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글쓴이: 나, 옮긴이: 나, 엮은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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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감을 찾으러 내 블로그를 여행하다가, 지난 봄쯤 책을 읽고 블로그에 남긴 기록이 눈에 띄었다. 블로그에서 글감을 찾은 건 평소와 같다지만, 이것은 평소와 매우 다른 글이 될 예정이다. 도서 리뷰가 아닌, 도서 리뷰의 리뷰라고나 할까.
예전에 천국보다 낯선 재밌게 읽었는데 같은 작가다 분위기는 비슷한데 걔는 겨울이고 얘는 여름이이리 습한데 어찌 이리 삭막한 여름이냐
진짜 바다 풍경이 잘 그려진다고 생각하며 읽었는데 그건 내가 연어베이글을 먹으며 읽어서일지도 몰라
보다시피 나는 블로그에 글을 올릴 때 문장부호도 거의 찍지 않고 엔터는 마음이 동할 때 내리친다. 띄어쓰기도 가독성을 해치지 않는 선만 지킨다. 그 외에도 여러모로 불친절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책을 읽던 기억, 그리고 리뷰를 쓰던 기억을 더듬어 해설을 조금 덧붙여야겠다.
마치 역주를 다는 것 같지만 여기서는 글쓴이도 나, 옮긴 이도 나인 셈.
여하튼 이장욱 작가의 <뜨거운 유월의 바다와 중독자들>을 읽고 블로그에 기록해 두었다. 그의 다른 작품, <천국보다 낯선>을 재밌게 읽은 기억이 있는데 그 책이 눈발이 휘날리는 한겨울이었다면, 이 책은 한여름이다. 대한민국의 여름인 것으로도 부족해 바닷가를 배경으로 하는 바람에 습하다 못해 눅눅한 공기를 가졌지만, 동시에 콧속이 찢어질 것 같은 삭막함을 지닌 소설이다. 혹은 그랬던 걸로 기억한다.
연어 베이글은… 연어 베이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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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사로잡힌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난 내 삶을 살고 있을까 내 삶에 사로잡혀 있는 걸까 흠흠사로잡힌다 뿐만 아니라 비슷한 문장과 표현이 반복해 나옴 마치 심리검사에서 비슷한 문항을 다른 표현으로 계속해 출제하며 진실성을 검사하는
사로잡힌다는 얘기가 계속 나오던가? 잘 기억나지 않는데 그렇다고 하니 그런 걸로 한다. 저 글을 쓸 때는 내 삶에 사로잡히는 게 아니라 직접 삶을 살아야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며 적었을 것 같은데(아닐 수도 있다. 앞서 말했듯, 잘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의 나는 내 삶에 사로잡혀 사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는 의견이다.
간단한 질문과 답변으로 심리검사 중에는 같거나 비슷한 질문을 반복해 출제하는 경우가 꽤 많다. 검사를 받는 입장에서는 귀찮지만, 인위적인 답변을 걸러내고 속마음을 헤쳐보기 위함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나 보다.
마치?저는 마치를 남용하는 듯해요 별로 안 비슷함
…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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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여러 것들과 마찬가지로 진실은 고체보다는 액체 액체보다는 기체라며“어쨌든 진실이 고체라면 곤란하잖아요. 딱딱하기도 하고 부서지기도 하니까. 거기 딱 있는 것 같고. 부수고 싶고.” (p.52)
우리는 진실에 너무 집착하며 사나보다
당시 저 말이 인상 깊었나 본데 안타깝게도 진실의 한자는 참 열매를 의미한다. 기체보다는 액체, 액체보다는 고체에 가까운. 아니 반박할 수 없이 고체인. 하지만 얼마든지 성장하고 썩어 드는, 변모가능한 고체라는 점에서는 액체나 기체의 성질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딱딱하고, 부서질지라도.
우리가 진실에 집착하며 사는 것은 여전히 맞다. 최근 읽은 책들이 다 진실함, 정직함, 솔직함에 관한 대목이 있어 내가 그릇된 삶을 사는 바람에 운명이 나를 이들에게로 이끈 것인가 돌아보던 참이었다. 하지만 진실에 집착하는 우리를 탓할 수는 없다. 붙들고 살 것이 필요한 만큼 이는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진실은 기체보다는 액체, 액체보다는 고체가 나을지도 모르겠다. 기체를 붙들고 살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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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읽으며 깨달았는데 요즘 너무 필요에 의해 읽는 책이 많아서…도 아니고 필요에 의해서만 책을 읽고 있어서 책을 너무 급하게 읽게 된 것 같다 호로롤 읽는 습관이 들어버렸군 싫다 이 책도 이렇게 빨리 읽을 책이 아닌데
이 책에 관한 내용은 아니지만 많이들 공감할 내용인 듯해 가져와 보았다. 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 할 책이 따로 있었고, 읽고 싶던 책도 읽어야 할 책으로 변하는 순간 흥미가 떨어졌다. 올 상반기 내내 나를 괴롭히던 이 문제는 하던 일을 얼추 마무리 지은 이번 달이 되어서야 해결됐다. 지금은 맘 편히 읽고 읽는 중. 하지만 아직 읽는 속도가 불필요하게 빠르다는 느낌은 떨치지 않는다. 회복기를 거치는 게 아닐까 싶을 뿐.
책을 읽고 리뷰를 쓰던 나와 지금 리뷰의 리뷰를 쓰는 나 사이에는 6개월가량의 공백이 있다. 책의 분위기만 내 머릿속에 남아있을 뿐 전체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도 한몫했겠지만, 내가 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음도 알 수 있다. 글쓴이도 나, 옮긴 이도 나, 게다가 블로그 글의 일부를 발췌하고 순서도 바꾸었기에 엮은이도 나이지만 세 사람이 다 같은 사람이냐 하면 아닐 수도 있겠다.
역자와 편집자는 원래 작가에 관한 이해도가 높아야 한다. 아마 나는 나에 관한 이해도가 가장 높은 사람. 그러니 나에 한해서는 가장 뛰어난 역자와 편집자가 되렷다.
[김지수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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