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너를 죽인 날
-
펑. 아니 팡인가? 빵빵한 풍선이 찢어지며 일순간에 공기가 폭발하는 듯한 굉음. 이 글은 쉽게 잊히지 않는 그 소리에서 시작하고 있다. 그 날 너의 시작은 어떠했을까. 나의 하루는 소설을 읽으며 시작됐다. 인간의 죄의식을 첨예하게 탐구했다고 알려진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우울하면서 훌륭한 이야기를 보면 으레 그러하듯, 외로움을 달랜 것 같은 후련함을 느끼며 책을 덮었다.
왜 그렇지 않은가. 이해받지 못할 세계를 쥐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는 입을 다무는 갖가지 방법을 터득한다. 입의 주인을 메마르게 하는 침묵은 외로움이 기세등등하게 증식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 외로워질 걸 알면서도 왜 말하지 않느냐. 말하지 않았을 때의 답답함보다 이해받지 못하는 쓸쓸함이 훨씬 우세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가닿지 못하는 말은 필히 공허한 소음이 되고, 침묵했을 때보다 훨씬 큰 허무함을 남긴다.
그러니까 이 묵비권의 의미는 나의 비밀, 즉 이상한 걸 알면서도 쉽사리 떼어낼 수 없는 나의 일부가 당신과 불화할 것이란 선고를 피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나만이 들어갈 수 있는 상상 속에 불가침의 진지를 구축하고 생존해 가기 위함이다. 어딘가는 무섭도록 잘 맞고, 어딘가는 치가 떨리도록 맞지 않는 당신과 함께하고 싶어서.
누군가가 꽁꽁 숨겨놓은 외로움의 근원에 다가가는 방법은 역시 꽁꽁 숨겨놓은 외로움을 먼저 털어놓는 것이다. 취약함을 녹이는 효과적이고 유일한 용매는 취약함밖에 없다. 나는 나쓰메 소세키의 어떤 취약함을 보았고, 자연히 나의 취약함도 보았다. 그런데.
사실 외로움의 뿌리를 알아도 당장 변하는 것은 없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한다. 모르는 자가 더 비참할까. 알면서도 바꿀 수 없는 자가 더 비참할까. 용기가 없거나 운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지식 그 자체는 무력함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결국 행동할 수 없는 이를 위로하는 건 누군가가 가공해 낸 취약함을 탐닉하고, 이따금 자신의 취약함을 전시하는 일뿐일 것이다. 이 소설은 그래서 나의 손에 쥐어졌는지도 모른다.
괜스레 마음이 답답해졌다. 구겨진 마음을 어르고 달래려 자전거 산책을 떠났다. 두 시간에 이천 원, 최고의 명상 기구 따릉이. 평상시에 즐기지 않는 방향의 하천 길을 따라 하염없이 페달을 밟았다. 오후의 열기가 가라앉은 저녁 공기, 쉬지 않고 스쳐 가는 적당한 강도의 바람, 은은히 퍼지는 나무 내음. 머리를 충만하게 채우기엔 더할 나위 없는 감각들이다. 아니, 텅 비우게 한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 같다. 하염없이 달리다 보니 어느새 지나간 한 시간. 배보다 배꼽이 큰 추가 요금을 내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되돌아가야 했다.
어, 달팽이인가? 강과 나무를 보느라 빳빳이 올라가 있던 고개는 왜인지 그 순간만큼은 내려가 있었다. 네 얼굴을 보려고 그랬던 걸까. 앞바퀴가 아슬아슬하게 너를 비껴갔을 때 너를 피할 수 있음에 안심했다. 뒷바퀴가 따라오는 찰나에 터져 나온 굉음. 검지 한마디만 한 너의 몸에서 난 소리라기엔 과장 없이 큰 소리. 직감적으로 알았으면서도 믿지 못했다.
페달 위의 발은 멈추지 않았다. 놀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싫었다. 너를 죽였다는 사실이. 또 미안했다. 너의 얼굴을 본 것 같아서. 가장은 무서웠다. 이렇게도 선명히 무언갈 죽일 힘이, 나에게 있다는 게. 이렇게도 쉽게 많은 것들을 죽여 왔다는 뜻이니까.
다시 돌아가 너를 찾았다. 으스러진 너. 또다시 밟히지 않게 길가의 풀숲에 너를 옮겼다. 오 분을 미안함에 떨다가 임박해진 반납 시간에 다시 페달을 밟았다. 너를 죽이고 내 삶은 다시 나아갔다. 돌아가는 길엔 다 듣지 못한 노래를 떠올리기도 했고, 급한 연락에 답장하기도 했으며 그중엔 웃음이 가득한 말풍선도 있었다.
인간의 죄는 그런 것 같다. 안타깝게 너를 죽이고 아무렇지 않게 나는 사람들 틈에 들어간다. 거기서 다시 웃고, 감탄하고, 울고, 짜증 내고, 우울해한다. 바뀐 것 없이, 똑같은 것들로 똑같이 삶을 채운다. 그렇게 서서히 너를 잊는다. 인간의 죄는 다 그런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조금이라도 달라지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글로써 너의 묘비를 지어주는 것밖에 없다. 이건 너의 자매 형제와 동료 동물들이 다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고, 인간이 살아가면서 자연히 짓게 되는 죄를 뜨끔하게 의식하려는 마음이다. 무엇보다 나의 죄를 용서받고 싶은 마음이다.
이 푸념이 그토록 거대한 일을 가능하게 할지는 확신할 수 없다. 다만 이것이 나의 죄의식을 들춤으로써 또 다른 이의 죄의식을 들추게 하는 연쇄작용이 되길 희망한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죄를 정직하게 마주하길 바란다. 아픈 속죄 속에서 끈끈한 용서와 따뜻한 웃음을 잉태하길 바란다. 죄인으로서 화합하길 바란다.
너의 죽음으로부터.
[정해영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