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수사가 그 수사가 아니었네 - 캐드펠 수사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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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이 되고 싶었다
원체 무언가를 파헤치는 콘텐츠를 너무도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명탐정 코난이라 답할 것이고 가장 좋아하는 미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CSI라고 답할 것이다.
셜록 홈즈를 읽으며 탐정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작은 단서와 단서를 모아 커다란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탐정이 너무도 멋있었다. 대개의 사건들은 피해자가 존재하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대신 그 사람의 말을 찾아 입 밖으로 꺼내주는 역할을 하는 탐정이 너무도 반짝이는 존재로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캐드펠 수사와는 초면이었다. 역사추리라는 장르 또한 생소했다. 나름 추리와 미스터리 등의 분야의 유명 인사는 대부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수사라니, 이름부터 너무도 탐정스럽다. 호기심과 설렘을 가지고, 캐드펠 수사 시리즈를 펼쳤다.
수사가 그 수사가 아니라니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수사가, 그 수사가 아니었다.
소설의 배경은 중세 수도원이다. 그리고 캐드펠 수사는 수도원의 수도사이다. 그러니 여기서 수사는 수도사의 수사였던 것이다. 이때 1차적 충격을 받았더랬다.
그리고 2차 충격이 책을 펼치는 순간 찾아왔다. 수상스러운 지도를 보고만 것이다. 지도는 중세 웨일스를 그리고 있으며 소설은 중세 영국을 배경에 두고 있다. 따라서 독자는 당시의 지리와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사실이 초반에는 거부감으로 다가왔던 것이 사실이다. 추리 소설인데, 역사적인 배경을 알고 읽어야 한다는 사실이 난감하게 느껴졌다.
띠라서 고백하건대, 나는 이 책을 쉽게 펼치지 못했다. 하지만 띠지에 적힌 정세랑 작가의 추천글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매번 자신 있게 추천하는 역사추리소설. 이 놀라운 이야기에 대해 말할 때 한없이 행복하다."
나도 저 기분을 안다. 너무도 매력적인 콘텐츠를 만났을 때, 누구를 만나든지 입이 달싹거리는 그 기분을 너무도 잘 이해하고 있다. 한없이 행복하다는 표현을 쓸 정도의 책이라면, 결심을 해봐도 좋겠다고 결심했다.
총 5권의 캐드펠 수사 시리즈
사실 이번에 접한 5권의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2024년이 초판이 아니다. 총 21권에 달하는 대장정은 지난 1997년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다. 집필 기간만 18년.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저자 엘리스 피터스는 고등학교 졸업 후 덜리 지역 약국에서 조수로 일했던 경험과 제2차 세계대전 중 해군으로 참전했던 경험을 자신의 대작에 담았다.
따라서 주인공 캐드펠 수사는 수도사이면서, 십자군 전쟁에 참여했던 이력을 가진 군인이자 약제학 전문가로 등장한다. 허브 밭을 가꾸며 평화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그의 앞에 사건들이 펼쳐진다. 수사이면서 동시에 탐정의 역할을 수행하는 캐드펠의 매력적인 사건 해결 과정이 매 권마다 담겨있다.
이번에 출간된 개정판은 아직 5권까지만 판매가 되고 있다. 이후 6권부터 21권은 순차적으로 출간될 예정.
각 권의 주요 내용
5권의 시리즈 모두 개성 넘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의 놀라운 상상력과 치밀한 구성, 대단한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짜임새 있게 엮인 이야기들은 느슨한 연결고리를 가진다. 따라서 꼭 1권부터 차근히 읽어가지 않아도 나름대로 각각의 맛을 음미할 수 있다. 다음은 5권의 시리즈마다의 주요 내용이다.
