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블루 재스민 - 과거를 붙잡을수록, 멀어지는 현재 [영화]

글 입력 2024.07.07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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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는 생각보다 우리에게서 많은 것을 앗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허라는 감정을 잘 관리해야 한다. 텅 빈 듯한 마음을 관리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일 수 있지만, 근원적이고 근본적인 텅 빔은 누구에게나, 언제든 존재한다.

 

<블루 재스민>의 재스민은 공허를 채울 대상을 끊임없이 타인에게서 찾고, 기대고 싶어 한다. 더불어 타인을 통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생활을 영위하며 사랑받는 삶을 원한다. 재스민의 삶 속에는 정작 본인은 없는 것이다. <블루 재스민>은 삶의 전반적 부분에서 자기 자신이 없는 사람이 무너지는 과정을 다룸과 동시에 세상은 생각보다 더 차가운 것이라는 냉소를 보낸다.


재스민의 공허는 끊임없이 과거를 반추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는 점에서 더욱 커져만 간다. 현재가 (재스민의 시선으로는) 별 볼 일 없이 공허하니, 과거를 신경안정제 삼아 끊임없이 복용하는 것이다. 어쩌면 재스민은 불안감이 치솟을 때마다 신경안정제를 털어 넣는 것보다 어떠한 기억이든 과거를 더듬는 것이 훨씬 마음을 편하게 했을지 모른다. 과거로 되돌아가 그 당시를 기억해 내기만 하면, 재스민은 오히려 자신의 실존적 문제와 근원적 공허를 마주하지 않을 수 있으니 말이다.

 

재스민의 행동은 일종의 도피 혹은 회피라 할 수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재스민은 아끼던 명품 옷과 가방을 잃은 채 멍하니 벤치에 앉아 과거를 더듬으며 중얼거리기만을 반복하는데 이는 그의 신세를 더욱 처량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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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스민과 재스민의 동생 진저를 통해 상반된 두 가지의 삶의 방식을 알 수 있는데, 진저는 재스민과 달리 평범한 삶을 살아가며 자신이 행복한 방법을 아는 인물이다. 하지만 재스민은 오히려 진저가 선택한 전남편과 현애인을 보며 ‘실패한 인생’, ‘루저’라 칭한다. 재력가인 남편의 돈으로 큰 저택에서 살며 사교계를 누비던 재스민의 눈엔 진저의 삶은 그저 구질구질해 보이기만 하다. 하지만 진저는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아빠의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일상의 행복을 누리는 것. 그저 그것뿐이다.

 

또한, 진저는 슈퍼마켓에서 일하며 책임감 있게 살아가고 있다. 진저는 본인의 삶에 책임을 다하며, 삶의 주도권 또한 타인에게 넘기지 않는다. 감정이 앞서 칠리와 소원해졌을 당시, 잠시 다른 남자에게 마음을 빼앗길 뻔하지만 그가 유부남이었다는 것을 알고 난 이후로 다시 칠리에게 돌아간다. 진저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면서도, 지속 가능한 행복을 판단할 줄 아는 것이다.

 

반대로 재스민은 자신의 계급적 위치와 경제적 부유를 높여주고 끌어줄 사람을 원한다. 재스민에게 사랑은 이러한 관계를 자연스럽게 연결할 도구인 것이다. 하지만 재스민은 이마저도 스스로를 속여가며 진정한 사랑이라는 착각 속에 빠져 살아간다. 이러한 허황한 욕망이 기저에 깔려 있으니, 자연스레 상대의 급에 맞는 사람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꾸며낼 수밖에 없다.


재스민은 사기를 통해 축적한 부로 호화로운 삶을 제공했던 전남편 할을 끊임없이 떠올린다. 아니, 할을 떠올렸다기보단 할이 준 호화로움을 그리워하는 것이 더 맞겠다. 하지만 할은 이제 없다. 재스민은 할의 사기 행각을 대부분 알고 있었지만, 그가 제공하는 것들을 잃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럼으로써 자연스럽게 재스민은 할의 사기 행위를 묵과하며 동조하지만, 할이 젊은 가정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말에 홧김에 그를 FBI에 신고해 버린다. 재스민은 이 모든 과정을 끊임없이 반추한다. 그렇게 그는 과거에 묶여버린 것이다.

 

재스민에게 현재는 없는 존재와 마찬가지이며, 풍족했던 과거의 비교 대상일 뿐이다. 하지만 진저는 현재를 살아간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재스민을 그토록 비참하게 그리고, 냉소한다는 느낌까지 드는 이유는 재스민이 평생에 걸쳐 무시했던 진저의 행복한 웃음소리와 대비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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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서 산다는 것은 나를 제대로 세우는 것과 같으며, 내 안의 공허를 채울 방법은 나만이 알 수 있다. 재스민은 그 방법을 탐구하지 않았고, 결국 현재를 놓아버린 채 과거에 살게 되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뭐 하는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호화롭고 반짝이는 것들은 사라지고 벤치에 멍하니 앉아 있는 나만 있을 뿐이니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현재를 살아야 한다. 현재에서 어려운 첫걸음이라도 내딛어야만 한다.

 

 

[이선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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