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분명 여름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문화 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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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새 계절이 한 바퀴 돌아 여름이 왔다.
나는 여름을 좋아하지 않는다. 숨이 턱 막히는 더위, 마치 어항 속에 있는 듯한 습도와 밤잠을 방해하는 모기 등 여름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항상 여름이 싫은 나만의 이유를 추가해 나가다가 문득 점점 길어져 가는 이 여름을 그저 꾹 참고 지나가기에는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여름이 가진 매력을 나만 느끼지 못하고 지나쳤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여름만이 가지고 있는 "여름적" 특징을 정리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각자 즐기는 하루의 시간대가 다르다고 하지만 나는 해가 떠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특히 세상이 다시 색을 찾아가고 나름의 고요함을 유지하고 있는 아침 시간이 좋아한다. 여름이 그 "아침"의 시간이 가장 긴 계절이다. 사계절 중 가장 이른 시간부터 해를 떠올리고 가장 늦은 시간에 해를 감춘다. 여름은 밝지만 조용한 아침의 여유로움을 오래 간직한 매력 있는 계절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여름은 맥주를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계절이다. 맥주는 온도가 가장 중요한 술이다. 차가울수록 첫 맥주 한 모금의 전율은 강렬해진다. 등줄기에 땀이 흐를 만큼의 더위와 머리가 깨질 듯 차가운 맥주의 완벽한 대비는 언제나 기분이 좋다. 풀벌레가 우는 여름밤에 대충 걸터앉아 기울이는 편의점 맥주만큼 완벽한 것이 또 있을까!
여름이 맛있는 건, 맥주뿐이 아니다. 여름을 좋아하지 않았으면서도 여름이 기대되었던 것은, 한껏 당이 오른 여름의 제철 과일 덕분이었다. 수박 한 통을 열심히 깍둑썰어 크나큰 통에 이리저리 굴려 넣어 보는 수박 테트리스가 성공적으로 끝났을 때 한 조각 꺼내 먹는 묘한 쾌감이 있다.
마지막으로, 여름 한낮에 내리는 소나기를 좋아한다. 천장에 굵게 부딪히는 소나기 소리를 좋아한다. 소나기가 지나간 뒤에 올라오는 흙 내음을 좋아한다. 초록 잎에 맺혀 반짝이는 물방울을 좋아한다.
생각해 보면 여름은 좋아할 만한 것투성이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적고 보니 여름은 참 매력적이다.
무언가를 싫어하고 또 좋아하는 데에 이유는 별로 거창하지 않다. 이왕이면 주변의 것들을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렇게 무언가를 사랑할 법한 이유를 찾다 보면 언젠가는 정말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
비단 여름뿐만은 아닐 것이다.
[최지원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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