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스포츠도 문화예술이 될 수 있다. - G-SHOW : THE LUNA
-
피겨 스케이팅은 스케이팅과 발레, 사교댄스를 결합하여 생긴 종목이다. 그래서 전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의 쇼를 볼 때마다 피겨는 ‘예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재적인 음악해석에서 비롯된 연기, 음악과 하나 되었던 몸짓과 손짓 여기에 조화로운 퍼포먼스까지 영락없이 ‘예술’ 장르였다. 하지만 예술이라는 생각은 금세 저 멀리 사라져 버렸다. 올림픽을 할 때만 피겨 스케이팅을 접하다 보니, 스포츠의 한 종목이라는 생각이 너무 강해서였다. 그래서 중계를 들으며 스핀, 더블악셀 등의 난이도와 완성도에 더 집중하며 봤다. 점수가 어떻게 나올지 조마조마했다. 그렇게 예술로 온전히 향유하기보다는 다른 올림픽 종목을 볼 때와 같은 시선으로 봤었다.
그때의 아쉬움을 달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걸까. 뮤지컬 아이스쇼를 보기 전 내 마음은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이번에는 온전히 예술로써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공연은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진행됐다. 공연장 밖에는 매점과 포토존이 있었다. 가장 눈에 들어왔던 건 ‘인물관계도’와 ‘루나아일랜드 맵’이었다. 인물관계도는 공연 소개를 통해 이미 봤지만, 현장에서 보는 건 또 달랐다. 루나아일랜드 맵에는 극 중에 등장하는 루나 아일랜드에 무엇이 있는지 소개되어 있었다. 인물관계도와 루나아일랜드 맵이 현장에 있으니 관람 직전에 체크하기 좋았다. 덕분에 작품을 더 잘 이해하면서 관람할 수 있었다. 학창 시절, 시험 직전에 본 부분이 가장 기억이 잘 났던 그런 효과와 흡사했다.
아무리 팸플릿이 있다고 해도 공연 전에 완독하기엔 쉽지 않다. 평소 공연들을 볼 때마다 주위를 관찰해보면 시작 전에 팸플릿을 챙기거나, 챙기더라도 세세히 보는 사람은 드물었다. 나조차도 팸플릿을 다 보고 공연을 본 횟수가 매우 적다. 다 보기에는 시간이 부족한 이유도 있었고, 빈 무대와 관객을 쭉 훑어보느라 정신이 없기도 했다. 더구나 일행과 함께 오면, 옆에서 가만히 팸플릿만 들여다보기엔 좀 어려운 부분도 있다.
이번처럼 다른 곳에서도 공연장 안으로 향하는 동선에 현수막으로 한눈에 보고, 이해하기 쉽게 마련한다면,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확인하면서 작품을 더욱 잘 흡수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본다. 다른 공연들도 이 방법을 적극 활용하길 바라면서 공연장 안으로 들어갔다.
공연장에서는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래도 걱정했던 것만큼 춥진 않았다. 나는 땀을 식히고 나면 금세 에어컨 바람에 추워하는 사람이라 얇은 외투를 입고 있었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따로 외투를 걸치지 않은 관객이 꽤 많았다. 일행도 시원하기만 하다고 했다.
알고 보니 초연과 재연에서 관객이 너무 낮은 온도에 불편해했던 부분을 절충하여 특수기술을 이용했다고 한다. 그래서 빙판 위로만 찬 기운이 올라와서 관객이 좀 더 쾌적한 환경에서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아이스링크는 뮤지컬 무대로 완벽히 새로 태어났다. 무대 바닥이 빙판이라는 점만 다를 뿐, 조명, 소품, 미디어 활용 등 여느 뮤지컬 무대와 같았다.
이 G-SHOW는 국내 최초 창작 아이스쇼로 2022년 강릉에서 초연을 했고, 2023년 목동에서 재연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그리고 올해, 뮤지컬과 콜라보레이션하여 국내 최초 뮤지컬 아이스쇼로 돌아왔다.
G-SHOW의 특성상 어린이 관객이 많아서 ‘THE LUNA’ 스토리는 어린이도 쉽게 볼 수 있는 단순한 구조의 스토리였다. 그러나 스토리에 담긴 메시지는 깊이가 있어서 어른이 보기에도 손색없었다. 여기에 퍼포먼스와 중독성 있는 뮤지컬 넘버로 눈과 귀가 즐겁고, 시원하게 볼 수 있어 여름 공연으로 제격이었다. 특히 뮤지컬 넘버는 귀에 쏙쏙 들어오는 멜로디라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흥얼거렸다.
