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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는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 〈해피 아워(2015)〉의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술에도 해피 아워가 존재할까? 해피 아워(Happy Hour)란 음식점이나 술집에서 맥주, 와인, 칵테일 등 주류를 할인하는 시간대이다. 보통 사람이 많이 몰리지 않는 시간대에 떨이처럼 판매하는 것이다. 왠지 모르게 이득을 본 기분으로 남들과 다른 본인만의 시간을 즐긴다는 점이 해피 아워의 매력일 것이다. 본 영화의 제목처럼 〈해피 아워〉는 짧은 순간이지만 잊을 수 없는 예술 경험으로 촉발된 나만의 행복한 시간을 선사한다.
우선 이 영화에 촬영 기법과 연출 등 대본을 전달하기 위한 표현한 방법론을 탐구하는 것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5시간 분량의 시나리오에 대한 궁금증이 전유되었고, 영화를 본 후의 각본의 힘이 나의 현실까지 닿았기에 영화가 주는 경험들이 이 글을 쓰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 인물과 관계, 배경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뤄보고자 한다.
'하마구치 류스케 즉흥 연기 워크숍 in Kobe'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들은 '사전제작(Pre-Production)'의 방식이 독특하기로 유명하다. 〈해피 아워(2015)〉의 경우 즉흥연기 워크숍에서 시작해 클라우드 펀딩으로 마무리되는 비전문가 인물들의 개입을 영화의 주된 흐름으로 채택했고, 〈드라이브 마이 카(2021)〉에서는 대본만 50번이 넘게 낭독하며 대사의 감정을 덜어내고 대사 자체의 언어적인 요소에 집중하게 했다.
2013년 9월 14일부터 2014년 7월 20일까지 고베 시내와 커뮤니티 센터에서 진행된 하마구치 류스케의 즉흥 연기 워크숍에서 캐스팅된 참여자들과 함께 촬영했다. 이때 주연배우들은 모두 비전문 배우였지만 모집공고문에는 확고한 방향을 담아 선정한 것을 알 수 있다.
"이 워크숍의 가장 큰 기둥은 "듣는" 것입니다. (...) 이것은 제가 2년간 도호쿠 지방에서 계속한 지진 체험 청취에서 얻은 실감입니다. 이 경험을 “연기”라는 원래의 관심사와 결합하고자 합니다.이 워크숍의 주요 목적은 “듣는” 것이 어떻게 연기 표현의 즉흥적 발현을 돕는지 탐구하는 것입니다. 이 워크숍에서는 저를 포함한 모든 참가자가 무엇보다도 “듣는” 것의 전문가가 되는 것, 혹은 그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 요구됩니다. (...) 요구되는 것은 단지, 커뮤니케이션의 의지, 타인에 대한 관심, 그리고 언젠가는 카메라나 관객 앞에 서기 위한 약간의 각오뿐입니다."- KIITO 워크숍 페이지 : 하마구치 류스케 즉흥 연기 워크숍 in Kobe 참가자 모집!
앞선 취지에 따르면 관객들 또한 배우가 된다. 영화와 실제의 구분선을 옅게 엮어나가며 허구의 각본을 일상에 침범시킨다. 실제로 감독이 경험한 '동일본 대지진'의 청취에 대한 내러티브가 우카이의 워크숍 시퀀스에서 동일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남을 배려한다고 내 몸을 너무 작게 잡으면 자신이 중심을 잃고 넘어질 수 있어요."
영화의 배경은 37살의 네 명의 친구 아카리, 사쿠라코, 후미, 준의 오래된 친구 관계를 바탕으로 진행되며, 이혼, 불륜 등의 부부간의 문제가 표면적으로 드러난다. 하지만 관람객의 연령대는 그 문제와 아직 잘 와닿지 않을 수 있는 20대가 35%를 차지하며 가장 높았다(2023.12.22 CGV 기준).
