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별로 영화를 분류하는 버릇을 가진 지는 오래되었다. 물론 하나의 계절로 한정되지 않는 작품도 있으며, 굳이 어떤 기온과 어울리는 영화라고 정의내리고 싶지 않은 작품도 있다.
그러나 가을에 떠오르는 영화들은 유독 선명하게 그 색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쓸쓸하고, 때로 비루하나 고즈넉한 계절. 가장 알맞은 온도를 가지는 계절. 독서라는 이름의 아주 선한 습관을 소지한 계절.
나의 가을을 이미 열었고, 이제는 당신의 가을을 열게 될 몇 가지 영화들을 건네보려 한다.
1. 시월애 - 나에게 가을 그 자체인 영화. 우체통, 편지, 통과하는 시간과 공간... 단어만으로 쓸쓸하고 아린 느낌들을 준다. 당신에게 가을이 어딘가 시린 마음이 드는 계절이라면 90년대의 어떤 이야기들로 채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2.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 제목이 참 아름다운 영화. 지금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사랑의 이름이 있다면 기꺼이 작명할 수 있도록 이끌 것이다. 곁에 있는 이에게 떨어지는 단풍잎 하나 잡아 건네고 싶게 하는 장면들.
3. 인생은 아름다워 - 국내 뮤지컬 영화라는 타이틀에 앞서, 가을을 선명하게 담아낸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조금 서툴면 어떠한가, 누군가는 그 서투름으로 한 계절을 온전히 품어낼 수 있었다.
4. 모어 댄 블루 - 국내 영화를 리메이크한 영화. 특별히 가을을 그렸다기보다, 선선한 바람과 같은 서사를 지녀 지금의 날씨와 딱 알맞다. "다음 생에는 반지, 안경, 공책이 되고 싶어. 언제나 네 곁에 함께할 수 있잖아."
5. 비긴 어게인 - 얼마 전 재개봉하며 많은 이들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던 영화. 유명세를 가진 영화를 그렇게 즐겨 보는 편은 아니지만, 극장에서 다시 이 선율을 마주하며 그 유명세의 바탕은 결국 울림이었음을 실감했다.
모든 도전하는 이에게 선물하고 싶다.
6. 리틀 포레스트 : 여름과 가을 - 여름에서 가을로 흘러가는 지금의 시점과 퍽 어울리는 색감들. 분주한 일상 속 프레임 속에서라도 온전한 휴식을 누리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이번 가을에는 더더욱 건강한 식사와 건강한 마음이 삶에 동반하기를 빈다.
7. 동감 - 이 시절의 한국영화들만큼 가을의 느낌을 잘 표상하는 매체가 있을까? 환상적인 경험, 시공간을 뛰어넘어 이어지는 마음. 곧 "동감".
8. 소년시절의 너 - 비긴 어게인과 더불어 최근 재개봉으로 관심을 끌어모았던 영화. 담고 있는 색감이 유독 가을을 닮았다. 서늘한 이 기온과도 꽤 괜찮은 화음을 만들어낼 것 같다.
9. 스페이스 비트윈 어스 - 누군가는 이 영화를 가을로 분류하는 것에 의문을 표할 수도 있겠지만, 필자는 왜인지 모르게 이 영화가 곧바로 떠올랐다. 때로는 가을을 담지 않고도 가을을 닮은 것들이 있다.
그 외로움이, 그 결핍이 결국 희망으로 만발하는 순간.
10. 만추 - 사실상 가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국내 영화. 떨어지는 낙엽의 꽃말이 결코 소실이 아님을 깨닫게 할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가을은 결국 또다시 사랑에 둘러싸인 계절일지도 모르겠다. 돌아보면 일년 내내 사랑을 바라본다. 사랑은 연료며, 이유며, 우리의 절실한 소재다.
피부로도, 감정으로도 찾아올 거센 바람 속에서 가을이 주는 낭만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기를.
10월에게 미리 인사를 건넨다. 잘 부탁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