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피에르 베르제로부터, 반세기의 사랑을 담아. [도서]

피에르 베르제 - <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
글 입력 2024.07.08 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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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고 조그마한 책 속에 이렇게나 거대한 사랑이 들어있다는 사실은 실로 놀랍다. 우주의 한 톨 만큼이나 작고 연약한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믿음과 존경, 사랑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피에르 베르제가 그의 연인을 위해 써 내려간 1년간의 편지는 사랑이 도달할 수 있는 무한한 형태와 크기를 보여준다.

 

 

나는 당신에게 말을 건넵니다. 듣지도 대답하지도 않는 당신, 이곳에서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유일한 사람인 당신에게.


이제 곧 서로 헤어져야 하는데, 나로서는 그 방법을 모르겠군요. 왜냐하면 나는 당신을 떠나지 않을 테니까요…(중략). 그리고 언젠가 모로코의 종려나무 밑에서 우리가 다시 만나리라는 것도 말입니다. 당신을 보내며, 이브, 당신을 향한 찬탄과 깊은 존경과 나의 사랑을 전합니다.

 

2008년 6월 5일

 


이 책은 이브 생 로랑의 장례식에서 울려 퍼진 그의 사랑하는 애인, 피에르 베르제의 추도문으로 시작된다. 그들의 50년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듯한 추도문을 읽다 보면, 글을 담담하게 읽어나갈 피에르 베르제의 이름 모를 표정이 그려지는 듯하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위기의 순간, 이브의 영광의 순간까지 어제의 일인 듯 생생히 이야기하는 추도문 속에서 이브를 향한 그의 진실하고 깊은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이브의 장례식을 치른 2008년의 크리스마스, 피에르 베르제는 다시 한번 펜을 들고 그의 애인에게 편지를 쓴다. 피에르 베르제가 이브 생 로랑의 죽음 이후 1년간 쓴 편지는 (그의 말을 빌려) ‘ 읽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순정의 극치’이다. 고장 난 보일러처럼 도저히 적당한 온도를 맞출 수 없던 이브 생 로랑의 신경병 증세나 폭력성에 대해 써 내려가다가도, “그리고 나는 그런 너를 사랑했어.”라고 덧붙이고 말기 때문이다. 이브를 향한 피에르 베르제의 사랑은, 사랑하는 이의 결점마저 넓은 마음으로 전부 수용하는 숭고한 사랑의 표본이 아닐 리 없다.

 

피에르 베르제는 이렇게 이브를 향한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동시에, 이브와 함께 했던 50년을 되짚어본다. 함께 구매했던 수많은 예술작품과 부동산을 하나씩 처분하기 위해서이다. 그림 한 점에 담긴 슬픔, 한 건축물과 정원에 담긴 뜨거운 열정을 고스란히 편지에 담으며 이브가 자신과 함께 두고 떠난 사랑의 증표들을 청산한다. 이브가 떠난 뒤, 피에르 베르제는 '이런'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너 없이는 모든 것이 의미 없어.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되어 기쁘다.

 

2009년 2월 1일 

 

 

사랑하다 못해 신체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 것만 같은 연인을 '영원한 여행의 길'로 떠나보내는 이의 기분이 어떨지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브의 손길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작품들과 집을 하나씩 처분하며 이브에게 편지를 쓴 것은 피에르 베르제의 ‘현명한 이별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절대 읽히지 않을 편지를 쓰는 것은 오직 ‘편지를 쓰는 이’를 위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가 고독하고 비밀스럽게 써 내려간 일 년간의 편지는, 이브 생 로랑을 사랑했던 피에르 베르제 자신에게 보내는 보내는 위로의 편지이다. 이제 이 파란 지구에서 이브의 사랑스러운 숨소리를 들을 수 없지만, 자신과 50년 간의 매혹적인 모험을 함께 했던 애인, 이브 생 로랑이 분명하게 존재했다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한 기록.

 

이 책에 담긴 편지의 수신인은 사랑하는 이브이자, 피에르 베르제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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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마지막 편지이지만 결별의 편지는 아니야. 어느 날 다시 너에게 글을 쓰게 될지 누가 알겠어? 우리는 헤어지지 않아. 무슨 일이 닥치더라도,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너를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아.

 

2009년 8월 14일 

 


피에르 베르제는 자신의 말처럼 그의 사망 전까지 이브 생 로랑에게 편지를 쓰는 것을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에게도 읽히지 않을 은밀한 마음 속의 편지를 몇 번이고 써 내려갔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반세기를 함께한 연인의 흔적은 타투처럼 몸에 남아 결코 사라지지 않을테니까. 그가 마지막 편지에서 조금 인용한 엘뤼아르의 시, <자유>처럼 말이다.

 

*

  

내가 읽은 모든 페이지 위에

모든 백지 위에

돌과 피와 종이와 재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반짝이는 모든 것 위에

여러 빛깔의 종들 위에

구체적인 진실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내 문의 발판 위에

낯익은 물건 위에

축복받은 불의 흐름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그 한 마디 말의 힘으로

나는 내 삶을 다시 시작한다

나는 태어났다 너를 알기 위해서

너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서. 

 

 

[김다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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