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독파는 언제고 다시 울릴 궤적이 되고 - 수림뉴웨이브 2024 : 독파 獨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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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로 박우재 연주가의 거문고 연주를 직접 들어본 기억이 있다. 올해 초 <벗어날 탈 脫>이라는 영화의 개봉 기념 GV였다. 영화 감상이 끝나고 행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영화 음악을 담당한 박우재 연주가는 관객들 앞에서 영화의 엔딩곡을 비롯한 자작곡을 직접 연주했다. 그때 느꼈던 뜻밖의 벅찬 감상이 생생하다. 극 중 거문고 연주는 서스펜스를 자아내고, 극의 호흡을 고조시키고 풀리게 하는 데 시각적 자극만큼이나 큰 부분을 차지한다. 대사나 조밀한 서사 구조보다도 시청각적인 리듬의 변주로 감각을 이끌어가는 영화에서, 거문고라는 데면데면한 악기만으로 풍성하게 고양해 낸 정적. 그것이 실제 공간을 채우는 것을 느낀 황송한 경험이었다.
벌써 반년이 넘게 지난 일인데, 기억이 분명한 것이 신기했다. 이것저것 관람하고 들춰보는 것을 즐기지만, 당시 아무리 황홀했던 감상이더라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금세 휘발돼 버리곤 하니까. 만성적인 ‘문화적 건망증’(독서하고 얻은 깊은 감명을 죄다 잊어 통탄하는 인물이 나오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단편소설 「문학적 건망증」을 차용해봤다)에도 불구하고 그야말로 어쩌다 듣게 된 연주에 대한 기억이 이렇게 선명하다니 별일이었다.
<수림뉴웨이브 2024 : 독파 獨波>의 라인업에서 박우재의 이름을 발견하고 했던 생각이다. 마음에 뚜렷한 궤적을 남긴 연주를 다시 들어볼 수 있다니, 반가운 기회였다. 그리고 먼저 밝혀 두자면, 이번 공연에서 첫 음을 듣고 바로 알 수 있었다. 지금 홀로 울리는 음의 파동은 세월이 흘러서도 언제고 선연히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스쳐 가고 말 법했던 날을 쉽게 다시 떠올릴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였다.
공연장에 처음 입장하면, 검고 어두운 공간 가운데 천장에서부터 길게 내려진 흰 천 사이를 스쳐 좌석에 접근하게 된다. 무대와 단차가 없으며, 관객 모두가 공연자와 눈을 분명히 맞추고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만한 거리에 의자가 늘어서 있다. 무대 뒤편엔 서성협 작가의 「소리병풍」과 「유사병풍」이 설치되어 격식을 최소화한 단출한 무대에 아우라를 더한다.
가벼운 차림으로 걸어들어온 박우재 연주가는 빈 무대의 바닥에 앉아 악기를 꺼내 놓으며 관객들에게 다감하게 말을 걸었다. 성글게 흘러가는 말들이었지만, 거문고라는 악기에 대부분 익숙하지 않을 이들에게 툭 털어놓는 이야기는 청중을 음악에 더욱 가까운 자리로 초대해 주고 있었다.
그가 고구려의 악기라고 하는 거문고를 현대의 조율기로 매만지는 게 재밌지 않느냐고 운을 떼며 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나무로 된 긴 몸통과 누에고치에서 자아낸 명주실이 주 소재인 현으로 주로 구성된 전통 악기인 거문고는 습기에 특히 민감하다고 한다. 그는 으레 하는 것과는 달리 현을 브릿지 위에 고정한 채로 악기를 보관하지 않고 연주 전 현을 올려 음들이 제자리를 찾을 시간을 준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너의 속도대로 가거라.’ 거문고도 휴식하며 현의 긴장을 풀고 있다가, 저만의 속도대로 제자리를 찾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이런 태도가 이번 공연의 제목과도 연결된다. <혼자서 천천히 나나>. 일반적으로 전통을 최대한 충실하게 답습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져 온 국악계에서 박우재 연주가는 말하자면 ‘혼자서’, ‘천천히’, 그만의 보법으로 거문고의 새로운 소리를 탐색해 온 사람이다. 실은 국악에 특별히 관심을 기울여 본 적은 없기에, 거문고의 일반적인 소리를 잘 알고 있진 않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단 한 대의 국악기에서 이렇게 다채로운 질감의 소리를 들을 수 있으리라곤 쉬이 예상하기 힘들 거라는 점이다.
그는 원래의 발현과 타현의 소리뿐만 아니라, 거문고의 좌우를 뒤집어 활로 연주하는, 길게 울림이 지속되는 찰현의 소리까지 활용하는 주법을 추구하고 있다. ‘이것을 진정한 거문고로 볼 수 있을까?’ 의문점을 직시하고 때로는 자문하면서도 그는 “늘 새로운 거문고를 상상”하길 멈추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이상적인 변이”임을, 한 점에서 울려 나와 공연장을 두텁게 채워나가는 소리가 거뜬히 증명해 냈다.
