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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이의 오필리아

 

 

우울과 불안이라는 감정은 참 특이하다. 그런 감정을 가지기를 대부분 원하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그 감정들이 바탕이 된 아름다운 예술들을 우리는 사랑하는 것이다. 영어권에서는 우울을 blue라고 표현하며 감정에 아름다운 색채를 부여하기도 한다. ELO의 midnight blue, 라스 폰 트리에의 '멜랑콜리아' 같은 작품들 속 우울과 불안은 그 속 인물들을 불행하게 만들기도 하면서도 연인에 대한 사랑의 시작을, 자신의 삶에 대한 사랑의 시작을 만들어내는 감정이라는 점에서도 아름다운 감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정신병리학에서는 여전히 우울과 불안이라는 감정은 다른 병들과 달리 언제 어디서든 찾아올 수 았는 감정으로서 예방할 수 없는 불치적 감정이라고도 본다. 이다지도 양가적인 감정이라니.

 

나는 우울과 불안이라는 감정에 관심이 많다. 때때로 파도처럼 덮쳐오는 그 감정들에 휩쓸리는 순간을 마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느끼기에 그 감정들을 타인보다 민감하게, 그리고 빈번하게 만난다. 언제, 어디서부터 그런 것일까. 상황이 나를 그렇게 만드는 것일까, 혹은 내가 우울한 무드를 가진 사람으로 타고 태어나 버린 것일까. 어린 시절에도 그런 조짐이 없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정말 어린 시절의 모습 가운데 하나는 혼자 문을 닫고 방에 들어가 오르골을 몇번이고 반복해서 들으며 상념에 빠졌던 것이다. 노래는 지금 생각해보면 동유럽 풍의 구슬픈 노래였던 것 같은데 어린 마음에 왜 그런 우울한 노래를 좋아했는지. 다음으로 떠오르는 모습은 체육시간의 일이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피구를 하고있는데, 그냥 그 순간 군중 속에서 나를 이해하거나 신경쓰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분명 나에게 공을 던져주는 친한 친구들이 있었음에도 그 순간 지독한 외로움과 우울감을 느꼈었다. 하지만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그런 우울한 감성을 즐기는 때가 바로 중2이며, 그 병명은 중2병이라고. 나도 나 자신의 그런 감정에 대해 그냥 사춘기인가 보다, 하고 가볍게 치부해버렸다.

 

고등학생이 된 나는 이제 우울보다는 불안을 많이 느끼는 사람이 되었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공부를 시작했는데, 아무리 피곤해도 이상하게 4시 55분 쯤만 되면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헐레벌떡 쫒기듯이 일어나곤 했다. 등교시간은 한참이나 남았는데도 무엇인가에 늦을 것 같다는 그런 불안감이 나를 깊게 잠들지 못하게 만들었다. 나는 분명 잠이 굉장히 많은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고교 시절 동안 3년 내내 5시간 이상 잔 날은 극히 드물었다. 우울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반면, 불안은 사람을 극도의 긴장상태로 만들어 날이 서있게 만든다. 하지만 그때의 내가 그 생활들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주변에 그런 나를 잡아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내가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나는 왜 이 정도 밖에 하지 못하지?” 라고 감정에 휩쓸려 자책할 때면 내 주변의 사람들은 섣부른 위로 이전에 냉철하게 상황을 바라보고 내가 해야하는 행동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조언을 해주곤 했다. 그 조언들이 나를 움직이고, 감정에서 헤어나올 수 있게 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주었다고 지금 와서 생각한다.

