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2024 함안낙화놀이에 다녀오다 [문화 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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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하단에 작게 위치한 지역, 함안은 아라가야의 유서 깊은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간직한 고장이다. 함안 낙화놀이는 숯가루를 이용해 만든 낙화 봉을 매달고 불을 붙여 놀던 전통 불꽃놀이다. 조선 시대 선조 때 함안 군수로 부임한 한강 정구가 군민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매월 사월 초파일 개최했다고 전해진다.
출처 : 함안군청
특히, 그 고유성을 인정받아 2008년 경상남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낙화 봉 제조법은 2013년 특허로 등록되었으며 참나무 숯가루를 광목 한지에 싸서 만든 낙화 봉 수천 개에 하나하나 불을 붙이면 바람에 흩날리는 불꽃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약 세 시간 정도 떨어지는 불꽃이 한 폭의 그림 같아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명장면으로 손꼽히고 있다.
흩어지는 불꽃의 열기를 선선하게 느꼈던 축제. ‘2024 함안낙화놀이’를 소개한다.
함안 낙화놀이, 그곳으로 향하다
함안 낙화놀이를 즐기기 위해, 먼 길을 떠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교통수단이었다. 경상남도 남단까지 어떻게 닿을 것인가? 면허는 있지만 자차를 보유하고 있지 않았고, 장시간의 운전을 할 수 있는 여건도 안 됐다. 그래서 선택한 고속철도에는, 서울에서 함안까지 향하는 새마을호 차편이 단 2편이 있었다. 심지어 하나는 9시 출발해 14시 도착, 다른 하나는 19시 출발해 다음날 오전 12시에 도착하는 편이다. 선택지는 오직 단 1편. 국내에서 기차를 다섯 시간이나 탄 적이 없어 느껴진 당황스러움도 잠시. 이럴 때 아니면 언제 5시간 기차여행을 해보겠냐며, 호기롭게 아침 차편에 몸을 실었다.
고소하게 익은 달걀을 까먹으며 글을 쓰다 보니, 언젠가 귀로 듣기만 했던 낙동강을 지나쳤다. 곧이어 서울에선 보지 못했던 넓은 평야가 푸릇하게 눈동자에 비쳤다. 그렇게 창밖 풍경에 시선을 둔 채 밀려오는 나른한 생각에 서서히 잠길 때쯤. 기차는 함안역에 정차했다.
이곳은 벌써 여름인가, 기차에서 내려 플랫폼으로 발을 딛자 뜨거운 공기가 빈틈없이 차올랐다. 왜 이제야 왔냐며 밀린 반가움을 쏟아내는 듯했다. 처음 만난 지역에서의 인사가 부담스럽지 않게 느껴졌던 건 왜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다 그 답을 찾았다. 함안역을 빠져나오자 보이는 시야였다. 꼬옥 품었지만, 한참은 여유 있는 넉넉함. 광활한 논과 밭이 함안역 앞에 가득 수놓아져 있었다. 그 앞으로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축제가 열리는 무진정을 향해 줄을 지어 걸어가고 있었다. 삼삼오오 무리 지어 걷는 모습들 그 사이에서, 꼭 학창 시절 수학여행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낙하의 아름다움
축제가 진행되는 ‘무진정’에 도착해 준비된 국악 공연을 즐기다 보니 조금씩 해가 지고 있었다. 본격적인 함안 낙화놀이가 시작을 알렸다. 하얀 옷을 입은 축제 관계자분들이 낙화 봉을 조심스럽게 달았다. 불꽃이 봉을 태우기 시작하자, 파즈즈 소리와 함께 전율이 일었다. 태양을 빤히 쳐다보다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남는 잔상처럼, 그 빛들도 내 까만 눈동자 안에 담기는 오롯한 잔상이 됐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잔상 외 배경이 까마득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때 집중하게 되는 것은 가느다란 불꽃의 움직임이다.
주홍빛 선을 꼬리처럼 매달고 움직이는 불꽃 하나가 또 다른 불꽃을 만난다. 아름다운 춤처럼, 한껏 나선형을 그리며 부드러운 궤적을 나누다가 중력에 이끌려 무진정의 호수로 낙하한다. 또 다시 파즈즈하며 차갑게 식은 불꽃은 사라졌지만, 직접 마주했던 잔상은 분명하게 남아, 아름다움을 가히 설명할 수 없을 만큼 황홀했다.
특히, ‘낙화 봉에 불을 붙이던 순간’이 가장 인상깊었다. 하얀 한복 차림의 관계자분들이 호수에서 불꽃 잎들을 바람에 실려 보내기 위해 낙화 봉에 불을 붙였다. 어두워지는 배경에서 불꽃과 함께 되려 빛나던 그들. 결국 아름다운 풍경 그 가운데에 있는 것은 사람이었다. 조선 고종 때 함안 군수를 지낸 오횡목이 쓴 함안총쇄록에 “함안 읍성 전체에 낙화놀이가 열렸으며 이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이 성루에 올랐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수면 위에 닿아 사라지는 그 수많은 불꽃이, 먼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곳을 찾아온 군민들과 관람객처럼 느껴졌다. 군민들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이 축제가 진행됐다고 한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며 그 모든 빛에 안녕을 바라게 된다.
이쯤에서 낯선 깨달음이 다가왔다. 떨어짐은 황홀한 것인가? 여태껏 떠오르는 것을 동경했을 뿐, 한 번도 낙하(落下)를 아름답다고 여겨보지 못했다. 당장 우리가 사는 사회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위에서 아래로 계급화 된 대학, 직장. 과거보단 많이 바뀌었으나 사회의 인식은 여전하다. 무조건 오르고 올라야 한다고만 여겼던 사회의 고정관념이 축제 모습과 겹쳤다. 다시 어둠 속 무진정의 윤곽을 보던 때. 불꽃 잎들이 봄볕 아래 꽃처럼 흩날렸다. 지나온 모든 낙화(落火)가 낙화(洛花)가 되는 순간이었다.
아름다운 불꽃들의 향연도 볼거리에 꼽히지만, 아마 사람들이 이 축제를 찾는 이유는 전통이 이어진 모습 그대로였기 때문일 것이다. 번화한 도시가 아니라, 작은 ‘군’에서 진행되기에 답답하지 않고 여유로운 풍경이 함께한다는 것이 이 축제의 묘미다. 또, 정말 과거의 어느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듯, 귓가에서 리듬감 있게 튀어 오르는 가야금 소리가 그 묘미에 고즈넉함을 더한다.
아직 함안 낙화놀이를 보지 못했다면, 언젠가 꼭 한번 관람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곳에서 새롭게 타오르며 낙하할 당신의 낙화가 있을지도 모른다.
[박정빈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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