몸으로 호흡하는 소리,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 술대가 울림통을 투박하게 울리는 소리까지 전해지는 인접한 고요 속이었다. 매개되지 않고 현에서 울려 나온 그대로 퍼져나가는 소리는 숨처럼 조용히 울리고, 떨어지고 튀어 오르고, 힘 있게 퉁기며 활주하다가, 어느 순간엔 툭 멈추어 잦아들며 정적을 역설하기도 한다. 평소 누군가는 시끄럽다고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화려하게 경합하는 소리로 가득 찬 음악을 즐겨 듣는지라, 이렇게 음 하나하나, 한 곳에서 울려 나오는 선율에 집중한 기억이 언제였더라, 더듬고 있으면, 어느 순간 공간을 압도하는 부피의 반향이 흘러넘친다.
익숙한 현대의 인스트루멘탈 음악처럼 서정적으로, 점점이 울리던 음이 아름답게 밀도를 높이고 풀어 가며 전개되는 ‘나나’가 첫 곡. 이어 큰 목재 울림통을 찰현으로 울리는 굵고 부드러운 소리로 비장한 단조 모티프를 변주하는 ‘번짐’이라는 곡에 이르면, 툭 삐쳐 올라가는 소리와 불협하게 끼어드는 마찰음까지, 거문고로 낼 수 있는 모든 소리를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것만 같다는 황홀한 감상에 잠기게 된다. 마지막으로 듣게 된 ‘점’은 제목 그대로 한 점에서 퍼져나가고 다시 한 점으로 수렴하는, 점찍듯 울리는 음만으로 만들어지는 역동을 느낄 수 있었다. <벗어날 탈 脫>에서 느꼈던, 거세게 내닫던 음이 어느 한 지점에서 뚝 멈춰 섰을 때 정적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힘을 다시 체감할 수 있어 반가웠던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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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림뉴웨이브 2024’에서는 ‘독파’라는 새로운 단어를 주제어로 제시하여 홀로(獨 홀로 독) 자신만의 흐름(波 물결 파)을 만들어 가고 있는 예술가에게 헌정하고 있다. 박우재 연주가의 독파가 어떤 울림을 가졌는지, 내가 덕지덕지 달아 놓은 미사여구로 조금이라도 모사가 됐을지 모르겠다.
<혼자서 천천히 나나>라는 제목에 대단한 의미는 없다고 겸연쩍게 말하면서도 그는 뜻이 분명치 않은 ‘나나’라는 말이 가질 수 있는 여러 의미를 이야기했다.
-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음을 흥얼거리는 소리를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 그리고 ‘누군가의 삶은 ‘나’의 꿈이 되고, ‘나’의 삶은 누군가의 꿈이 된다’는, 울림이 퍼져나가는 순환 작용도 하나의 의미이다.
- 또한 그는 『 ‘나’무가 ‘나’를 찾아오는 날에는』이라는 산문집을 꺼내 들기도 했다. 어떤 글에서 미처 겉으로 꽃피지 못한 무화과에 관해 이야기하며, “이 세상에 가치 없는 삶도 있을까” 질문을 던졌다가, “이 세상에 가치 없는 삶은 없다”고 다시 답하고 있다고 한다.
- ‘나나’의 연주를 마치고서는 ‘지나간 ‘나’와 지금의 ‘나’가 맞이하는 다음의 ‘나’’라는 의미를 이야기했다.
혼자서, 천천히, ‘나나’. 박우재 연주가의 독파는 아마도 공연장에 있던 모두에게 언제고 다시 떠올릴 궤적으로 새겨졌을 것으로 생각한다. 기회가 닿는다면 꼭 현장에서 연주를 들어보고, 그 울림을 직접 느껴보길 권한다.
(<수림뉴웨이브 2024 : 독파 獨波>로 10월의 마지막 목요일까지 여섯 연주가의 독파를 더 만나볼 수 있다. 기대했던 것보다도 훨씬 생생하게 음악을 느끼고 연주가의 이야기를 가까이 들어볼 수 있었던 경험이었던지라, 나도 다른 공연도 시간을 내 관람해 볼 계획이다. 공연장이 자리한 김희수아트센터의 세련된 공간, 홍릉 일대의 푸릇한 전경, 바로 옆의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까지 함께 즐겨보는 것도 추천하며, 또한 수림문화재단의 뉴스레터에서 박우재를 비롯한 음악가의 향후 활동 소식 또한 만나볼 수 있다고 하니, 관심이 생긴다면 참고해 봐도 좋겠다.)
[이명화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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