이 부조화스러운 통계는 하마구치 류스케의 젊은 거장이라는 타이틀이 어느 정도 관여한 지점도 있겠지만, 필자가 느낀 바와 같이 관계에 있어 나이와 연륜 상관없이 많은 생각을 던져주는 장면의 대사가 깊이 있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것의 예시 중 하나가 우카이의 '중심이란 무엇인가'라는 신체 워크숍이다. 의자의 중심을 찾아 한 방향으로 세우기도 하며, 몸을 풀고 2명 혹은 3명씩 짝을 지어 계속 타인들과 신체를 맞닿고 공유하는 경험을 진행한다. 처음에는 두 명이 등을 맞대고 함께 일어난다. 다음엔 세 명이 함께, 다음은 다섯 명씩, 점점 등과 밀착되는 범위가 줄어들며 균형을 잃고 쓰러지기도 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어깨를 작게 움츠린 여성 참가자에게 카메라의 초점을 두며 흘러나오는 우카이의 대사,
"남을 배려한다고 내 몸을 너무 작게 잡으면 자신이 중심을 잃고 넘어질 수 있어요."
이 대사는 동아시아권의 가정에서 자랐다면 무의식적으로 인식에 박혔을 '자비존인(自卑尊人)'의 교육을 상기시킨다. 특히나 일본의 특징적인 문화 중 하나인 '메이와쿠(迷惑)'는 남에게 민폐 끼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경향이 존재한다. 필수적인 부분에서까지 남보다 자신을 깎아내려 주체성을 상실하는 폐해를 낳기도 하는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에서조차 어려움을 겪는다.
자신의 욕망을 무시하고 꾹꾹 참아낸 결과, 오래도록 지속되었기에 영원할 것 같았던 관계는 단시간 내에 참아왔던 폭탄이 터지며 그 신뢰를 무너뜨린다. 자신을 설명할 언어를 찾지 못한 상태에서 부담이 계속 쌓이면 무의식중에 나타난 방어기제가 남을 상처 주는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결국 모두가 상처를 입으며 가해자이며 피해자가 되는 상황에 놓인다.
한 번의 워크숍, 한 번의 낭독회
〈해피 아워〉에서 특정 시간만 아주 길게 늘어지는 듯한 연출이 사용되는 두 부분이 있다. 바로 후미가 기획하는 우카이의 신체 워크숍과 후미의 남편이 기획하는 코즈에의 소설 낭독회가 그것이다. 두 명의 예술가가 펼치는 장면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인물들의 다른 이면을 끄집어내어 곪은 부분을 터치며 후반으로 갈수록 안정된 관계가 붕괴한다.
두 시퀀스는 후미 부부가 관여하는 예술 활동이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언어의 사용 유무이다. 우카이의 워크숍은 비언어적인 신체를 사용하여 동적인 참여자들의 활동을 보여준다면, 코즈에의 낭독회는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내려가며 비추는 정적인 표정들이 인상적이다. 자신의 중심을 나타낼 언어를 찾아가는 두 단계의 예술과 두 번의 뒤풀이가 준 변화로 네 명은 욕망을 마주하지만, 그로 인해 혼란을 겪게 된다.
결말에 남은 네 명과 연결된 인물들은 서로에게 솔직해졌을 때 만들었던, 무리가 무너졌고 각자 자기가 쓰러진 자리를 바라본다. 그저 무언가를 깊이 관조하며 담담하다.
예술 작품이나 퍼포먼스가 영화에 등장하면 마치 실제 전시회에 온 것처럼 잠깐 영화에서 벗어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영화가 관객의 현실로 들어오며 재연된다는 지점에서 비전문 배우에 대한 선택이 빛이 난다. 한마디로 작위적이지 않은 설정에 관객들이 감화되기 쉬우며, 그 지점을 활용하여 허구와 사실의 경계를 횡단하며 새로운 경험을 끌어낸다. 관객들은 이 경험을 토대로 눈에 새로운 렌즈를 달고 리코딩될 세상을 '해피 아워'에 흘려 내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