 

대학생이 된 나. 타지역에서 상경하여 더 이상 나에게 그런 조언을 가까이서 해줄 수 있는 이가 없어지고 난 다음에야, 나는 나의 우울과 불안을 느끼는 감정적 센서가 유별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부분 감정을 하루 단위로 나누곤 하지 않은가. 이날은 슬펐던 하루, 이날은 기뻤던 하루. 하지만 나는 하루의 시간 속에서도 수십번씩 기분이 바뀔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도, 그리고 그런 사람으로 비춰지는 것도 정말이지 끔찍했다. 하루를 보내고나면 어떤 날은 죽을 것 같이 행복하다가도 어떤 날은 죽을 것 같이 힘들었다. 분리되었던 불안과 우울이라는 감정은 이제 동시에 나를 찾아오곤 했다. 수험생활 때 처럼 당장 해결해야할 문제는 없었지만 동시에 나한테 무엇인가를 채워넣어야 하는 시간이 지나치게 많이 주어졌다는 점에서 불안했고, 그 불안을 잠시나마 잊어보려 여러 사람과 약속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다가도 집에 돌아오면 다시 원점, 오히려 해결할 수 없다는 무력감은 우울로서 나를 찾아왔다. 왜 나는 이렇게 예민한거지? 혹은 자기 연민과 지의식 과잉이 많아서 남들보다 우울하다고 응석부리는 것일까? 나에게 계속 물음표를 던졌다.

 

이런 마음을 누군가에게 토로했는데, 그러자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너는 우울과 불안을 많이 느끼지. 하지만 그것만이 다가 아니잖아?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는 건 그만큼 너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의 폭과 색채가 크고 다양하다는 거지. 그게 너의 인생에 또다른 축복이 될 수 있어.”라는 말. “우울함과 불안함을 느낄 때마다, 그것을 글이나 말, 어떤 형태로든 표현하려고 노력해봐.” 그렇다. 외부 세계의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에 따라 증폭된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사실 겪는 사람을 지나치게 피로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다양한 감정의 층위 속에서 노닐 수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축복이 될 수 있으며, 또 결국 이것은 내가 내 인생과 함께 껴안고 갈 수 밖에 없는 류의 것인거다. 다만, 그 감정들에 휩쓸리기보다 그것들을 다스리고, 내가 타인에게 보여줄 수 있는 모습 역시도 다스리는 법을 배우기로 나는 결심했다. 내 감정들을 솔직하게 표현하되, 그 감정들이 아무리 오르락 내리락 변할지라도 결국 나라는 존재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단단하게 내 속에 굳히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블로그를 쓰기 시작했다. 소중한 순간순간들에 대해서 사진을 찍고, 짤막하게 기록을 한 뒤 매주 금요일이 되면 그 주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며 블로그에 글을 작성한다. 어떤 날은 이런 말을 들었다. “나는 차분하지, 그런데 정원이 너처럼 통통튀지는 않아. 너를 볼때면 생각은 많지만 꼬여있지 않다는 생각을 해. 또 애교도 많고 감정을 활발히 표현하다는 점에서 참 사랑스러운 사람이라고 느껴.” 이 말을 듣고 나는 너무 행복해졌고, 그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블로그에 그 말을 담았다. 내 감정을 통해 타인에게 그런 모습으로 남을 수 있다는게, 그리고 그 감정들을 글로 표현하고 공유하면서 또다시 기뻐질 수 있고, 그 기쁨 역시도 정말 크게 받아들일 수 있는 나라는 사람이 조금은 더 좋아졌다.

 

밀레이의 '오필리아'라는 작품을 좋아한다. 오필리아는 햄릿의 연인으로 여타 불행을 견디지 못해 자살로서 생을 마감한다. 그녀의 마지막 순간은 우울로 가득차 있었지만, 밀레이의 그림 속 오필리아는 우울해보이지 않다. 자연 속에 안겨 평안해 보이는 얼굴이다. 실제로 밀레이는 자연 배경을 먼저 소상히 그려넣고 이후에 인물을 그려넣는 방식으로 작품을 완성하였으며, 자연 속에서 치유되는 인간의 우울과 절망을 표현했다. 해당 작품이 그토록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우울, 절망, 불안이라는 감정을 전제하고 그것을 치유하는 순간을 묘사해냈기 때문이리라. 나 역시 우울, 불안에 빠질때가 많다. 하지만 이 감정 역시도 나의 감정을 풍부하게 하고 내 삶을 한층 아름답게 할 수 있는 감정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기반으로 더욱 행복한 삶, 나만의 예술적 가치를 담아낸 삶을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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