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관람을 넘은 소통의 공간 - 서울 일러스트레이션 페어 V.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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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일러스트레이션 페어(서일페)가 7월 4일(목)부터 7월 7일(일)까지 코엑스에서 개최되었다.
올해로 개최 10주년을 맞이하는 서일페는 해가 갈수록 점점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어, 올해도 행사장은 관람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아침 일찍부터 코엑스를 가득 채운 관람객들의 에너지에 나 역시도 떨리는 마음으로 행사장에 발을 내디뎠다.
넓은 홀 안에 빼곡히 들어차 있는 부스들을 보며, 이 많은 곳을 다 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섞인 걱정이 가장 먼저 들었다. 하지만 이내 그 생각은 기우였음을 알게 되었다. 밖에서 느꼈던 에너지보다 한층 더 강렬한 창작자들의 열정이 행사장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어, 그 힘을 받아 지치는 줄 모르고 다닐 수 있었던 까닭이다.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가 발달하며 창작자와 소통하는 일이 훨씬 쉬워진 요즘이다. 그럼에도 창작자와 면대면으로 눈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는 경험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본인의 작품에 대한 애정 어린 설명을 직접 듣고 나면 그 작품에 대한 관람객의 시선 역시 이전과 같을 수 없다. 한 번 더 바라보게 되고, 더 깊게 이해하고 싶어지고, 그 작품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혼잡한 공간 속에서의 일순간이지만 이와 같은 행사에서만 얻을 수 있는 값진 경험이다.
이러한 경험을 선사해 준 세 명의 작가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관람 초반에 방문했던 호박경 작가(인스타그램: @hobakkyeong)의 부스는 강렬하고 화려한 색감에 이끌리듯 찾아간 곳이었다. 역동적이면서도 독특한 캐릭터들도 인상 깊었다. 하지만 멋진 작품을 더욱 완벽하게 마무리해 준 것은 작품에 대해 조곤조곤 설명해 주던 창작자였다.
그는 태양을 상징하는 캐릭터와 보름달을 상징하는 캐릭터를 각각 알려주고, 두 캐릭터가 함께 춤을 추는 일러스트는 일식(Eclipse)을 의미한다고 얘기해주었다. 천문현상을 일러스트로 표현한 것도 신선했지만, 캐릭터에 대해 이해한 후 만난 그림은 마치 하나의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일러스트 안에 담긴 스토리텔링의 힘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임수현 작가(인스타그램: @merry_moogo)의 부스는 동화같이 몽환적인 분위기에 캐릭터도 오밀조밀하니 귀여웠지만 색감이 차분해서인지 한눈에 강하게 들어오는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애정 어린 설명을 듣고 나자 그 작은 부스 하나만으로도 하나의 전시를 본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었다.
특히 부스에서 만날 수 있었던 작은 아트북은 독특하고 신선한 구성으로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는데, 설명과 함께하니 캐릭터에 담긴 애정, 세계관에 어린 고민까지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창작자와 만날 수 있었기에 더욱 깊게 작품을 이해할 수 있었던 감동적인 경험이었다.
영화 포스터와 같은 감각적인 연출의 일러스트로 눈길을 끌었던 김나나 작가(인스타그램 @nana.illust0512)의 부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부스를 찾은 관람객에게 어떤 경험에서 이 일러스트가 비롯되었는지, 어떤 마음에서 그렸고, 자신은 이 일러스트의 어떤 부분을 좋아하는지 적극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작품 하나하나에 창작자의 마음이 어떤 식으로 반영되었는지 알 수 있는 기회가 적은 만큼, 일러스트를 통해 누군가와 소통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되어 더 인상적이었다.
서일페는 다양한 일러스트를 구경하고, 마음에 드는 일러스트를 찾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곳이다. 하지만 굳이, SNS로 작품을 구경하고 인터넷으로 구입도 할 수 있는 시대에, 더운 날씨와 기나긴 대기 줄, 많은 인파를 감수하고도 많은 이들이 서일페를 찾는 것은 여기에서만 얻을 수 있는 가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그 가치는 창작자와의 소통이었다. 그들의 열정을 느끼고, 그들의 애정이 담긴 작품에 공감하며 얻는 기쁨이었다.
이번 여름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서일페는 올겨울, 12월 26일(목)부터 12월 29일(일)까지 코엑스에서 다시 한번 개최될 예정이다. 일러스트를 사랑하고, 일러스트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모두가 서일페에서 만족스러운 경험을 할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무리한다.
[유지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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