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음악극 '섬:1933~2019'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 정현종, <섬>, 『나는 별아저씨』, 1978
정현종 시인의 시 <섬>은 단 2행으로 인간 사회에 대한 깊은 사색을 전한다. 시에 따르면, 인간은 ‘사람들’이라는 복수형의 존재들로 살아간다. 그러나 이 복수형의 '사람들'은 ‘사이’가 벌어져 '나'와 '너'로 단절되어 있다. 이들을 가르고, 또 만나게 하는 것은 이 '사이에' 위치한 '섬'. 화자는 "그 섬에 가고 싶다."라고 말하며 지금은 사이가 벌어져 있는 타인과의 조우를 희망한다. '나'와 '너'가 만나 비로소 '우리'로 회복될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이 시가 말하는 '섬'인 것이다.
음악극 <섬:1933~2019>를 보며 시 <섬>이 떠올랐다고 말하면 어떨까? 두 작품을 모두 알고 있다면 이 진술은 얼핏 부당하게 들릴 수 있다. 음악극 <섬:1933~2019>는 1930년대, 1960년대에 한센병 환자들을 사회에서 격리했던 공간인 ‘소록도’와 2010년대 장애인 가족이 마치 '장애도'에 있는 것처럼 고립감을 느끼게 하는 사회 풍경을 교차하며 사회 속 차별과 배제를 그려 낸다. 그래서 이때의 '섬'을 정현종 시의 화자가 가고 싶다던 '섬'과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느끼는 것은 일견 당연해 보인다.
작품은 1930년대와 2010년대의 이야기를 통해 물리적, 심리적으로 공동체 밖으로 몰려난 사람들을 조명하면서, 이들의 심상 지리적 공간을 '섬'으로 설정한다. 무대 상수와 하수에서 나란히 뻗어 올라가는 다리 모양의 세트와 인물을 둥글게 둘러싸는 구도의 연출은 이 섬을 시각화하는 데 일조한다. 소록도라는 역사적 소재를 동시대 장애인 인권 문제와 연결한 작품은 사회의 폭력적인 시선, 장애인 교육권 등을 차근차근 짚어 내며 또 다른 '섬'이 지금, 이 시대에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1930년대의 ‘백수선’은 한센병 환자에게 가해지는 소록도 내외의 폭력에 삶을 위협당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자유롭게 사는 삶, 백수선은 한센병 환자라는 이유로 그 당연한 삶의 조건을 박탈당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80여 년이 지난 2019년, 인간이라면 누구나 기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 당연해진 시대이건만, 발달장애아 '지원'과 지원을 키우는 엄마 '고지선'에게는 당연한 명제가 아니다. 시대는 다르지만 백수선과 고지선이 있는 곳은 물리적으로, 또 심리적으로 고립된 섬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두 인물, 1930년대의 백수선과 2010년대의 고지선 ‘사이에’ 1960년대의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있다는 것이다. 음악극 <섬:1933~2019>는 마리안느와 마가렛이라는, 실제로 소록도에서 오랜 기간 한센병 환자들을 살폈던 두 간호사를 백수선과 고지선 사이에 위치시킨다. 그러면서 1960년대 '섬'은 또 다른 의미로 한 발자국 나아간다. 이곳은 인물들이 폭력 앞에서 무력감, 고립감을 느끼는 곳보다도 인간을 향한 헌신적인 사랑, 타인을 향하는 선의가 주가 되는 공간이 된다.
그래서 이 작품은 1930년대-1960년대-2010년대가 선형적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아니다. 1930년대와 2010년대 사이에 1960년대가 섬처럼 있는 구조이다. 소록도 한센병 환자 이야기와 장애인 보호자 이야기 사이에, 1960년대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환자들에게 따뜻한 우유를 건네던 '섬'이 있는 것이다. 1930년대에서 ‘백수선’을 연기하는 배우와 2010년대에 ‘고지선’을 연기하는 배우가 1960년대 이야기에서는 각각 ‘마가렛’과 ‘마리안느’로 분하여 만난다는 점에서 이 구조는 더욱 명확해진다.
이 ‘섬’ 구조로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다.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사회에 물리적·심리적으로 고립된 사람들이 있다는 것. 나일 수도, 너일 수도 있는 그 사람들을 위해, 그들의 존엄한 삶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될 때까지” 노력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마리안느와 마가렛의 말처럼 "우리 모두는 희망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 그렇게 '나'와 '너'가 고립되었던 '섬'은 '우리'의 공간으로 거듭난다. 정현종 시인의 <섬>과 음악극 <섬:1933~2019>가 연결되는 연대와 화합의 미학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한 가지 섬이 더 있다. 이 작품 그 자체가 바로 '섬'이기도 하다. 창작진 '목소리 프로젝트'는 '선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귀감이 될 수 있는' 인물을 무대 위에 복원하는 작업을 잇고 있는데, 이들은 유명인의 삶을 빌려와 그를 숭배하거나, 그의 일면을 페티쉬적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실존 인물인 마리안느와 마가렛, 허구의 인물인 백수선과 고지선, 그리고 이 시대 수많은 타인과 관객들 개개인이 만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그들 삶과 우리 삶에 가교를 놓는다. 누군가의 비범함을 기리며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생애와 삶의 궤적을 통해 지금의 우리 삶을 숙고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이 작품이 작품으로서 만드는 마지막 '섬'이다.
그리하여 이곳은 과거와 현재를, 허구와 실재를, 나와 타인을 만나 '우리'라는 이름이 될 수 있는 '섬'이자 <섬>이 된다. 사람들 사이에 있는, 그 <섬>에 가고 싶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진_국립정동극장, 라이브러리컴퍼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