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완벽한 사랑이 어딨어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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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책의 결말이 담겨있습니다.
같은 아픔과 다른 사랑을 가진 세 사람이 모여 새로운 관계가 되고 슬픔을 치유하는 드라마. 김희진 작가의 장편소설 「두 방문객」을 읽었다. 배경은 청량한 여름날 부족할 것 없는 집이 가진 한 양평 별장, 등장인물은 주인공의 어머니와 아들 노릇을 하러 찾아왔다는 그의 친구이자 숨겨진 연인, 또 그의 여자친구지만 일방적인 사랑을 쏟고 있는 대외적 연인이다. 미스터리하면서도 묘한 관계 속에서 안정과 슬픔, 그리고 진실을 찾아가는 세 인물 사이를 읽어나가면서, 나는 그 누구보다 이 상실을 제공한 ‘상운’에게 원망이 아닌 깊은 연민을 느꼈다.
나는 왼손잡이다. 덕분에 어릴 적에는 밥 먹을 때마다 어른들에게 한 소리를 들었고, 때로는 나조차도 ‘평범하게’ 오른손으로 글씨를 쓰는 아이들이 부러워 오른손으로 글씨 연습을 하기도 했다. 지금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지만, 결국 어린 나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게 만들었던 ‘보통’이라는 건 이렇게 기준을 만들어 내고, 사람들을 이쪽저쪽으로 나눈다.
「두 방문객」의 요주 인물, 상운 또한 ‘보통’이라는 이상적이고도 허상적인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 자신을 보고 괴로워한다. 어느 봄날, 햇살 같은 설렘을 동성에게 느껴버린 그에게 찾아온 건 강박과 우울이다. 결벽에 가까운 완벽주의적 성향을 가진 그에게 있어서 본인의 성 정체성은 남들 앞에서 다른 ‘정상성’으로 덮어씌워야 할 어둠이었다.
왼손잡이인 것이야, 요즘 세상에 뭐 흠이고 숨길 것이겠냐만은, 상운이 가진 문제는 달랐다. 솔직해지는 것보다 완벽한 아들로 남지 못하는 무서움이 더 컸던 걸까. 혹은 자신의 정체성으로 인해 상처받을 주변이 겁났던 걸까. 그가 감내해야 했을 고백의 무게가 가늠이 가지 않았다. 원래 죄가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고백한다는 건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이다. 토해내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감정의 격류를 안에서 머금고 있는 일이란 불현듯 작동해 버리는 믹서기를 가슴에 품고 사는 거니까. 작은 소용돌이는 곧 주변의 모든 걸 휩쓸어 버렸을 테고, 그만큼 상운의 일상은 꼬여갔을 것이다.
자신을 숨긴 채 살아가야 한다는 건 대단한 불편이었다. 나는 그가, 얼마나 많은 부정과 거짓으로 사는지, 그 보통의 자세를 취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척’을 해야 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 김희진 「두 방문객」 129p.
정체성이란 본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더 괴로웠을지도 모른다. 태생이란 끝없는 자기애와 자기혐오를 유발하니까. 상운이 선택할 수 있었던 건, 본인의 마지막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랑을 알려준 사람에게 마지막 비밀의 해답을 남겨놓는 것이었다.
어떤 이들은 이 대목에서 차라리 이 용기로 주변에 솔직하게 알리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을 것이라 말할 것이다. 말 한마디 꺼낼 용기는 없지만 죽을 용기는 있다는 게 납득이 안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혼돈의 소용돌이를 겪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우울감에서 오는 죽음은 용기가 아니라 회피이자 도피다. 분명 본인의 선택이지만 지독하게 우울하면서도 자유로운, 슬픈 결말이다.
유독 그의 죽음이 더욱 슬프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사고사로 위장해 조금이나마 주변의 슬픔을 덜고자 했던 그의 배려와 제 사랑의 행복을 빌었던 그의 순정이 무엇보다도 찬란하게 빛나 보였기 때문이다.
모두들 자살은 이기적인 행위라 말하고는 한다. 과연 그는 이기적인가? 상운이 항우울제를 복용하면서까지 삶을 이어가고자 한 이유는 사랑이다. 그 사랑이 본인과 같을 수 없었기에 멀어져 주기까지 했다. 생각을 이어나가다 보니 나는 이기적이게도 상운이 그저 상운을 조금 더 사랑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어찌 됐든 이야기는 이상적으로 행복하게 끝을 맺었지만, 그렇지 않은 현실이 또 눈에 들어온다. 우리는 어떤 사랑을 하고 있는가, 우리가 하는 사랑은 보통의 사랑인가, 아니면 세기의 사랑인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인가. 또 내 주변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는가. 나는 어떤 비밀을 갖고 있고, 주변엔 어떤 비밀이 있을 것이며 또 어떤 관계가 있을까. 나는 나의 관계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
답이 없는 생각이 끊이지는 않았지만, 귀결되는 지점은 있었다. 적어도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나에게 있어서 굳이 무언가를 숨기고자 애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 그러려면 나부터 끊임없는 믿음을 주어야겠지. 그 또한 남이 솔직해지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임을 안다. 앞으로 현실의 모든 상운의 나날에 있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이 다름을 극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김민정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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