1권 -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
1137년,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 평화롭게 허브 밭을 가꾸며 신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캐드펠 수사에게 귀더린의 성녀 위니프리드의 유골을 가져오라는 임무가 부여된다. 부수도원장을 위시해 귀더린으로 떠난 수사들은 귀더린 주민들의 격렬한 반발에 맞닥뜨리고, 급기야 반대파를 대표하던 영주가 화살에 맞아 비참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2권 - 시체 한 구가 더 있다
스티븐 왕과 모드 황후 간에 왕위를 둘러싼 혈전이 벌어지던 1138년의 잉글랜드. 전쟁의 피비린내와 매캐한 연기는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에도 음산하게 내려앉는다. 아흔네 명의 포로가 처형당한 끔찍한 밤이 지나고, 시신의 수습을 위해 파견된 캐드펠 수사는 시신이 한 구 더 있는 것을 발견하는데……. 미지의 시신을 둘러싼 진실, 그리고 공포와 의심, 협잡 속에 피어난 아름다운 사랑.
3권 - 수도사의 두건
전 재산을 기탁하고 안락한 노후를 보내겠다고 수도원에 찾아온 한 영주가 독살을 당한다. 그리고 범행에 쓰인 독극물은 캐드펠 수사가 '수도사의 두건'이라는 풀로 제조한 맹독성 약물임이 밝혀진다. 이 사건의 진상을 밝혀야 하는 캐드펠 수사 앞에 피해자를 둘러싼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복잡한 가족사가 펼쳐지고, 그 한가운데에는 젊은 날 캐드펠 수사의 연인이었던 한 여자가 서 있다.
4권 - 성 베드로 축일
내전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슈루즈베리에서 성 베드로 축일장이 열린다. 축일장의 수익 배분을 두고 수도원과 시민들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는 가운데, 각지에서 내로라하는 장사꾼들과 구경꾼들로 오랜만에 활기를 띤 슈루즈베리. 삼 일간의 축일장을 준비하던 중 한 거상이 알몸으로 단검에 찔려 죽는 사건이 벌어지고, 피해자의 아름다운 조카딸과 캐드펠 수사는 진상을 밝히기 위해 영리한 게임을 시작한다.
5권 - 세인트자일스의 나환자
오만한 늙은 남작과 어린 고아 상속녀의 결혼 행렬이 수도원을 찾는다. 이 행렬을 지켜보는 의미심장한 눈빛들 속에서 캐드펠 수사는 기묘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혼례식 전날 밤 신랑이 처참하게 살해당하고, 현장에서는 누군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덫이 발견되는데…….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던 캐드펠 수사는 진정한 안식을 찾아 고행의 여정을 수행하는 한 늙은 영혼의 마지막 결투를 목격한다.
역사추리소설의 매력을 느끼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를 읽으며 처음 첩한 역사추리소설이라는 장르. 개인적인 이슈(?)로 시작이 쉽진 않았으나, 막상 독서에 빠져들기 시작하며 너무도 흥미로운 시간을 보냈다. 아무리 역사라는 옷을 입고 있다 하더라도 추리소설은 추리소설이다. 추리소설이 주는 짜릿함을 캐드펠 수사 시리즈에서도 똑같이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적인 배경이 주는 묘한 위화감도 시리즈를 읽으며 느낀 부분이었다. 사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듯한 기분이 든다고 해야 하나? 실제 당시에 탐정 역할을 수행하는 수사가 살았던 것은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하게 만든다. 이는 저자의 대단한 필력 덕분이겠지.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결국은 잘 쓰인 소설을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장르가 어찌 되었든 간에 좋은 책을 읽었다는 감각은 언제나 뿌듯함을 준다. 정세랑 작가도 이런 기분이었던 걸까?
물론 5권의 시리즈를 전부 탐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중 한 권이라도, 흥미가 생기는 이야기가 있다면 시간을 내어 읽어보길 권한다. 저자의 고심이 담긴 시리즈인 만큼, 촘촘한 소설이었다. 잘 짜인, 잘 쓰인 소설책이 필요한 순간에 캐드펠 수사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규리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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