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턱 막힐 듯한 더위에, 눈살이 찌푸려지는 햇빛에, 온몸이 끈적해지는 습기에, 갑자기 몰려오는 소나기에 달리 저항하지 못하고 계획해 두었던 여러 여행을 미루게 된 지도 어언 한 달이 되어 간다.
언제쯤 이 여름이 끝날까 하고 남은 여름을 세어보다가 마음을 고쳐먹기로 한다.
여행이 뭐 별거인가.
컴퓨터 화면으로 세상 나들이를 가면 그게 여행 아닌가.
필자처럼 더위에, 햇빛에, 습기에, 소나기에 항복해 버린 이들을 위하여 특별히 방을 여행하는 법을 소개하려 한다.
사소한 변화에서 시작되는 사유
우리의 삶은 일상과 비일상으로 나눌 수 있다. 일상은 가장 평범하고 반복적인 생활을 의미한다. 그에 반해, 비일상은 일상에서 벗어나는 어떤 경험을 의미한다.
여행이 우리에게 큰 의미로 다가오는 것은 아마 반복되는 일상에서 특별한 비일상의 순간으로 전환을 시켜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일상의 공간인 방이 과연 여행의 공간으로서의 자질이 충분한 것인가 묻는다면 대답은 ‘yes’이다.
우리의 방은 필요한 것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책상, 의자, 침대, 컴퓨터, 무드 등 그리고 스피커 등 각자의 방에는 그 방 주인의 내재된 갈망과 취향이 드러난다.
필자의 방 또한 마찬가지다. 하얀색 책상과 그와는 상반된 큼지막한 검정색 모니터 두 대와 컴퓨터, 또한 아이보리색 침구가 놓인 원목 침대 그리고 그 위에는 무드 등과 거대한 거위 인형이 자리 잡고 있다.

이 3평짜리 조그마한 방은 쉬는 곳으로서 역할을 다 하기도 하지만 종종 방을 구성하는 어떤 요소를 선택하는지 그리고 어떤 분위기를 취하는지에 따라 다양한 시나리오가 펼쳐지곤 한다.
컴퓨터로 일을 할 때면 방은 곧 작업 공간이 되기도, 모니터와 스피커로 넷플릭스를 틀어놓을 때면 영화관이 되기도, 작은 책 한 권으로 도서관이 되기도, 카페나 심지어는 바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아주 일상적인 공간에서 하나의 작은 요소가 변화하기만 하더라도 방은 곧 다른 공간으로 변모한다. 불을 끄고 영화를 틀어놓는 것만으로 좋아하는 영화 포스터를 붙이거나 아주 간단하게는 이불을 바꾸는 등 사소한 변화로 방은 곧 사유의 공간이 되며 방에서는 여행이 시작된다.
일상에서 비일상 마주치기
삶은 일상과 비일상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이 구분은 흑과 백처럼 분명하고 또 뚜렷하지 않다. 아주 사소한 변화를 오래도록 관찰하고 감상하는 것에서 우리는 일상에서 비일상을 마주치고 그것이 곧 여행의 시작이 되기 때문이다.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는 사물이나 공간에 있는 것이 아닌 각자가 그 사물이나 공간을 향유하는 태도에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오늘 모두 한번 방을 여행해 보는 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