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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누구에게나 '가장 힘들었던 때'가 있다. 물론 그 시기가 지금일 수도 있지만, 과거를 돌이켜 본다면 어느 시절 한번쯤은 죽어도 돌아가기 싫은 그 시절은 대부분에게 있을 법하다.


사람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고 했던가? 그래서 그런지 어떤 사람들은 그때의 힘들었던 시기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다. 20대 초반 때의 암흑기가 존재했는데, 그때 어떻게 학교를 다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록된 사진과 성적표 등 다양한 흔적들을 보면 어떻게든 살아갔던 것 같은데 정말 신기하게도 그때의 구체적인 나의 생각, 감상들이 아주 희미하다. 종종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인공이 어떤 사실에 충격을 받고 기억을 왜곡해 버리는 장면이 이해가 가는 지점이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일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필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인간은, 자신이 가장 나약했던 순간을 직시하고 싶지 않은 듯하다. 그 시기의 자기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순간 또다시 무너져 내릴지 모른다는 경계심과 함께, 그저 시간이 지나며 흐릿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사실 이 방법도 나쁘지 않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은 옅어지고 무뎌진다. '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예외가 있다. 그때의 상처받은 내가, 그리고 그 시기의 기억이 지금의 나에게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지. 그것을 잘 고민해 보아야 한다.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은 별다른 게 아니다. 가끔 가다 그 시기와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거나 그때가 연상되는 어떤 일을 마주했을 때 갑자기 움츠러드는 것. 과거의 일 자체를 언급하지 않으려는 것 등 미묘하게 느껴지는 감각 모든 것이 포함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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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에서의 한 장면을 보고 필자는 과거의 나를 마주하는 일이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영화 속 주인공인 스즈메는 어린 시절 엄마를 잃은 자기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어린 스즈메에게, 이미 많은 일을 겪고 성장한 스즈메는 이렇게 말한다.


 

있지, 스즈메

너는 분명 누군가를 좋아하게 될 것이고 널 좋아하게 될 누군가와 많이 만나게 될 거야.

지금은 한없이 새까만 어둠 속이지만, 언젠가는 꼭 아침이 와.

아침이 오고, 다시 밤이 오고, 그것을 몇 번이고 반복하다 보면 넌 어느새 빛 속에서 어른이 되어 있을 거야.

틀림없이 그렇게 돼.

그렇게 되도록 다 정해져 있어.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아무도 스즈메를 방해할 수 없어.

너는 빛 속에서 어른이 될 거야.

 

 

스즈메가 스즈메에게. 내가 나에게 들려주는 위로의 말은 다른 어떤 사람의 위로보다 강력한 힘을 가진다. 엄마를 잃고 슬픔에 빠진 스즈메가 다시 앞을 보고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내일의 스즈메 덕분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각박하다. 나에게 하는 위로는, 때로는 오글거리고 때로는 나약해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과거의 나에게 어떤 말을 건네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그 시절의 나를 똑바로 바라보아야 한다.


대부분은 그 첫 단계에서 막히는 듯하다. 앞서 말했듯, 기억을 되새기는 것조차 싫은 시기의 나를 인정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그 껄끄러운 시작을 한번 시도해 본다면, 그래서 과거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다 갈 수 있다면 생각보다 큰 변화가 시작될지도 모른다.


나약한 자신이 싫어서 저 멀리 숨겨만 두었었는데, 기꺼이 꺼내놓고 마주하니 어느새 많이 자란 자신을 발견하게 될 테니 말이다. 그만큼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다만 기억 자체에서 그치지 않고, 스즈메가 어린 스즈메를 다독이고 위로했듯. 우리가 우리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주려는 시도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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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로하는 것은 결코 나약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더 강한 나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에 가깝다. 성장한 스즈메로 인해 어린 스즈메가 큰 상실감에서 벗어나는 용기를 가질 수 있었듯이, 우리는 과거의 나를 이해함으로써 다시금 미래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기억하지 않는 것보다 기억하는 것이, 외면하는 것보다 마주하는 것이 때로는 시간이 주는 약보다 더 값질 때가 있음을 알아두었으면 한다. 그 과정이 생각보다 아프고 생각보다 슬플지라도, 모든 것을 받아들인 후의 당신은 훨씬 후련해질 거란 사실도 함께 말이다.

 

그러니 오늘은, 과거라는 방에서 혼자 울고 있는 자기 자신을 한번 만나러 가보길 바란다. 그 방 안에서 그가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당신일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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