뮤지컬과 피겨 스케이팅의 만남인 만큼, 전 국가대표 선수 출신 스케이터 8명과 현역 뮤지컬배우 8명이 함께했다. 나는 스케이터 안소현, 정지윤, 김예리, 고순정, 유인서, 노채은 그리고 뮤지컬배우 김준식, 권민수, 곽영철, 홍혜린, 노주현, 황성준이 나오는 타임으로 봤다.
뮤지컬배우도 스케이트를 타고, 스케이터도 노래하고 연기하는 모습을 보며 트렌드에 맞는 공연이라고 생각했다. 요즘 N잡이 대세인 만큼 출연진들은 자신의 분야를 넘어서서 도전하고, 노력한 흔적을 성공적으로 보여줬다. 자세히 보면 차이가 드러나길 했지만, 한눈에 보면 누가 스케이터이고, 뮤지컬 배우인지 가늠이 안 될 정도였다. 공연을 보면서 출연진들의 노력과 열정이 느껴져서 괜스레 가슴이 벅차올랐다. 다른 관객들도 숨죽여 관람하던 걸 보면, 나만 느낀 게 아닌 듯했다.
‘G-SHOW : THE LUNA’는 신비의 섬 루나 아일랜드에서 펼쳐지는 이야기가 담긴 작품이다. 기후 변화로 여름과 겨울만 남은 먼 미래가 배경이었다. 스케이트를 타고 다닐 정도로 바다가 꽁꽁 어는 겨울이 되면, 딱 한 달 동안 루나 아일랜드가 문을 연다.
먼 미래라는 설정으로 아이스 쇼라서가 아니라, 미래라서 스케이트를 신은 것처럼 느껴졌다. 한편으론 현실의 우리 미래를 미리 보는듯한 느낌도 들었다.
한편, 루나 아일랜드에서는 노르말리스를 지켜 줄 루나를 선발하는 루나 페스티벌이 열린다. 여기서 노르말리스는 루나 아일랜드에만 있는 봄과 가을이 공존하는 생명의 나무다. 시민들에게 이 나무는 환상이자 기적의 존재이다.
루나 페스티벌이 10주년을 맞이하여, 더욱 특별한 10대 루나를 선발하는 데다 특권과 명예까지 주어져서 페스티벌에는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거기서 어릴 적 친구 사이였던 가람과 윈터가 우연히 마주친다. 윈터는 말없이 떠난 가람에게 서운한 감정을 갖고 있던 터라 매몰차게 대하지만, 가람의 정성과 노력으로 둘은 예전처럼 가까워진다. 그리고 두 사람은 친구가 아닌 이성의 감정이 싹트게 된다.
한편, 윈터는 루나 아일랜드의 회장 아버지의 딸이기에 늘 솔직할 수 없었다. 그로 인해 친한 친구 썸머와 사이도 멀어졌다. 어느 날, 윈터는 썸머에게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고, 이에 썸머는 마음이 풀리려는 듯 서운했던 감정을 쏟아낸다. 그리고 윈터가 몰랐던 오해도 알게 되면서 해명한다. 윈터의 진심 어린 사과와 정직한 해명에 서운했던 마음과 오해가 풀린다. 그 계기로 둘은 전보다 더 깊은 친구사이가 된다.
가람은 윈터에게 루나 아일랜드가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노르말리스의 생명력은 점점 끝을 향해 가고 있고, 루나아일랜드의 회장이자 윈터의 아버지인 아틀라스는 루나 아일랜드를 없애고 우주 정거장으로 만들 계획이라는 말을 듣는다. 가람은 자신이 루나에 선발되어 꼭 루나 아일랜드를 지키겠다고 다짐한다. 알고 보니 가람은 아틀라스와 함께 루나 아일랜드를 세운 박사의 아들이며, 노르말리스와의 어릴 적 추억을 간직한 인물이었다. 가람에게 루나 아일랜드는 꼭 지켜야만 하는 존재였다.
가람은 루나 아일랜드를 지킬 방법을 고민한다. 그러다 방법을 생각해 낸 가람은 윈터에게 도움을 청하고, 윈터는 처음에는 가망 없다고 거절하지만, 가람의 설득 끝에 도와주기로 한다.
루나 페스티벌이 열리는 날, 가람과 힘을 합친 윈터는 증거를 내세우며 아틀라스의 계략을 시민들에게 폭로한다. 동시에 루나를 했던 사람들의 진심 어린 인터뷰 영상이 재생된다. 그리고 가람은 노르말리스가 죽는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 다시 새로 태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결국 아틀라스는 물러서고, 가람과 윈터는 루나 아일랜드를 지키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10대 루나에 가람이 선발된다.
