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은 나의 달이다. 다짐하듯 그렇게 말한다.
나에게는 일 년에 두 번 ‘나의 달’로 지정한 달이 있는데, 생일이 있는 유월과 태명인 시월이다. 여름과 가을을 기다리며 매년을 살다 보면 5월과 9월부터 마음이 뛴다. 4시에 온다면 3시부터 널 기다린다는 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여우의 말처럼 나는 언제나 생일을 기다린다. 너는 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생일은 반드시 돌아온다. 예정된 기쁨을 기다리는 게 얼마나 설레고 또 슬픈 일인지.
생일이 왔다는 것은 일 년의 절반이 지났다는 뜻이다. 년으로도 만으로도 부정하지 못하게 나이가 들어가는데, 일 년의 절반까지 돌아봐야 한다니 너무하다 싶기도 하다. 주변을 둘러보면 가로수는 온통 녹색이고 사람들의 옷차림은 가볍다 못해 점점 줄어드는데 나는 그대로인 기분을 생일에도 느끼는 것이다. 이때쯤이 되면 하늘도 유난히 파랗고 물도 반짝거린다. 나는 그대로인 것 같지만 말이다.
생각을 바꿔 보면, 이렇게 절반을 갈라 태어난 사람은 나이듦을 기념하며 앞으로를 계획하기도 쉬우니 좋은 것일까.
나이가 든다는 말을 하기에는 내가 너무 어린 것 같다. 세 살배기가 네 살이 되었다고 ‘나이 들었네’라는 말을 하지는 않는 것처럼 말이다.
나이듦은 어쩐지 노화 혹은 늙음의 순화어로 느껴진다. 늙음을 두려워하고 부정하는 것이라기보다...... 아니...... 두려움이 맞다. 거짓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다 할 성취 없이 나이드는 것이 두렵고 신체의 노화로 인한 매력도의 하락이 두려우며 무엇보다 고착화되는 것이 두렵다. 나이듦이 동반하는 고집이, 그것과 반하는 주변의 변화가 두렵다. 내가 받아들여야 할 많은 변화 그리고 필연적으로 느낄 슬픔들이 두렵다.
그러나 피할 수는 없다. 즐길 수도 없지만 피하기는 정말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미래를 기대하거나 가정해야 할 필요가 있을 법도 하다. 최근 나보다 나이가 배는 많은 사람이 ‘나는 자유인이 되고 싶다’고 하는 것을 들으며 생각한 것이다. 나이가 들어도 되고 싶은 게 있을 수 있지. 나이들어가고 싶은 모습이 있을 수 있지. 그의 자유는 마음 가는 대로 사유하며 방랑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나의 자유는? 긴 고민 없이 니체의 말을 떠올렸다. 더 이상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것.
니체의 <즐거운 학문>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고 한다.
너는 어떤 사람을 악하다고 말하는가? ... 항상 모욕하려 하는 사람을.
네게 가장 인간적인 것은 무엇인가? ... 누군가의 부끄러움을 덜어 주는 것.
자유를 획득했다는 징표는 무엇인가? ... 더이상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것.
나는 부끄럽지 않게 나이들고 싶다. 지난 시간 나의 발목을 잡은 것은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다. 어느 날 울면서 건 전화처럼, 나는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나에 대해 알아갈수록 부끄러운 점 투성이여서 사랑은커녕 좋게 볼 수조차 없었다. 칭찬이라도 들으면 그이를 속인 것 같았고, 자랑스러움을 느낀다는 것은 곧 내가 오만하다는 증거였다. 나이가 들어서도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누군가의 부끄러움을 덜어주며 자신의 부끄러움에 대해 의연해지고 싶다.
바뀌는 나를 미워하지 않고,
세상과 타인의 변화를 충분히 받아들이고,
미야자와 겐지가 말했듯이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