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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나를 가장 곤란하게 만들었던 질문은 늘 '롤모델이 누구냐'는 것이었다. 나는 이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참 어려웠는데, 왜냐하면 딱히 롤모델이라고 부르고 싶었던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럴듯해 보이는' 롤모델 말이다.


그러나 조금 더 솔직하게 이야기해 보자면, 나에게도 닮고 싶었던 사람은 있었다. 특히 성격과 관련된 부분에서 그랬던 것 같은데, 나는 언제나 활발하고 자유로워 보이는 사람을 동경하곤 했다. 때로는 무례해 보일 정도로 당당하고 거침없는 사람 말이다.


하지만 남들에게 굳이 말하고 싶진 않았다. 누군가를 닮고 싶다는 건, 그 사람이 가진 걸 나는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드러내는 행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닮고 싶었던 그 친구는 매우 적극적이고 진취적이었는데, 종종 지나칠 정도로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아서 그 아이를 싫어하는 친구들도 많았다. 그럼에도 나는 그 친구가 좋았다. 내가 늘 속으로만 삼키는 이야기들을 시원하게 질러주는 그 아이를 보고 있으면 내 마음까지 뻥 뚫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동시에 괴롭기도 했다. 내가 그 친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나를 싫어하는 이유와 다르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나는, 자신을 지우면서까지 디키를 닮고 싶어 했던 리플리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네가 사는 방식은 다 좋아졌다고, 사랑하게 되었다고 절절히 고백하는 리플리가 안쓰러웠다. 그럼에도, 리플리의 방식과 그가 저지른 세 번의 살인을 옹호할 수는 없다. 모든 욕망이 모든 수단을 정당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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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모델 선정'은 왜 사회적으로 권장되고, '리플리의 행동'은 반사회적으로 규정되는 것일까?


나는 이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은 '성찰의 유무'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롤모델을 통한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는 우선 나의 부족한 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롤모델로 삼은 이의 방식을 참고하여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내가 그 롤모델과 완전히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장점과 개성들은 유지한 채로 개선이 필요한 부분만 수정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부족하고 모자란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리플리는 내면적 성찰은 철저히 회피한 채, 자신이 동경하는 이와 완벽히 동화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당신은 과거를 지하 방에다 두고 문을 잠근 채 다시 가지 않는 거 안 해요?", "그곳은 너무 어둡고 악마가 있으니까요."라는 대사는, 리플리가 자신의 과거, 즉 본래 모습을 아주 깊이 던져두고 외면하려는 태도를 보여준다.


리플리는 자신의 결점과 대면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여 '리플리'라는 고유한 인간 자체를 매장시켜버렸다. 이로 인해 디키조차 가질 수 없는, 리플리만의 사랑스러운 모든 부분들을 함께 묻어버린 것이다. 때문에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피터에게 '톰 리플리의 좋은 점을 말해달라'는 그의 요청은 더욱 역설적으로 들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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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나를 완벽히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성별, 인종, 지위, 재산 등 우리의 특성을 결정짓는 수많은 요소 중 그 어느 것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 채로 이 세상에 내던져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출생 이후에 형성되는 자신의 본질과 삶의 방향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지니고 있다. 사르트르는 이를 '인간이 선고받은 형벌'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인간의 자유에 따르는 거대한 책임을 강조했는데, 이 때문에 우리는 자유를 포기하고 타인에게 종속되고자 하는 유혹에 노출되기도 한다. 마치 리플리처럼 말이다. 하지만 인생은 누구에게나 한 번뿐이기에, 그 주도권을 타인에게 내어주기보다는 부족한 나를 끌어안고 씩씩하게 살아내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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