세월이 흐른 후, 루나 아일랜드는 딱 한 달이 아닌, 매일 열려 있는 걸로 바뀌었으며 모든 시민이 언제든 누릴 수 있는 섬이 되었다. 이는 10대 루나인 가람의 뜻에 의해 바뀐 것 같았다. 가람은 리리와 양양의 고향에서 새로운 노르말리스를 루나 아일랜드에 가져왔다. 윈터와 썸머는 가람을 도와 서툴지만, 열심히 루나 아일랜드를 가꿔 나갔다.
작은 나무였던 노르말리스는 가람의 애정과 정성 덕에 무럭무럭 자랐고, 다시 봄과 가을이 공존하는 나무가 되었다. 이를 화려한 조명, 꽃과 잎새가 바람에 흩날리는 영상으로 표현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공연을 보면서 그저 허구의 이야기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가 머지않아 맞닥뜨리게 될 실제 이야기 같았다. 지금도 점점 봄과 가을이 짧아지고 있다. 폭염이 기승을 부릴 정도로 살인적인 더위의 여름을 보내고 있고, 겨울은 살이 베이는 느낌이 들 정도로 춥다. 사태는 점점 심각해져서 해마다, ‘작년엔 이렇게 안 더웠던 것 같은데, 작년엔 이 정도로 안 추웠던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한다.
아틀라스의 대사에서 너희들이 생태계를 망치고 있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그 대목에서 정곡을 찔렸다. 우리는 편하다는 이유로 자연을 해치는 행동을 스스럼없이 한다. 지구온난화, 환경문제가 미디어에서도, 언론에서도 거론되고 있는데도 우리는 여전하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환경을 위해 사소한 부분부터 큰 부분까지 바꾸는 사람들처럼 실천하기는 어렵지만,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행동해야겠다. 적어도 죄책감 없이 환경을 해치는 행동을 했던 전과 달리 그런 행동에 조심성이 생길 거라고 본다.
소소하게 조금씩 실천도 해보려고 한다. 텀블러를 이용하는 횟수를 더 늘리고, 분리수거할 때 지금보다 더 신경 써야겠다.
사실 전부터 환경 관련 메시지가 담긴 작품을 여러 번 접했었다. 그때마다 여러 생각도 하고 다짐도 했지만, 실제로 행동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내가 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것들이고, 불편을 감수하기엔 자신이 없었다. 어쩌면 핑계를 대며 일단 회피했던 것 같기도 하다. 환경문제로 인해 겪는 불편함이 당장 피부로 와 닿는 게 없어서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회피의 시간은 충분히 가졌으니, 이제는 직면해야 할 타이밍이다.
거창하지 않아도 되니 작은 것부터 실천하면 된다. 모든 걸 실천하지 않아도 된다. 몇 가지만 실천하더라도 환경을 위한 길로 가고 있는 걸음이 될 테다. 실천하지 않는 순간도 있겠지만, 다시 시작하면 된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하는 게 핵심이다.
아틀라스의 말처럼 환경을 망치는 건 인간이며, 가람의 말처럼 환경을 다시 살릴 수 있는 것 또한 인간이다.
윈터가 서툴더라도 식물을 가꾸는 것처럼 우리도 서툴더라도 애정을 갖고 계속하면 된다. 우리는 적응도 잘하고, 대단한 힘을 가진 인간이니까.
*
글의 서론에서 피겨 스케이팅이 예술이 결합한 종목인 걸 알면서도 올림픽을 할 때마다 예술로 온전히 향유하지 못했다고 적었다. 그리고 이번 공연에서는 가능할 것 같다는 기대가 들었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기대 이상으로 예술로써 온전히 향유했다. 뮤지컬과 아이스쇼의 완벽한 콜라보레이션을 보여준 ‘THE LUNA’ 덕분이다.
‘THE LUNA’를 보는 동안, 콜라보레이션이 아니라 아이스쇼와 뮤지컬이 원래부터 하나인 것처럼 느껴졌다. 스케이팅 퍼포먼스를 볼 때는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프렌치 오리지널에서 봤던 퍼포먼스가 떠올랐다.
국내에서 뮤지컬 아이스쇼는 ‘THE LUNA’가 최초라는데, 이 기점으로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했으면 한다. 다른 작품들도 많이 나오고,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는 장르가 되길 바란다.
사실 이번처럼 피겨 스케이팅을 예술로써 온전히 향유하는 기회가 더 많아지길 바라는 개인적인 사심이 더 크다.
[강득라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