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모르는 아저씨가 되어버린 그 사람에게 [음악]

그리고 선택권을 가진 모든 자녀들에게
글 입력 2024.07.08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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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지 '16 fantasy' 앨범 커버

 

 

이영지의 새 앨범 '16 Fantasy'의 5번 트랙, '모르는 아저씨'의 MV가 공개됐다. 궁금증을 유발하는 무덤덤한 제목에서는 왠지 모를 체념이 묻어 나온다. 얼굴도 모르는 대중 앞에서 막연히 꺼내놓기에는 조금 두려운 이야기. 그래도 영지 소녀는 우리가 아는 그 모습으로 언제나처럼 당당하게 두 손 쫙 펴고 그 속에 담긴 것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래서 '모르는 아저씨'가 대체 누구냐면, 바로 영지의 아버지다. 이제는 생사조차 모르는 미지의 존재. 소리 없이 제 옆을 훌쩍 떠나버린 그를 영지는 이제 '모르는 아저씨'로 정의하기로 했다. 누군가는 이에 대해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아버지를 '모르는 아저씨'라고 말할 수 있냐고 하겠지만, 3분가량의 트랙에 담긴 영지의 진심은 전혀 반대의 모습을 띄고 있다. 딸이라서 전할 수 있는 이야기, 걱정, 위로, 그리고 마지막 인사. 영지가 이 곡에 들인 정성은 독보적이다.


 

 

누구보다 보고 싶었던 당신에게


 



 

내가 그립다고

그럼 어서 와 내게 말해 봐


아빠의 삶은 어때?

  

 

먼저 '모르는 아저씨'를 듣기 전, 이영지가 처음으로 아버지에 대해 털어놨던 '고등래퍼' 무대를 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러면 이 이야기가 단순히 뜬금없는 가정사 고백 이야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10대의 소녀에게 그는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돌아오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파에 띄워 전 세계로 퍼트릴 만큼. 돈, 명예, 그런 것 따위는 생각도 말고 그저 달려와 당신의 딸을 안아달라고 말했었다. 20살은 더 어릴 내가 당신이 지고 있었던 그 부담을 분담하겠다 말할 정도로 당차기도 했다. 당신은 지금 어디 있는지, 어떤 삶을 사는지 궁금했다. 거울 속 내 얼굴에는 여전히 당신의 얼굴이 남아있었으니. 

 

 


이제 모르는 아저씨가 된 당신에게 



 

 

담배라도 피워 떨쳐볼까

이 긴 긴 현실을

 

녹록지 않은 삶의 순간에도

내 얼굴엔 당신의 얼굴

 

 

그러나 사회의 일원이 되어 스스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긴 지금, 내 얼굴에 당신의 얼굴이 남아있어도 그것뿐이다. 이제는 너무 오래 지나버린 부재와 감정에 대고 더 이상 할 수 있는 말은 없다.

 

스스로 이 노래를 '긴 한숨 같은 노래'라고 말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까. 나 여전히 여기서 잘 살고 있다고 말은 하고 싶지만 굳이 어떻게 해서든 회신을 받고 싶지는 않다. 답이 없는 존재에 대고 하염없이 메아리만 치기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주변에 생겨버렸다. 담백하게 소주 한 병 들고 지금에서야 느끼는 솔직한 마음을 뱉어본다. 어느새 커버린 아이는 그 빈자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들여 버렸다고.

 


[크기변환][MV] 이영지 - 모르는 아저씨 (Live ver.) 3-19 screenshot.png
이영지 '모르는 아저씨' MV

 

 

외로운 웃음을 지으며

당연하다 말하던 당신께

 

마지막인 줄 알았으면 말해줄 걸

굳이 이러지 않아도 돼

 

 

그렇다고 그와 함께한 추억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여전히 아이는 그가 사준 정크푸드의 맛을 잊지 못할 것이다. 가끔은 생각이야 나겠지만, 딱 거기까지라고 말하는 듯하다. 고사리 같은 작은 손에 맛있는 것을 쥐여준 이유가 사랑인지 죄책감인지 알 수 없지만 그 감정을 받는 사람이자 주체로서 말하고 있다.

 

굳이 이러지 않아도 돼. 그게 그에 대한 영지의 선택이고, 영지의 진심이다.

 

 

 

[크기변환][MV] 이영지 - 모르는 아저씨 (Live ver.) 2-21 screenshot.png
이영지 '모르는 아저씨' MV

 

 

I don't blame you

피치 못할 이유가 있었겠지

 

난 아무것도 모른 채

멍하니 떨어진 조각을 바라보고만 있어

 

  

아버지란 존재는 어떤 존재인가. 더 나아가 부모란 자녀에게 어떤 존재인가. 가끔 생각해 보고는 한다. 무한한 사랑과 매정한 외면, 바로 앞에 있는 부모이기에 더 크게 와닿는 감정의 파동. 또 그들이 생각할 그들의 부모를 생각한다.

 

그들은 무엇을 받고 자랐을까 생각해 보고는 한다. 우리 엄마가 생각할 할머니에 대해서, 우리 아빠가 생각할 할아버지에 대해서. 그만큼 얼마나 다양한가, 내가 모르는 가족의 형태와 모습은. 나는 나의 엄마와 아빠를 내 삶 속에서 어떤 모양으로 만들어 내고 있는가 생각해 본다.

 

그 속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추억과 후회와 원망은 무엇보다 흔하지만 당연하지는 않은 것들이다. 바라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 모양들로만 남아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그렇지 못한 게 인생임을 안다. 당신들도 결국은 인간이기에 내가 알지 못하는 면도, 내가 납득하지 못하는 면도 있는 것을 안다.

 

 

 

[크기변환][MV] 이영지 - 모르는 아저씨 (Live ver.) 3-43 screenshot.png
이영지 '모르는 아저씨' MV

 

 

그걸 그대로 인정하고 한 발짝 바깥에서 바라보는 건 너무나도 괴롭고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래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고, 그래야 내가 숨을 쉴 공간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영지는 그렇게 숨 쉴 공간을 차근차근 만들어왔다. 영지의 삶에 있어서 아버지란 이름이 가지는 모양이란 이제 아무것도 아니다. 어느새 쌓아 올린 삶의 블럭이 너무 많아져서 이젠 잘 보이지 않는 밑바닥의 작은 틈. 그러나 절대 갈아끼울 수는 없는 근본의 모습.

 

영지는 그 형태에 대해 아무 생각을 가지지 않기로 했다. 또 그러면 어떤가. 그 위로 쌓아 올릴 사랑의 모습도 너무 다양해서 하나하나 살펴보기도 바쁜걸.

 

그리고 드러낸 이 진심은 수많은 이들에게 위로가 된다. 냉소적이라서 더욱 뭉클한 이야기. 누군가가 마음속의 응어리를 꺼내 보이는 것만으로도 또 다른 누군가는 위로를 받는 것처럼, 댓글 창은 영지를 응원하는 물결로 가득하다. 그것만으로도 영지는 만족할 것이라고 감히 예상해 본다.

 

마지막으로 영지는 똑같은 아픔을 공유한 자녀들에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지나가는 아픔에 희망찬 미래를 너무 많이 내어주지는 말자고. 결국 이 곡은, 영지 본인처럼 '선택권이 있는 모든 자녀들에게' 바치는 헌정곡이다.



[김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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