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때의 내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 슬픔에 이름 붙이기 [도서]

나조차도 명명하지 못했던 그 순간,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었을까
글 입력 2024.06.05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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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슬픔’이라는 단어를 듣는다면 어떤 감정을 떠올릴까? 생각해 보면 나는 기분이 가라앉고 우울함을 느끼는 순간을 대부분 ‘슬픔’이라고 표현해 왔다. 분명 그때의 기분을 세밀하게 뜯어본다면 여러 갈래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가령 뜻대로 되지 않아 답답하고 좌절했던 순간, 익숙함 속에 낯섦을 발견할 때 오는 헛헛함, 모든 것이 가득 차 충만하다고 느끼는 순간 오는 공허함 등이 있을 것 같은데, 이와 같은 다양한 감정을 그저 ‘슬픔’이라는 단어에만 가둬두고 한정적인 표현을 써왔던 것 같다.

 

문득, 예전에 어느 한 프로그램에서 김영하 작가가 했던 이야기가 스쳐 갔다. 소설을 쓸 때 ‘짜증’이라는 단어를 금지했다는 것. 짜증이라는 감정에는 다양한 감정이 뭉뚱그려져 있고, 그 단어만으로는 표현되지 않는 다채로운 감정들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소설은 살다가 겪은 복잡한 감정들을 누군가 언어로 대신 표현한 곳으로, 그때 자기감정을 비로소 언어화해서 받아들이기 때문에 감정을 세분화해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살다가 겪은 감정들을 누군가 대신 언어로 표현한 것’. 이것이 내가 [슬픔에 이름 붙이기]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이었다. 책을 읽다 보면 나조차도 명명하지 못하는 그 순간의 감정을 정확하게 마주하고 있다는 기분을 들게 한다.그래서인지  형언할 수 없는 미묘하고 어려운 감정을 아주 섬세하게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과 표현법에 감탄을 하게 된다.

 

책의 이름은 [슬픔에 이름 붙이기]였지만,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점은 감정을 새로운 단어로 명명했다는 사실보다 그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감정선의 디테일이  더 크게 다가왔다. 내가 지닌 언어 안에서 단출하게 느끼던 감정을 비로소 적확하게 깨닫게 되는 것이다.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감정의 폭은 확장되고, 더욱 다채로워짐으로써  내 세상이 더욱 풍요로워진다는 기분을 들게 한다.

 

책 앞쪽을 보면, 이 책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슬픔에 이름 붙이기]는 감정을 표현하는 신조어들의 목록이다. 이 책의 임무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기이함–일상생활의 이면에서 웅웅거리는 모든 아픔, 걱정거리, 분위기, 기쁨, 충동–에 빛을 드리우는 것이다.’ 근원적인 기이함에 빛을 드리우겠다는 책의 임무는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아주 잘 수행해 낸 것 같다.

 

[슬픔에 이름 붙이기]에서 참 많은 단어를 만날수 있었는데, 그중 최근 내가 많이 느끼고 있던 감정을 표현한 몇 개의 단어를 꼽아봤다.

 

▶리베로시스(liberosis): 세상일에 신경을 덜 쓰고픈 욕망; 삶을 움켜진 손에서 힘을 뺀 채 그것을 느슨하고 유쾌하게 들고 있을 방법, 즉 재빨리 몸을 움직여 삶을 배구공처럼 공중에 계속 띄운 채 신뢰하는 친구들이 자유로이 튀기게 해서 공이 늘 살아 있게 만들 방법을 찾아내고픈 욕망

 

엔드존드(endzoned): 원한다고 생각했던 것을 정확히 얻었지만 그것이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았을 때의 공허한 기분

 

아로이아(arroia): 삶의 예행연습을 해봤더라면 – 한 번은 재빨리 대충대충 살아보고 그 다음에는 진짜로 다시 살아봤더라면 – 좋았을 거라는 바람

 

스타스턱(star-stuck): 끝없는 리뷰와 전해 들은 인상에 지친; 무턱대고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 실수를 저지르고 싶은 마음에, 전혀 아무런 기대도 없이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식당, 공연, 영화를 시도하며 돌아다니고 싶어 몸이 근질거리는

 

‘세상일에 덜 신경 쓰고 싶다’, ‘원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아닐 때 오는 공허함’, ‘삶의 예행연습을 바라는 마음’, ‘끝없는 리뷰에 지쳐버린’ 등 미처 슬픔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감정들이었다. 그저 슬프다고만 생각했지 ‘왜’ 이 기분을 느끼는지에 대해서는 짚어보지 않았던 것 같은데, 단어를 마주하고 나니 지나쳤던 감정이 인식되기 시작했다. 방향성을 잃고 혼란스러웠던 감정이 언어의 질서로 꿰매주어 보다 선명해졌고, 조금은 스스로와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자신의 감정을 세밀하게 표현하는 것이 나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혹 삶을 살아가다 순간순간 버거운 감정을 느낄 때, 슬픈 것 같은데 스스로 왜 슬픈지에 대해 정의를 내릴 수 없을 때 등 마음이 혼란스러울 때 [슬픔에 이름 붙이기]를 펼쳐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렇다면 아마 감정의 방향성이 정리되면서, 자신의 기분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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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미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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