득한 전시 구성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만족도가 높았던 만큼 글을 쓸 때의 고민도 많았습니다. 전시의 순서대로 글을 쓰는 편이 읽는 사람이 이해하기 편하겠다 싶으면서도, 마냥 가이드북처럼 글을 쓰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게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온 전시의 구성을 기준으로 글을 짜보기로 했습니다. 티에스터 게이츠의 작품세계에 경종을 울린 일본 문화를 소개하고, 그 세계를 작가가 어떻게 풀어냈으며, 앞으로는 어떤 작품으로 영감을 이어갈지 차례로 적어 내려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하면 그게 제가 그 전시를 이해하고 받아들인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누군가는 똑같은 전시를 보고 저와 다른 종류의 후기를 남겼을 거예요. 동일한 것을 경험하면서도 각자가 느끼는 바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는 점이 참 재미있습니다.
제 문화생활의 가장 커다란 비중을 차지해 온 것은 전시입니다. 작품을 보면서 생각을 곱씹고, 다시 보면서 요리조리 의도를 관찰해보는 과정이 무척 즐겁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시를 관람하는 시간도 꽤 긴 편입니다. 3시간을 채우는 순간도 많았어요.
그래서인지 눈 깜빡하면 장면을 놓칠 수 있는 공연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학창 시절 필기를 놓치면 유독 찝찝함을 많이 느꼈는데, 은연중에 그런 불편함이 반영됐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공연을 관람한 뒤 글을 쓸 때엔 많은 고민이 동반되는 편입니다. 이 공연에서 어떻게 특징을 잡으면 좋을지, 집중하지 못한 장면은 없을지 스멀스멀 걱정이 스며들기 때문이에요.
특히 색소폰은 익숙하지 않은 악기라는 점에서 한층 더 높은 진입장벽이 있었습니다. 새로운 경험에 설레면서도 색소폰의 연주법과 체계에 관해 잘 모르는데 글을 잘 풀어갈 수 있을지 고민이 앞섰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정답은 공연장에 있었습니다. 음악에 대한 전문적 배경지식이 없더라도 색소폰만의 소리에서 특질을 느낄 수 있었고, 그걸 연주하는 워렌 힐 색소포니스트의 모습에서 특징을 잡아볼 수 있었어요. 공연이 흘러가는 장면에 집중하면 얼마든지 감상을 녹여낼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패닉의 '내 낡은 서랍속의 바다'를 좋아합니다. 파도에 너울져온 고민과 걱정, 슬픔을 담은 노래입니다.
파도 속 내 감정을 섬세하게 살펴보고, 그 이면을 떠올려보는 모습이 좋습니다. 가사에서는 파도가 다소 무겁게 그려지지만, 생각해 보면 우린 높은 파도에 위협을 느끼다가도 막상 파도의 찰랑이는 감각에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니까요.
패닉보다 살아온 날들이 길지 않아 제 서랍이 아직까지 원숙히 낡지는 않았습니다. 언젠가는 서서히 낡아갈 테지만, 적어도 서랍이 마르지 않도록 더 다양한 것들로 채워가고 싶어요.
아트인사이트에서 글을 쓰면서 자주 느낀 감상은 각각의 콘텐츠를 접한 뒤, 이를 곱씹는 과정에서 제가 조금씩 성장하는 것이 느껴진다는 거예요.
더 많은 작가들의 이야기를 접하고 이해하면서 제 이면의 에피소드를 차곡차곡 쌓아가보려고 합니다. 훗날 더 깊이와 노하우가 쌓인 글들과 함께 여러분을 마주할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